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노조 갈등 격화…최대실적에 웃고 울고 '역설적'
반도체 시장 불안정…"노사간 합의로 위기 해쳐나가야 할 때"
'HBM 성공신화'를 써낸 SK하이닉스가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됨에도 경영 환경에 안개가 끼고 있다. 성과급 지급을 놓고 노조와 갈등을 겪으면서 파업 위기를 맞이한 탓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격변하고 있는 만큼 양측의 이견차를 좁히고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SK하이닉스 노동조합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정오까지 SK그룹 본사인 서린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고 성과급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집회에는 약 250명(이천사업장 노조 140여 명, 청주사업장 노조 90여 명, 사무직지회 5명)이 모였다.
이날 SK서린빌딩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포함해 그룹 경영진 200여 명이 참석한 'SK 이천포럼'의 마지막 일정이 진행됐다.
이 가운데 노조는 "SK그룹의 그림자 통제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거나 'SK의 성과배분 억압은 명백한 노동탄압이다! 즉시 중단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통해 침묵 시위를 이어가며 사측에 의견을 적극 피력했다.
노조는 이미 앞서 지난 18일 SK 이천포럼 첫날에도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진행한 바 있다.
SK하이닉스 노사 갈등의 최대 쟁점은 '성과급(PS) 지급 방식'이다. 10차례에 걸친 교섭에서도 이견차를 좁히지 못한 가운데 양측의 대립적인 입장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는 2021년 사측이 전년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겠다고 약속한 데 따라 해당 금액 전액을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사측은 영업이익 10%를 재원으로 하되 지급한도를 기본급의 1000%로 정해뒀고 이를 넘어서는 금액은 협의하기로 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안책으로 성과급 지급률을 기본급의 1700%로 확대하되 초과분 일부는 투자 재원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으로 남겨두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11차 임금협상은 다음주 중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11차 임금협상 일정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며 "노사의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이 같은 노사 갈등은 역설적이게도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데서 기인했다.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낸데 따라 성과급 재원 규모가 확대되는데, 이 금액을 놓고 갈등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해에는 SK하이닉스가 연간 영업이익 23조4673억원을 기록하면서 직원들에게 특별성과급 포함 1500%의 성과급과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 30주를 지급한 바 있다.
이어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37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성과급 지급 방식을 놓고 이견 대립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37조원을 기록할 경우 노조의 계산대로라면 성과급 재원은 3조7000억원 가량이 된다. 지난해 말 기준 SK하이닉스 직원이 3만2390명인 점을 고려하면 직원 한 명당 1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게 되는 셈이다.
반면 사측의 입장대로라면 상한선을 1700%로 제한했을 때 성과급 재원은 2조3000억원 가량이다. SK하이닉스는 남은 성과급 재원 중 절반을 직원들 연금이나 적금 형태로 지급하고 나머지 절반은 회사의 미래 투자 등에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조는 2023년 반도체 업황 불황이 극심하던 시기 7조7000억원의 적자를 직원들이 함께 감내한 만큼 기존 약속대로 영업이익의 10%를 모두 성과급 재원으로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기록적인 흑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노사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측이 합의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파업도 단행하겠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가 HBM(고대역폭메모리)으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면서 외부적으로는 명성이 높아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실적을 기반으로 한 성과급 지급 방식을 놓고 크게 흔들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 노사 갈등을 놓고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최근 미국 트럼프가 자국 기업 보호에 더욱 무게를 두면서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 압박을 가하는 등 반도체 시장을 둘러싸고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업까지 진행될 경우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에 큰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6세대 HBM인 HBM4 시장부터는 반도체 업계의 판도 변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HBM4는 이전 세대보다 더 수율·발열·전력 효율 등 고도화된 기술력을 요구해 어떤 기업이 먼저 기술력과 경쟁력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HBM4 공급 능력이 향후 시장 경쟁에서 핵심 차별화 요소로 부상할 것"이라며 "2026년 이후 메모리 업체 간 희비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현재 HBM으로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안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노사간 원만한 합의로 힘을 합쳐 격변하는 반도체 시장을 헤쳐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