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보고 듣는 세상에 가능한 한 가장 가까이 접근하게 해주는 장르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실제 사람들의 목소리와 고백의 장르를 선택했습니다. 인간도 세상도 너무나 다면화되고 다양해진 오늘날,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스터리하고 불가해한지 마침내 우리가 깨닫게 된 오늘날, 한 인생의 이야기 혹은 그러한 이야기의 기록은 우리를 현실 가장 가까이로 데려다줍니다.”

2015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67)의 말이다.

그녀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이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Q&A 형식이 아니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강렬한 매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그녀의 책들은 인류와 사상의 역사를 압축해놓은 산문으로 평가되지만, 이것은 정치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나는 세상을 목소리와 색깔로 간주합니다. 책마다 대상이 바뀌지만 이야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같기 때문이죠. 나는 수천 개의 목소리로 일종의 작은 백과사전, 즉 우리 세대에 대한,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백과사전을 만들었죠. 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들이 믿은 것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죽고 또 어떻게 살인을 했을까요? 또한 얼마나 힘들게 행복을 구했을까요? 결국 행복을 잡았을까요?”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군인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벨라루스인이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다. 아버지가 군에서 동원 해제된 후 그들은 아버지의 고향인 벨라루스로 돌아가 정착했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 다 교사로 일했다. (아버지의 할아버지 역시 그 지역 교사였다) 졸업 후 알렉시예비치는 고멜 지역의 나로블이라는 마을에서 지역 신문사 기자로 일했다.

알렉세예비치는 학창 시절부터 이미 시를 썼고 학교 신문에 기사를 기고했다. 그 당시 그녀는 민스크 대학 저널리즘 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2년의 노동기록이 필요했다. (그때 법이 그랬다.) 그녀는 1967년에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대학교 언론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중 그녀는 공화당과 연합 전체가 주최하는 학술 신문과 학생 신문 대회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학위를 받은 후 알렉세예비치는 브레스트 지역 베레사로 갔다. 그곳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는데 동시에 지역 학교에서 교사로도 일했다. 당시 그녀는 여러 가지 다양한 직업 선택 사이에서 망설였다. 가풍을 이어 학교에서 선생 일을 할 것인지, 학술 연구를 할 것인지, 저널리즘에 종사할 것인지. 하지만 일 년 후 민스크의 지방 신문사 직원으로 초청되었다. 몇 년 후, 그녀는 문학잡지(네만)에서 기자로 일하게 됐고, 곧 논픽션 섹션의 장으로 승진했다.

그녀는 단편, 에세이, 보도 등 다양한 장르에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해왔다. 그녀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벨라루스의 유명 작가 아다모비치였다. 특히 그의 책 ‘나는 불같은 마을에서 왔다’(I’m from the Fiery Village)와 ‘포위의 책’(The Book of Siege)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다른 작가들과 공동 저술한 책이었으나 발상과 전개는 전부 아다모비치의 것이었고, 벨라루스 문학과 러시아 문학 둘 모두에 없었던 새로운 장르였다. 아다모비치는 그 장르에 알맞은 정의를 찾고 있었고, 그의 몇몇 명칭을 이름 짓기 위해 ‘집단소설’ ‘소설 오라토리오’ ‘소설-증거’ ‘자신들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서사시 합창’이라고 불렀다. 알렉시예비치는 항상 아다모비치를 자신의 가장 중요한 스승으로 꼽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한 인터뷰에서 알렉세예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실제 삶에 가능한 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문학적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리얼리티는 언제나 자석처럼 나를 매료시켰고, 나를 고문했고 내게 최면을 걸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종이 위에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인간의 목소리와 고백, 증언 증거와 문서를 사용하는 장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세상을 듣고 보는 방식입니다. 개개인의 목소리가 모인 합창, 매일의 세부사항이 만드는 콜라주이지요. 나의 눈과 귀는 이렇게 기능합니다. 이 방식 안에서 나의 모든 정신적, 감정적 잠재력이 정점에 오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방식 안에서 저는 동시에 작가이자 기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설교자가 될 수 있습니다.”

1983년, 알렉세예비치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War’s Unwomanly Face)의 집필을 끝냈다. 이 책의 원고는 2년 동안 출판사에 남아 있었으나 출간되지 못했다. 그녀는 영웅적인 소비에트 여성들에게 찬사를 돌리지 않고 그들의 아픔과 고뇌에 주목한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그러한 비난은 그 시절 꽤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녀는 첫 책 ‘나는 내 마을을 떠났다(조국을 버린 사람들의 독백’(I’ve Left My Village(monologues of people who abandoned their native parts)의 발표 이후 이미 반소비에트적 정서를 가진 반체제적 인사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벨라루스 중앙위원회의 공산당 명령에 따라 기출간된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폐기되었고 그녀는 반공산주의, 반정부적 견해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사직 협박도 받았고,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어떻게 우리 잡지에서 그런 이질적인 관점으로 기사를 쓸 수 있는가? 왜 아직도 공산당 당원이 아닌가?”

하지만 마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새 시대가 도래했고,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었다.

1985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벨라루스의 민스크와 모스코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그리고 수년 동안 반복해서 재판을 찍었다. 이 책은 2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 이 소설, 작가 자신이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이 작품은 전쟁을 겪은 여자들의 독백, 2차대전의 알려지지 않은 면을 이야기하는 독백들로 이루어졌다. 전에는 한 번도 말해진 적 없는 이야기였다. 작품은 대중뿐 아니라 수많은 전쟁작가들에게서도 찬사를 받았다.

같은 해, 그녀의 두번째 책 ‘마지막 증인들: 천진하지 않은 100가지 이야기’(The Last Witnesses:100 Unchildlike Stories)가 출간됐다. 같은 이유들(평화주의, 이념 기준 부합 실패)로 역시나 출간이 미뤄졌던 책이다. 이 책 또한 수많은 재판을 찍었고, 많은 비평가들이 두 책을 ‘전쟁문학 장르의 발견’이라고 일컬었다. 여자와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전쟁은 감정과 사상의 전혀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전쟁 40주년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타간카 극장에서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아나톨리 에프로스 연출) 옴스크 드라마 시어터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제작으로 국가상을 받았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쓴 연극도 전국적으로 상연되었고, 다큐멘터리 영화 시리즈도 제작되어 국가상과 라이프치히 다큐멘터리 영화 페스티벌에서 실버도브 상을 수상했다. 이로 인해 알렉세예비치도 여러 상을 수상했다.

1989년, 10년 간 소비에트 사람들에게 감추어졌던 범죄적인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책 ‘아연 소년들’(The Boys in Zinc)이 출간되었다. 집필 자료를 모으기 위해 알렉시예비치는 4년 동안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쟁 희생자들의 어머니들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퇴역 군인들을 만났다.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책은 충격적인 이야기였고 많은 사람들이 신화화된 전쟁에 해를 입히는 이 작가를 용서하지 못했다.

우선 군사 신문과 공산주의 신문이 알렉세예비치를 공격했다. 1992년, 민스크에서 그녀와 그녀의 책들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하지만 민주적 의식을 가진 대중들이 그녀의 책을 옹호했고, 재판은 종결되었다. 그후 이 책을 소재로 한 몇몇 다큐멘터리 영화와 연극이 제작되었다. 1993년, 알렉세예비치는 ‘죽음에 매료되다’(Enchanted with Death)를 출간한다. 사회주의의 본토가 몰락하자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사회주의 이상과 그들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할 것처럼 느꼈고, 새로운 질서, 새롭게 해석되는 역사를 가진 새로운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책은 ‘십자가’(The Cross)라는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다. 1997년에 알렉세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The Chernobyl Prayer: the Chronicles of the Future)를 출간했다. 책은 체르노빌 사건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이후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현실, 이미 도래했으나 아직 납득하지 못한 현실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이야기한다. 체르노빌 사태를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 전체 인류에 득이 될 만한 지식을 얻었다. 그들은 3차대전 이후인 것처럼, 핵전쟁 이후인 것처럼 산다. 책의 부제는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의 모든 역사를 돌아보면 소비에트 시대건 포스트소비에트 시대건, 거대한 공동묘지와 대량학살의 역사였습니다. 처형된 자들과 희생자들의 영원한 대화지요. 러시아의 저주받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혁명, 강제노동 수용소, 2차대전, 사람들에게 감춰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대제국의 몰락, 거대한 사회주의 지역의 몰락, 유토피아의 땅, 그리고 체르노빌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전. 이것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제 책들의 주제이고, 저의 길,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가는 제 지옥의 순환입니다.”

알렉세예비치의 책은 여러 국가에서 출간되었다. 미국, 독일, 영국, 스웨덴, 프랑스, 중국, 베트남, 불가리아 등 모두 35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수백 편의 영화와 연극, 방송극을 위한 대본으로 사용되었으며 다수의 국제 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2011년 출간되었고, 2015년 10월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가 창시한 ‘목소리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원고가 21개, 희곡이 3개 있고, 프랑스와 독일, 불가리아에서 상연됐다.

알렉세예비치는 수많은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다. ‘용기와 위엄 있는 작품’에 수여하는 쿠르트 투홀스키 상(스웨덴의 펜 상), ‘고귀한 문학’에 수여하는 안드레이 시냐프스키 상, 독립적 러시아 상 ‘트라이엄프 프라이즈’, 라이프치히 프라이즈의 ‘유럽 상호 이해 1998’, 독일의 ‘최고 정치 서적 상’과 헤르더 상을 받았다.

알렉세예비치는 자신의 삶과 작품의 주된 추진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저는 늘 각각의 인간에게 인간성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개인 안의 그런 인간성을 내가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군사-사회주의 정권, 새로운 포스트 소비에트 독재정권이 수립된 벨라루스의 최근의 사건들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련되어 새 함의를 얻었다. 이제 알렉시예비치는 조국의 권위자들에게 다시 눈총을 받고 있다. 그녀의 가치관과 독립성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훌륭한 지성인들과 함께 반대파에 속해 있다.

그녀의 작품은 소비에트 시대와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사람들의 정서적 역사의 문학적 연대기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독창적인 장르를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새로운 책을 낼 때마다 새로운 방식을 사용한다.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실제 삶을 따라가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말한 레프 톨스토이의 말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 안의 많은 것들이 여전히 예술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어요”라고 알렉세예비치는 말한다.

알렉시예비치는 현재 새 책 ‘영원한 사냥의 훌륭한 사슴’(The Wonderful Deer of the Eternal Hunt)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 이야기다. 다양한 세대의 남자와 여자가 그들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동안은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죽이고 죽는지에 대한 책을 써온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인간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제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지 쓰고 있어요. 이번에는 사랑의 프리즘을 통해, 다시 한번 저 자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요.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가 사는 나라는 무엇인가? 하고요. 사랑은 우리를 세상으로 데려갑니다. 나는 사랑들을 사랑하고 싶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요. 계속 어려워지고 있지만요.” <자료제공=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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