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구금자 석방 조치 최우선, 현대차 '무관용 원칙' 강조
합작 공장 생산 일정 연기 불가피…현대차·LG엔솔 협력 '삐걱'

미국 이민관세단속국(ICE)이 공개한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불법 체류자 단속 현장 모습. 연합뉴스
미국 이민관세단속국(ICE)이 공개한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불법 체류자 단속 현장 모습. 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을 대상으로 이뤄진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300여 명의 한국인이 구금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당사자인 양사의 대응 방법이 다소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구금자 석방 및 안전한 복귀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현대차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협력사 고용 관행에 대한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번 사태로 양사의 합작 공장은 생산 일정 연기가 불가피해지면서 협력이 삐걱이는 모습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한국인 근로자 체포·구금과 관련해 한미 간 석방 교섭이 일단락되면서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자진 출국' 형식으로 오는 10일께 출발해 11일 또는 12일께 귀국할 전망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은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인 'HL-GA 배터리회사' 건설 현장을 급습해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였다.

이로 인해 총 450여 명의 근로자가 체포됐는데, 이 중 LG에너지솔루션 소속 47명(한국 국적 46명·인도네시아 국적 1명)과 HL-GA 베터리회사 관련 설비 협력업체 소속 인원 250여 명 등 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포함됐다. 현대차 소속 중에서는 단속된 인력이 없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LG에너지솔루션은 즉각 대처에 나섰다. 구금자 파악 및 석방 조치에 나선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구금자의 조기 석방을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진행 중"이라며 "필요 의약품이 구금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조치를 다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기수 LG에너지솔루션 최고인사책임자(CHO) 전무가 지난 7일 오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김 전무는 출국길에서 "지금은 구금된 분들의 '조속한 석방'이 최우선"이라며 "정부에서도 총력 대응해 주시고 있는 만큼 모두의 신속하고 안전한 복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다소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현대자동차 미국법인은 사태 발생 하루 뒤인 5일(현지시간) 성명문을 내고 "구체적인 정황 파악을 위해 사안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현재 구금된 인원 중 당사에 직접 고용된 직원은 없다. 협력사들의 고용 관행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대차는 사업장을 둔 모든 시장에서 고용 확인 요건과 이민법을 포함한 모든 법규를 완벽하게 준수할 것을 약속한다"며 "이번 사건은 공급망 및 도급 업체 네트워크 전반에 걸친 철저한 감독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고 덧붙였다.

이어 "당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관계자에게 당사의 법률 준수 기준을 충족하도록 하는 절차를 검토하고 있고 여기에는 도급·하도급업체의 고용 관행에 대한 철저한 검증도 포함된다"며 "현대차는 불법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 미국 제조업에 투자하고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는 과정에서 미국 법률을 철저히 준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에 현대차 소속 임직원은 체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협력사의 구금자 석방 보다는 법 준수 여부에 더욱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이밖에도 현대차는 당분간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직원들의 미국 출장을 보류하도록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 허점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본래 미국 현지 공장, 사무소 등에서 근무하려면 주재원 비자인 'L-1'이나 'E-2', 또는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H-2B' 등을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비자의 경우 받기가 까다로워 ESTA(이스타, 전자여행허가제)나 현지 취업이 불가한 단기상용 'B-1' 비자 등을 활용해왔던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물론 실제로 주재원 비자는 취득 조건이 극히 까다롭고 받을 수 있는 숫자가 제한적이다. 발급 기간도 최대 5개월까지로 오래 걸린다.

H-1B 비자 취득도 기본적으로 추첨제(lottery)로, 미국에서 연간 8만5000개의 H-1B 비자가 발급되고 있지만 한국에는 별도 쿼터가 없어 약 2000명 내외만 승인되는 중이다. H-2B 비자는 임시적·계절적 비전문직 근로자를 위한 비자인데, 건설업이나 조경업, 관광업 등에서 활용되지만 미국 내 일자리 부족을 증명해야 하는 조건이 있어 절차가 까다롭다.

이에 현장에서는 공사 기한, 필요한 인력 숫자 등을 맞추기 위해 ESTA나 B-1 비자를 활용해오는 것이 관행이었다. B-1 비자의 경우 회의 참석, 계약 협상, 장비 설치 감독, 현장 점검 등 일부 활동은 허용된다.

다만 트럼프 정부 들어서면서 단속이 강화된 상태로, 이번 대대적인 한국인 근로자 체포 사태가 발발한 것이다. 그동안 이어져오던 관행이 '불법'으로 낙인되자 미국에 공장을 건설 중이거나 투자할 예정이었던 국내 기업들은 미국 사업 점검에 나선 상황으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들의 기한이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도 무기한 연기될 예정으로, 양사의 미국 시장 대응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전망이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건설 초기 기술 노하우 전수를 위해 한국 협력사 직원들을 단기 출장 비자로 파견했던 기존 관행을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고용'으로 간주한 것"이라며 "2026년 초로 예정됐던 공장 양산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고 진단했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현지 H-1B 전문직 비자 쿼터가 막혀 있고 B-1/ESTA를 통한 우회로까지 차단된 상황에서 외교적 해결 없이는 공백을 메울 방법이 없다"며 "1년 이상 양산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특히 이번 사태로 구금됐다가 돌아오는 LG에너지솔루션 직원 및 협력업체 소속 직원들의 향후 미국 입국 가능 여부도 쟁점이다. '강제 추방'은 아니지만 '자진 출국'의 경우에도 미국 입국이 금지된다거나 입국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중이다.

이에 오는 8일(현지시간) 조현 외교부 장관이 카운터파트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을 만나 구금자들에 대한 향후 불이익을 얼마나 최소화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해당 사안과 관련한 질의에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정부가 어떻게 협상하고 해결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임직원들에 대해 고객 미팅 등을 제외한 미국 출장은 전면 중단하도록 지침을 내린 상태다. 현 시점 미국에 있는 출장자도 업무 현황 등을 고려해 즉시 귀국하거나 숙소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김귀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단속 강화가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 내 생산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공동으로 대미 투자기업 간담회를 개최했다. 박종원 산업부 통상차관보 주재로 진행된 간담회에는 현대차그룹,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HD현대, 한화솔루션, LS그룹 등이 참석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