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서거 50주년, 여전히 건재한 저항과 풍자
연주자 몰아치는 실험정신…카타르시스로 귀결된 비오는 초가을밤

사진 장석진 기자.
사진 장석진 기자.

가을을 맞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무엇일까? 20세기 러시아 대표 작곡가 중 한 명인 쇼스타코비치를 만나러 12일, 비오는 금요일 밤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

올해로 7회를 맞는 어텀실내악페스티벌 다섯 번의 공연 중 한 가운데를 장식한 ‘Yes, musician Shostakovich!’ 공연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쇼스타코비치의 넘버들을 한 자리에서 몰아듣기(Binge Listening)하는 재미를 선사했다.

이날 연주 구성은 통상 쇼스타코비치를 말할 때 거론되는 교향곡 5번이나 7번 레닌그라드, 또는 현악4중주 15곡이 아니었다. 피아노3중주 1번 C단조 작품번호 8, 2번 e단조 작품번호 67, 현악8중주를 위한 2개의 소품 작품번호 11, 피아노5중주 g단조 작품번호 57 등을 함께 듣는 재미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밖에서 스며드는 가을비의 촉촉함과 어우러졌다.

사진 장석진 기자.
사진 장석진 기자.

올해 어텀실내악페스티벌의 주제는 ‘신념(Belief)’이다. 스탈린 체제 하에서 예술가로서 검열의 레이더를 피하기 어려웠던 작곡가가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때로는 그로테스크할 만큼 파격적인 형식미, 연주자를 휘몰아치는 극도의 긴장감이 관객들의 몰입감을 더욱 강하게 했다.

특히 이날 선곡 중 절반은 그가 10대때 쓰여진 곡들이고, 나머지 둘도 그의 나이 마흔 전에 쓰여진 곡들이다. 유난히 이날 선곡에는 피치카토 주법(현악기의 손가락으로 줄을 뜯는 연주법)이 많이 등장한다. 마치 바이올린과 첼로가 경쟁이라도 하듯 줄을 뜯어대는 모습이 흡사 우리의 가야금 병창을 떠올리게 했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한국 국악과의 협연도 가능하지 않았을지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했다. 아방가르드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순간이다.

연신 땀을 닦아내는 바이올린 연주자, 피아니스트의 집중력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페이지 터너(악보 넘겨주는 보조자), 앞으로 넘어질 듯 빠져드는 첼로 등 젊은 연주자들을 보면서, 대형 홀에서는 볼 없는 무대 위 열정이 관객석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몰아치는 연주를 마치고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얼싸안는 연주자들의 모습을 쇼스타코비치가 저 하늘 어딘가에서 보고 있었다면 얼마나 흐믓해할까.

비오는 세종문화회관. 사진 장석진 기자.
비오는 세종문화회관. 사진 장석진 기자.

동토의 땅 러시아는 우리에겐 복잡다단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나라다. 이념이라는 장벽을 예술로 승화시킨 러시아 천재의 마음속으로 초대된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실내악 축제 중 하나로 자리잡은 ‘어텀실내악페스티벌은 13일과 14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과 IBK기업은행체임버홀에서 계속된다. 13일 공연엔 아티스트초이스로 다양한 작곡가의 곡을, 14일 공연에선 멘델스존과 코른골트의 작품들이 이어진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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