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그룹이 또다시 국정감사 증인석에 선다. 14일 열리는 22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부 국정감사에 김기호 영풍그룹 대표가 출석해 석포제련소 환경오염과 중대재해 관련 사안을 증언할 예정이다.
2014년 이후 거의 매년 국감 도마에 올랐지만 실질 개선은 지지부진하다는 게 국회와 시민사회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특히 통합허가조건도 이행하지 못해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제기하는 ‘이전 또는 폐쇄’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13일 국회에 따르면 이번 환노위 증인으로 김 대표를 채택했으며, 신청은 국민의힘 김형동·더불어민주당 김태선·강득구 의원이 공동으로 제출했다. 증인 신문요지는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 노동자 중대재해 대응, 허가 조건 이행 여부 등이다. 주요 쟁점으로는 △토양정화 명령 미이행 △반복된 환경법 위반 △지하수 오염 지속 △책임 소재 불명 등이 제기된다.
업계와 보도에 따르면 김 대표는 그룹 내 환경·안전 실무를 관장하는 책임자라고 평가받고 있고, 전략적 의사결정권은 장형진 고문 등 오너 일가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이번 국감에서도 제대로 된 개선책이 나오기보다는 ‘꼬리 자르기’ 증언이 반복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장 고문은 지난해 첫 국감 출석 당시 “석포제련소는 내 사업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답변으로 여야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지난 10여 년간 물환경보전법, 대기환경보전법,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수차례 적발됐다.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이 공장은 대구·부산 등 하류 도시의 상수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역에 있어,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폐쇄 요구를 받고 있다.
2022년 12월 통합환경허가를 받으며 103개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이행률은 극히 낮다는 것이 업계 의견이다. 봉화군이 공개한 2025년 6월 말 기준 자료에 따르면 토양정화 이행률은 제1공장이 면적 기준 16%, 제2공장은 4% 수준이다. 통합환경허가 불이행은 ‘오염토양 정화’나 ‘토양오염 조사 및 정화’ 같은 허가 조건 조항과 직결되는데, 2공장 이행률은 1% 수준으로 허가 조건인 토양정화 이행 의무를 거의 무시하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풍 석포제련소는 올해 폐수 무단 배출 등 물환경보전법 위반으로 조업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환경부와 경상북도는 2025년 2월 26일부터 4월 24일까지 1개월 30일간 조업정지 처분을 시행했다.
정화 불이행뿐 아니라 지하수 오염도 여전하다. 환경부와 봉화군의 조사 결과, 카드뮴과 아연 등 중금속 농도가 여전히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제련소 인근 지하수는 산업용수 기준을 수십 배 상회하는 수치가 관측되기도 했다. 지난해 국감 당시 제시된 ‘지하수 기준 초과 시 폐쇄 가능’ 조건이 여전한 셈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7월 영풍의 환경오염 책임을 인정하며 환경부에 ‘토양정밀조사’ 이행을 권고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예산과 행정 절차를 이유로 즉각적인 정밀조사 착수를 미루고 있다. 봉화군이 발주한 ‘석포제련소 이전 타당성 조사 및 종합대책 용역’도 연구 착수 단계로 내년 7월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어서 당장 강력한 조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제도적 조치가 거듭되는데도 현장의 실질 개선은 지지부진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행정명령이 반복되지만, 석포제련소 제련잔재물 처리율이나 지하수 오염 개선 효과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 않아 영풍 이행률이 ‘시간 끌기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영풍 측은 여전히 법적 대응을 선택하고 있다. 조업정지 처분에 불복한 소송이 이어지고, 일부 처분은 법원의 효력정지 결정으로 미뤄지고 있다. 실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9월 경북도의 조업정지 10일 처분에 대해 효력정지를 결정했다. 환경부와 경북도, 봉화군이 추진하는 정화·이전 절차가 또다시 지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감의 핵심을 책임 구조와 제재 강화로 보아야 한다고 평가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행정대집행이나 허가취소 수준으로 가지 않는 한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국감에서 임이자 의원 질의에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영풍 석포제련소가 잔재물을 처리 못하면 조업정지, 오염토양 정화 기준을 미달하면 이전 조치, 지하수 오염금지 기준을 초과하면 폐쇄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영풍의 실소유주인 장형진 고문은 지난해 국감에서 “정부 결정에 따르겠다”는 취지로 답한 바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화명령 이행 여부를 지속 점검 중이며, 미이행 시 형사고발과 추가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봉화군도 “토양정화 명령을 재부과하고, 환경부 권고에 따라 정밀조사 예산 확보를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증인으로 나오는 인물이 바뀌어도 문제의 본질은 같다”며 “실질적 책임자가 빠진 국감은 또 ‘면피용’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미이행 상황을 감안하면 제련소는 조업정지 단계를 넘어 폐쇄 명령까지 갈 수 있다”며 “이번 국감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국회가 책임자 소환과 제재 수위를 실제로 행사한다면 영풍 석포제련소가 변하거나 폐쇄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이 지금처럼 계속 국민을 괴롭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