부품업계, 美 관세 위협 속 '유리기판' 사업 강화 집중
美 인텔 유리기판 사업 철수시 韓 3사 입지 확대 기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주 내로 품목별 관세율을 공식 발표할 예정인 데 따라 국내 부품업계가 긴장감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새 먹거리인 '유리기판' 시장을 둘러싸고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어 주목된다.
미국 인텔이 유리기판 사업 철수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인텔의 빈 자리를 국내 기업들이 발 빠르게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2일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유리기판 시장은 지난 2023년 11억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에서 오는 2028년까지 연평균 26% 이상씩 성장하면서 35억달러(4조80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리기판은 AI(인공지능) 시대에 떠오르는 차세대 부품으로, 기존의 플라스틱 기판 대비 전력 소모를 30% 줄이고 데이터 처리 속도를 40% 향상시킬 수 있다. 또 칩 간 연결성을 강화하고 발열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HBM(고대역폭메모리)이나 AI 반도체와 통합이 필수인 고급 패키징 시장에서 필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뿐 아니라 AI 데이터센터에도 유리기판을 적용할 경우 센터 면적과 전력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 글로벌 시장 고성장…국내 3사 경쟁 본격화
현재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SKC와 삼성전기, LG이노텍이 유리기판 사업에 집중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 부품 3사는 유리기판 기술력 개발과 선제적인 시장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며 3사 중에서는 SKC가 한 발 앞서고 있다.
SKC는 올해 1월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5'에서 먼저 유리기판을 선보였다. 당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유리기판을) 방금 팔고 왔다"고 언급하며 글로벌 고객사에 공급을 시작했다고 알리기도 했다.
이처럼 SKC는 유리기판 모듈 원천 기술 확보를 바탕으로 초도 고객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중으로, 특히 SKC의 자회사 앱솔릭스가 올해 연말까지 유리기판 상업화를 목표로 기술 검증과 고객사 평가를 마친 뒤 본격 양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SKC는 지난 4월 약 31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하며 유리기판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도 했다. 당시 SKC는 "유리기판 사업 확대와 재무건전성 개선을 동시에 고려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밝혔다.
앱솔릭스는 이미 지난해 미국 조지아주에 세계 최초의 유리기판 양산 공장을 준공하고 시제품 생산을 시작한 상태로, 현재는 미국 빅테크를 포함한 복수의 고객사로부터 샘플 인증을 받고 있다. 이미 소규모 양산이 가능한 생산 라인도 확보해 향후 납품 계약 체결, 고객사 확대 등에 따라 추가 라인 증설도 진행할 전망이다.
삼성전기 역시 유리기판 양산을 위한 라인을 확보하고 평가 샘플을 글로벌 고객사에 공급하고 있다. 최근 세종 사업장에 파일럿 라인을 가동하며 2027년 대량 양산을 목표로 기술력 확보에 나섰으며 고객사 샘플 제공과 품질 테스트에 주력하며 상용화 기반을 다지는 중이다.
특히 삼성전기는 'TGV 기술'을 유리기판에 적용하고 있는 중이다. 유리 소재 특성상 가공 과정에서 쉽게 균열이 발생하는데 해당 기술로 균열 없이 미세 구멍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이 삼성전기의 설명이다. 또 유리기판과 구리 배선의 밀착력을 높이는 시드층 접착 기법 등 신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올해 안에 공장에 파일럿 라인을 만들어 샘플링과 라인 가동을 시작할 것"이라며 "2~3개 미국 빅테크 기업에 유리기판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AI나 서버 분야에서 유리기판 수요는 중장기적으로 매우 견조하다"고 자신했다.
최근에는 유리기판 분야 전문가 강 두안 전 인텔 수석 엔지니어를 부사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강 두안 부사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위치한 삼성전기 미국법인에서 기술 마케팅 및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링 부문 총괄 업무를 맡아 유리 기판과 관련한 신규 비즈니스 개발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LG이노텍도 고성능 통신·AI 반도체를 겨냥한 유리기판 기술 개발에 나선 상태다. 구미공장 내 유리기판 시생산 라인을 구축 중으로, 올해 연말부터 시제품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본격적인 양산 시점은 2027~2028년으로 예정하고 있다.
3사 중에서는 후발주자지만 LG이노텍은 정밀 제조 역량과 자동화 설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문혁수 LG이노텍 대표가 "유리기판 관련 장비는 10월쯤 반입될 예정이며 자체 개발은 연말이나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인텔 철수로 국내 기업에 호재 가능성
이 가운데 최근 미국 인텔이 이같은 유리기판 사업을 철수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3사의 기대감이 높아지는 중이다. 아직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등과 관련한 부품 고율 관세 부과 우려가 높긴 하지만 미국 기업인 인텔이 사업을 철수하면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에 숨통이 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최근 계속되는 실적 부진으로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 이에 본래 주력 사업 분야인 CPU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유리기판 사업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이미 경영난으로 전체 직원 3 분의 1 가량의 감원과 함께 주요 시설투자 및 연구개발(R&D) 중단·보류 등이 진행되고 있어 유리기판 사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인텔의 올해 2분기 순손실은 29억 달러로, 전년 동기(16억1000만달러) 대비 13억 달러 이상 늘었다. 6개 분기 연속 적자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인력 15%를 감축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실적 개선 없이 손실규모만 확대되자 다시 대규모 비용절감 방안을 수립하는 중이다.
본래 인텔이 2010년대 초부터 유리기판의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최소 300여 건의 핵심 특허를 축적하며 업계를 선도해왔는데, 이같은 인텔이 사업에서 철수하면 해당 빈 자리가 국내 3사에게는 새로운 먹거리가 되는 셈이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유리기판 개발을 한창 진행 중이긴 하나 국내 기업들보다는 속도가 더딘 편이다. 세계 반도체용 기판 1위 업체인 일본 이비덴의 경우 유리기판 개발에 나서긴 했지만 평탄도 확보와 대형화 공정의 한계로 상용화 속도는 국내 3사에 비해 더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민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인텔의 철수는 단기 리스크 요인일 뿐 유리기판 기술 자체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은 이 틈을 타 글로벌 공급망 내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을 맞았다"고 진단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