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운전자론 고수해야…정글의 법칙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어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유독 많이 나오는 말들이 있다. 반미·반일·친중 사대주의다. 보수와 진보 진영 간 툭하면 나오는 말이다. 보수진영은 문재인 정부를 반미·반일에 앞장서면서 친중 신사대주의를 꿈꾼다고 몰아붙인다.

참 오래된, 그리고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시답잖은 싸움이다. 반미를 외치면 친미가 있고 반일을 외치면 친일이 있다. 역시 친중을 앞세우면 반중이 있다. 이런 이분법적인 논란이 현실에서 가당키나 한가.

조선시대 안방정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지구촌이 글로벌화 된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런 한가로운 시대착오적인 주장으로 서로를 물고 뜯는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시대가 도래하고 4차 산업혁명에 분주히 대비하는 세계적 흐름 속에 대한민국만이 시간을 역행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반미가 어디 있고 반일이 어디 있고 친중이 과연 존재키나 할까. 뒤집어 친미가 어디 있고 친일이 어디 있고 반중은 또 어떤가. 이미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될 수 있음은 수없이 목격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가동된 게 언젠데 아직도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나. 반미를 하면 중국, 러시아가 반기고 친중을 하면 일본과 미국이 눈을 흘긴다. 이건 강대국 사이에 낀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그러니 균형외교가 필요하다. 어느 한쪽만을 쳐다볼 수 없다. 이건 지정학적 위치 운운하며 자위하던 조선시대나 통했던 얘기다. 물론 그때도 균형외교가 어그러지면 어김없이 외세에 시달렸지만. 

한·중 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이 격화되면서 한국 언론에서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의 온갖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건 당연하다. 국익 앞에 누가 손 놓고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건 바로 매국노다.

"반일 · 반미 구태의연 정쟁 구호

용일(用日) 용미(用美) 한목소리 긴요

사드 갈등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이후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지긴 했다.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사드 갈등을 비판한 수많은 기사 중 불편하게 한 건 바로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은연중이든 아니면 오랜 된 관성처럼 사용되는 못된 표현을 말하고자 한다.

바로 중국의 태도를 꼬집으며 ‘대국답지 못한 중국’이란 표현이다. 대개의 언론들이 한 번씩은 썼음직한 표현이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되나 이 말 속에는 자해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아주 고약한 자기비하적인 굽신거림의 어두운 그림자가 투영된다.

대국이란 말 그대로 큰 나라다. 영토를 말하는지 국력을 말하는지 애매하지만 영 거슬린다. 급속한 성장가도를 달리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영토도 국력도 대국임을 자부한다. 그렇다고 우리 언론들이 꼭 이런 표현을 해야 할까.

대국다운 것은 무엇인가. 중국이 대국다우려면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쯤으로 받아들여진다. 뒤집어 보면 상대국이 소국이라면 소국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대국은 아량을 베풀고 소국은 대국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런 외교란 그 어느 세상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논리의 역설이다.

외교란 언제나 동등한 입장에서 관계를 풀어 나가는 것이다. “외교는 조국을 위해 외국에서 거짓말을 하는 애국적 행위”, “정직이 가장 좋은 외교정책” 등의 표현도 있지만 시사주간지 타임은 외교를 ‘예술의 한 형태’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외교 최고 가치는 '국민과 국익'

한반도 운전자의 네비 '실사구시'

 경제는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고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 이런저런 논리를 앞세우지만 결국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러시아, 일본, 영국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국론’을 내세우는 것은 외교에 앞서 이미 지고 들어가는 셈이다. 

반일이나 반미도 마찬가지다. 색안경을 끼고는 현실을 바로 볼 수 없다. 미국 역시 한미안보동맹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한미FTA 재협상과 자국 우선주의로 관세의 장벽을 높이고 있다. 반일 감정이 높아질수록 일본은 그를 빌미로 군사력을 증강시킬 것이다. 결국 모두가 잠재적인 동지이자 잠재적인 적이다. 

강대국이란 현실을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해도 국익을 위해 주체적 노력으로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쥐도 고양이를 문다. 동물의 왕국에서 아무리 사자라도 무리지어 있는 영양의 무리를 함부로 덮치지는 못한다. 

상대국을 대국 운운하는 것은 소국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정글 속에서 스스로 먹잇감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국 논리도 반미·반일도 아니다. 위기일수록 냉철한 판단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어느 나라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당당함만이 최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 정부의 외교를 관통하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국익과 국민”이라고 했다. 주변 4강에 집중된 외교 관계를 유럽, 동남아 등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국익 중심의 외교를 하기 위해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한편 실사구시하는 실용외교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백번 지당하다. 북한의 핵도발로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대북 관계주도권을 내줘서는 안 된다. 한반도 운전자론은 계속돼야 한다. 지금 정글에서는 서로의 근육자랑이 질펀하게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도 아베도 푸틴도 시진핑도 심지어 김정은까지 가세한 형세다.   

결국 이 정글의 싸움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중국을 향해 대국이란 표현은 접어야 한다. 반일이나 극일대신 용일(用日)의 외교를 펼쳐야 한다. 반미나 친미가 아닌 용미(用美)의 자세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당당히 설 수 있다. 당당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