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는 올해 조달청을 통해 263만 도즈 규모의 독감백신을 낙찰받았는데, 질병청 계획에 맞춰 순차적으로 납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GC녹십자 본사 목암빌딩. GC녹십자 제공
GC녹십자는 올해 조달청을 통해 263만 도즈 규모의 독감백신을 낙찰받았는데, 질병청 계획에 맞춰 순차적으로 납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GC녹십자 본사 목암빌딩. GC녹십자 제공

GC녹십자가 국내외 대규모 백신 계약을 잇달아 확보하면서도 세부 공급 일정과 매출 반영 내역을 제대로 밝히지 않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 제기를 바탕으로 스트레이트뉴스가 취재한 결과 핵심은 ‘계약 기밀 유지’라는 회사 논리와 ‘투자 판단을 어렵게 한다’는 외부 시각이 팽팽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GC녹십자는 올해 조달청을 통해 263만 도즈 규모의 독감백신을 낙찰받았다. GC녹십자 관계자는 “질병청 계획에 맞춰 순차적으로 납품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사업 시작일 및 종료일은 질병청 쪽으로 문의 바란다”고 답변했다. 추가로 서울시 접종 일정을 참고로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납품 시작일과 종료일은 공개하지 않았다. 백신 수급의 시기적 민감성을 감안하면 핵심 정보가 빠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낙찰분인 2024-2025절기 265만 도즈에 대해서도 “대부분 하반기에 공급되며, 매출은 3,4분기에 반영된다”는 일반론적 설명만 내놨다. 실제로 공급된 물량이나 구체적인 매출 반영 규모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해외 계약 상황 역시 비슷하다. 올해 7월 태국 정부와 체결한 594만 도즈 공급 계약에 대해 GC녹십자 관계자는 “계획대로 정상 진행 중”이라고 답했지만, 국영제약사와 민간시장 등 다양한 유통 루트를 이유로 납품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PAHO(범미보건기구)를 통해 수주한 약 4430만달러 규모 계약은 “모두 납품이 완료됐다”고 확인했다. 물론 이 역시 연도별 매출 반영 효과까지 가늠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세부 계약조건, 비공개가 원칙” vs 경쟁사는 수량·금액·기간 밝혀


GC녹십자는 계약 세부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로 ‘국가기관과의 합의’를 들었다. 회사 관계자는 “국가와의 협의에 따라 세부 계약조건은 비공개가 원칙이며, 글로벌 제약업계에서도 통상적으로 채택하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내용은 영업·계약상 기밀로 분류돼 내부적으로도 제한적으로만 공유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하다. 경쟁사들은 수량·금액·기간까지 투명하게 밝히고 있다. 예컨대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25–2026절기 인플루엔자 백신 공급 계약을 227억원 규모, 계약 기간은 2025년 6월 4일부터 2026년 6월 30일까지라고 공시했다. 또 2023년에는 태국 GPO를 상대로 약 680억원에 달하는 세포배양 원액 공급 계약 기간이 10년에 달한다는 세부사항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일양약품은 2025–2026절기 NIP 계약에서 148만 도즈를 확보하고, 입찰 단가는 9660원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2023–2024절기 NIP 물량에서는 170만 회분을 확보하며 최저가 투찰 입찰로 성공했다는 점까지 알려 투자자들이 물량 기반 매출 구조를 예상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투자업계에서 “같은 업종 내에서도 정보 공개 수준이 들쭉날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GC녹십자는 과거 백신 계약 공시를 늦게 내 공시 불성실 제재를 받은 바 있다. 실제로 2022년 6월 14일 조달청과 516억원 규모의 독감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도 이를 1년이 지난 2023년 6월 27일에야 공시해 한국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를 받았으며, 결국 800만원의 제재금을 부과받았다. 이런 전례는 투자자들이 지적하는 ‘정보 불투명성’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네이버 종목토론방이나 팍스넷 같은 국내 주요 주식 커뮤니티에서 “계약 발표는 요란한데, 정작 매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는 흐릿하다”는 불만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증권사 보고서에서도 ‘계약 발표 효과 대비 실제 실적 기여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반복되고 있다.


◇ 백신, 생산 과정·물류·보관 등 전 과정 중요


GC녹십자 관계자는 “공시 기준에 따라 투자 판단에 필요한 핵심 정보는 성실히 제공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재무성과와 사업성과는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핵심 정보’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공급 현장 리스크도 도마에 오른다. 백신은 생산 과정뿐 아니라 물류·보관 등 전 과정이 민감하다. GC녹십자는 “계획대로 차질 없이 공급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실제 납품이 지연되거나 특정 국가에서 일정이 조정되는 경우에도 이를 외부에서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GC녹십자가 질병청에 '2025-2026절기 인플루엔자 백신'을 263만 도즈 규모로 공급할 예정이다. GC녹십자 제공
GC녹십자가 질병청에 '2025-2026절기 인플루엔자 백신'을 263만 도즈 규모로 공급할 예정이다. GC녹십자 제공

이런 상황은 정부와 의료기관은 물론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도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계약 구조 특성상 일정 변경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시장과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려면 일정 수준의 공개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쟁사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와 코로나19 백신 생산 계약이나 자체 개발 백신의 글로벌 공급과정에서 도즈 수와 납품 시점을 공시한 사례가 있다. 일양약품도 다수 해외 백신 계약을 체결하면서 공급 물량과 시기를 비교적 상세히 공개했다.

이런 비교 속에서 GC녹십자의 ‘영업기밀’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상장사로서 투자자 신뢰 확보가 중요한 상황에서 ‘왜 GC녹십자만 특별한가’라는 의문이 커진다.

물론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계약 조건을 비공개하는 사례는 흔하다. 화이자나 모더나도 국가별 공급 계약을 전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경쟁사들의 공개 관행이 자리 잡아가면서 GC녹십자의 불투명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 “공시 투명성, 기업 신뢰도·주가 안정성에 직결”


전문가들은 “글로벌 관행을 따를 수 있다는 명분과 국내 투자자 보호를 위한 공시 강화 요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예측 가능성’이다. 계약 발표 시점과 매출 반영 시점이 일치하지 않으면, 투자자는 실적 전망을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 산정에도 불확실성이 커진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계약 발표로 주가가 단기 급등해도 실제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곧바로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시 투명성은 기업 신뢰도뿐 아니라 주가 안정성에도 직결된다”고 말했다.

GC녹십자 관계자는 “계약 상대방과 협의가 우선이며, 영업 기밀을 보호하는 것은 글로벌 업계의 보편적 관행”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공시 기준에 따른 핵심 정보 제공에는 충실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그는 “향후에도 재무성과와 사업성과는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며 기업 신뢰도 제고를 약속했다. 불투명성 논란을 의식한 듯, 신뢰 회복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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