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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영의 클래식리뷰]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2】
[송도영의 클래식리뷰]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2】
  • 송도영(고전평론가) (webmaster@straightnews.co.kr)
  • 승인 2018.0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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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모두가 읽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이야기이다(A classic is something that everybody wants to have read and nobody to read ).” 미시시피 강 유역을 배경으로 개구쟁이 소년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그린 작가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이 고전에 대해 평한 말입니다. 스트레이트뉴스의 ‘클래식 리뷰’를 통해 고전은 어렵다거나 형편없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고전에 친숙해지고 마음껏 비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근대 자본주의, 이윤 추구와 욕망 강화의 산물

베버가 이 논문에서 분석하는 근저에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와 “근대 자본주의”의 구별이다.

재화의 교환, 이윤의 추구, 돈이라는 관점에서의 손익 계산 같은 것을 포함하는 “자본주의” 중에 대표적인 것들이 투기 자본을 운용하는 “모험 자본주의”와 정치권력에 의거한 “정치 자본주의”였다. 그렇다면 “근대 자본주의”는 고대부터 모든 시대에 존재했던“ 자본주의”와 어떻게 다른가?

베버가 열거하는 근대자본주의 특징은, 시장에서 재화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교환, 기업활동과 가사활동의 분리, 복잡한 회계 방식의 발달, 노동과 작업장의 합리적인 조직, 노동자는 법적으로 자유민, 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상시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자본주의 정신이 지배하는 곳에서 노동은 고귀한 미덕으로 인식되고 개개인이 가치있다고 느끼는 것과 관련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베버는 전통적 경제윤리를 추종하는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을 천한 고역이자 필요악으로 여겨서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는 순간 노동을 회피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경제적 전통주의를 끝장낸 “혁명”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의 조상을 특정한 종교, 즉 청교도(칼뱅주의) 사상에서 찾았다. 

독일에서 100년 전에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근대 자본주의 기원에 대한 논쟁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학자들은 탐욕을 강화하는 영리취득의 본능은 근대 자본주의 시대 이전에는 덜 발달되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는데, 18세기와 19세기의 근대 자본주의는 “이윤 추구”와 욕망의 강화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베버는 “황금에 대한 욕심”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서 모든 시대와 모든 곳에 존재해왔다고 반박했다.

역사적 유물론과 관련해서 자본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주된 관심은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다. 그는 근대 자본주의의 출현을 봉건 귀족계급의 와해와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급의 지배와 등치시키고, “부르주아”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와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탐욕이 근대 자본주의 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역사적 유물론의 설명에서는 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설 자리가 없었다.

베버는 역사적 유물론의 설명을 철저히 배격하고, 이 새로운 계층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자본주의 정신을 낳은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 경제윤리는 “부르주아”가 형성되기 이전에 그 안에 먼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근대 자본주의의 초기 발전을 설명할 때는 “합리적 경제 윤리”가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원인과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윤리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탐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상인은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자들"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의 원천을 “종교”에서 찾은 것은 시행착오를 각오하고 한번 시도해 본 것이 아니다. 종교적 신념은 삶 전체는 물론이고 노동 습관과 기업에 대한 접근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를 기반으로 개신교 윤리를 탐구하고,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밝힌다.

중세 가톨릭에 의하면 상인과 기업가는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기보다는 이윤추구를 통한 부의 축적을 더 중시함으로써 자신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한 자들이었고, 기독교적 윤리와 형제애를 어기고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착취하여, 상인은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루터는 하느님이 개개인의 삶과 소명을 미리 확고하게 정해 놓았기 때문에,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서 재화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죄악이 된다고 보았다. 또한 고해제도도 유지했다. 베버의 평가에 의하면 루터교의 경제윤리는 시장에서 재화의 거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비인격적인 인간관계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가톨릭의 형제애를 간직한 전통주의적 성격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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