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주차장에서 가족과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
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주차장에서 가족과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대규모 불법체류자 단속 사태가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전략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300여명의 한국인 구금자는 귀국했지만 충격의 여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주요 대기업들은 미국 내 공장 건설 및 운영 계획을 전면 재점검하며 리스크 관리에 부심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진원지인 HL-GA 합작공장은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가 약 8조8000억원을 투자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불법 고용 논란으로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며 공정이 최소 2~3개월 지연될 것으로 관측된다. 신뢰도 훼손과 추가 비용 발생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삼성SDI는 인디애나주에서 스텔란티스, 제너럴모터스(GM)와 각각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온도 조지아·켄터키·테네시주에서 공장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51조6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에 5조4000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준비 중이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누적 투자액은 200조원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번 단속으로 불거진 불법체류·비자 문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구조적 리스크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민 단속 기조를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합법 고용과 체류 관리에서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외교부와 재외공관은 그간 여러 차례 비자·취업 규정 준수를 강조해왔다. 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은 지난 5월 미국 내 사업체 운영자들에게 직원 I-9 양식 작성·보관 의무를 안내했고, 주 뉴욕·보스턴 총영사관도 체류 자격 관리와 불법 고용 리스크를 반복적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기업 현장에서 이러한 지침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서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투자 거점을 멕시코·캐나다 등으로 다변화하거나, 현지 고용 비중을 대폭 늘리는 방안이 거론된다. 일부 중소 협력사들도 미국 진출 전략을 재검토하며, 필요 시 현지 법인 설립을 고려하는 등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의 발언도 한국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에 오는 모든 기업이 규칙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라며, 불법체류 근로자 상당수가 ‘추방(deportation)’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자진출국 방안을 모색 중인 한국 정부 입장과 온도 차를 보이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정부는 사태 진화를 위해 한미 워킹그룹을 가동하고 비자 쿼터 확대, 절차 간소화 등을 협의 중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 모두 ‘사후 대응’에 치중했다는 점에서 근본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은 한국 기업들이 단순히 자본만 투입하는 시대는 끝났음을 보여준다”며 “합법 고용 체계를 구축하고 현지 법규 준수를 경영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단속 사건을 넘어, 한국 기업 전반에 글로벌 경영 리스크 관리 능력을 시험하는 계기가 됐다. 대규모 투자가 몰리는 미국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안정적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모두가 제도 개선과 준법 경영을 병행하는 전략이 불가피해 보인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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