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추진 대신 자회사 합병으로 핵심 사업군 역량 강화
조선·건설기계·전력 3축 형성…안정적 포트폴리오 구축
HD현대가 핵심 자회사의 합병으로 성장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기존에 몇몇 자회사들의 IPO(기업공개)를 통해 투자 재원 마련, 경쟁력 강화 등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IPO 대신 합병을 선택하면서 효율성을 중시한 전략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D현대는 올해 2분기 연결 영업이익이 1조138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4%나 늘어난 실적을 기록했다. 조선과 전력기기, 건설기계 등 주요 사업에서 견조한 실적을 거둔 결과다.
HD현대의 조선부문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고선가 선박 매출 비중 확대로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53.3% 증가한 9536억원을 기록했다. 또 HD현대마린솔루션과 HD현대일렉트릭, 건설기계 중간지주사 HD현대사이트솔루션까지 호조세를 보이면서 에너지 자회사인 HD현대오일뱅크의 부진을 상쇄했다. HD현대오일뱅크의 경우 국제유가 약세와 정제마진 하락에 따른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최근 HD현대의 행보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주목된다. 호실적을 보이고 있는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자회사 합병에 나섰기 때문이다.
HD현대는 HD현대사이트솔루션 산하의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간 합병을 결정한데 이어 HD한국조선해양 산하의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간 합병까지 단행했다. 실적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건설기계와 조선 사업의 역량을 확대하기 위한 행보다.
본래 HD현대는 투자 재원 마련 등을 위해 주요 자회사들의 IPO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대상은 HD현대사이트솔루션, HD현대삼호, HD현대로보틱스, HD현대오일뱅크 등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법개정안에 따른 중복상장 우려와 일부 자회사들의 업황 악화 등이 걸림돌이 되면서 IPO 추진 대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자회사들의 합병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HD현대오일뱅크의 경우 정유 업황 악화로 실적이 부진한 상태며 HD현대로보틱스는 로봇 시장 불확실성 등으로 IPO 추진에 신중해진 상황이다.
건설기계 중간지주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IPO는 철회했다. 지난달 HD현대는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상장 계획 철회에 따라 KDB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지분 전량을 5441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그룹 내 건설기계의 양대 축인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를 합병하면서 'HD건설기계'를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경영 효율성을 확대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면서 건설기계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목표다. 각 사의 브랜드 및 채널별 강점을 활용해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신규 시장을 공동개척해 대응력을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HD현대 관계자는 "그간 겹쳤던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의 사업을 합쳐 사업 효율성과 시너지를 극대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중간지주사 역할은 계속된다. 지주사 HD현대→중간지주사 HD현대사이트솔루션→HD건설기계 체제로 간소화되면서 의사소통 일원화를 이룬 상황이다. HD건설기계는 내년 1월에 출범할 예정이다.
조선부문도 IPO 대신 합병으로 변화를 줬다. 유일하게 비상장사였던 HD현대삼호의 IPO를 추진하는 대신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를 합병해 '통합 HD현대중공업'을 출범하면서 조선업 역량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의 본격 가동을 앞두고 내린 결정이라 이목이 집중된다. 마스가에 따라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등의 새 영역에서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HD현대중공업의 국내 최다 함정 건조·수출 실적 및 기술력과 HD현대미포가 보유한 함정 건조 적합 독(dock)·설비 등을 결합하면 경쟁력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이에 따라 HD현대의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 산하에 통합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삼호 두 자회사가 자리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HD현대의 합병 결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한결 키움증권 연구원은 "HD현대건설기계는 HD현대인프라코어를 흡수합병하며 수혜를 볼 것"이라며 "합병 이후 건설기계 사업부의 매출 규모 확대와 엔진 사업부의 중장기 성장 기대감이 더해지며 글로벌 경쟁업체 대비 저평가 요소가 해소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현준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건조 생산능력(CAPA) 확대와 생산시설의 운영효율성 제고 등으로 방산 부문의 사업 기반이 강화하고 외형이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이번 자회사 합병은 HD현대미포가 군함 라이센스가 없고, HD현대미포만 건조할 수 있는 군함 사이즈가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합병을 진행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이중상장이 일부 해소되면서 HD한국조선해양의 주가가 올랐다"고 봤다.
이와 함께 HD현대는 전력기기 사업 역량도 강화하는 중으로, HD현대일렉트릭을 중심으로 유럽,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초고압 변압기 수주를 따내면서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HD현대 그룹은 호황 사이클에 접어든 조선·방산, 전력기기, 건설기계로 핵심 자회사를 구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의 IPO 추진이 어려워진 환경으로, 이 시기 자회사 합병은 HD현대 지주사 입장에서는 계열사 중복 상장에 대한 주주들의 비판을 무마할 수 있으면서도 핵심 사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는 국내 10대 기업 그룹의 과거 5개년 매출과 이익 성장성을 고루 감안해 분석한 결과, HD현대 그룹이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발판 삼아 비교군 중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