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본원에 핵심 서비스 몰려 이중화 작동 실패…외주 운영·감독 부실 책임 공방

김민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행안부 차관)이 29일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공용브리핑실에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와 복구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민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행안부 차관)이 29일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공용브리핑실에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와 복구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전 정부통합전산센터 화재로 국가 전산망이 전국적으로 마비된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물리적 취약성과 관리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한 곳의 장애가 곧바로 전국적 혼란으로 이어졌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아왔던 우리나라 전자정부 시스템이 물리적 안전장치와 이중화 설비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구조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데이터센터는 여러 지역에 분산 배치됐지만 핵심 시스템은 여전히 대전본원에 집중돼 있었다.

화재로 전력 장치가 파괴되자 항온·항습기가 정지했고, 서버 과열을 막기 위해 647개 시스템이 선제 중단됐다. 데이터 백업은 있었으나, 실시간 서비스를 대체할 ‘핫사이트’는 작동하지 않았다. 공주 DR센터 역시 아직 완전 가동 전이라 즉각적인 전환은 불가능했다.

결국 분산은 있었지만 운영은 미흡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강조해온 4개 센터 분산 체계는 실제 서비스 연속성을 담보하지 못했고, 물리적 분산이 형식적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이 커졌다.

관리 체계의 허술함도 확인됐다. 화재 초기 대응은 늦었고, 자동 소화 설비의 작동 여부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전산센터는 원전이나 발전소처럼 국가 기간시설로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은 외주 인력 중심 운영에 의존해 위기 대응 매뉴얼과 훈련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정부의 감독 부실도 도마에 올랐다. 감사원에서 이미 여러번 ‘중복 전원 설비와 이중화 미흡’을 경고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을 이유로 개선이 지연돼 왔다. 이번 화재는 그 공백이 현실화된 사례라는 분석이다.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복구 현황을 긴급 발표했다. 김민재 제1차장은 “29일 낮 12시 기준 647개 중 62개 시스템이 정상화됐으며, 주민등록등본 발급 등 정부24와 우체국 금융서비스가 우선 복구됐다”고 설명했다. 또 “화재 영향이 적은 전산실부터 순차 재가동 중이며, 직접 피해를 입은 96개 시스템은 대구센터로 이전 구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국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 세금 납부 기한 연장, 오프라인 대체 창구 운영, 수수료 면제 등 긴급 조치를 시행했다. 김 제1차장은 “국민생활에 밀접한 서비스가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필사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대체 수단 안내와 사이버 범죄 예방도 병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책임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야당은 행정안전부를 겨냥해 “한 번의 화재로 국가 행정 서비스가 멈춘 것은 관리 실패”라며 장관 책임론을 부각했다. 여당도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국민 불신도 확산됐다. 주민등록, 세금 신고, 여권 발급 등 기본적 행정 서비스가 마비됐지만, 관련 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회피했다. 시민사회는 “책임자는 없고 피해만 국민이 본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해외 사례도 경각심을 더한다. 2021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데이터센터 화재로 수많은 기업이 마비됐고, 미국도 클라우드 장애로 공공 서비스가 멈춘 적이 있다.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님을 이번 사태가 확인시켰다.

IT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책임 회피의 전형적 사례”로 규정한다. 외주 운영, 형식적 감독, 중앙 집중 운영이 겹치며 시스템이 붕괴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휘 체계와 책임 구조를 전면 재설계하지 않으면 제2의 먹통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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