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개최 여부를 주민투표로 묻는 국가, 독일」
「주민투표를 하기 위해 시민이 몸부림치는 국가, 한국」
「국민의 큰 권리, 유신 때 사라져」
「국민이 이기는 정부, 어디서 시작해야 하나?」

김태현

독일의 주민투표와 한국의 주민소환

2013년 가을, 독일 뮌헨에서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투표가 실시되었다.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였다. 결과는 개최 포기.

그리고 어제, 2024년 하계올림픽 개최에 도전했던 독일 함부르크 역시 주민투표를 실시, 개최 반대표가 51.6%를 차지함에 따라 유치 포기를 선언했다.

▲ 말해, 예스 오어 노! ⓒen.tengrinews.kz

같은 날,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100년 넘게 서민의 건강을 지켜온 진주의료원을 폐업시키고 무상급식까지 중단시켰던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소환하기 위한 주민소환 청구서명부가 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되었던 것이다.

주민소환 청구 요건은 경남도 내 유권자의 10%인 267,416명인데, 이번에 제출된 서명부에 서명한 유권자 수는 이를 훨씬 넘긴 367,000명이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 주민소환에 서명하는 시민들 ⓒrecallhong.org

주민소환제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직권남용, 위법하고 부당한 행위, 예산 낭비 등을 주민이 투표로 직접 제어할 수 있는 제도이다.

비슷한 사례로 시장 직을 내려놓은 사례가 있다. 몇 년 동안 혈세만 먹으며 빈둥거린 세빛둥둥섬에 2,000여억 원을 쓰고도 무상급식비 690여억 원을 쓰지 않겠다고 아이들 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부쳤다가 자진 하차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세빛둥둥섬 ⓒblog.donga.com

지방정부는 시민의 편에 서야

이번에 제출된 주민소환 청구자 수는 기본 요건을 훨씬 넘어선다. 이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도지사 직을 내려놓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번 주민소환 청구는 홍준표 지사를 자리에서 끌어내릴지 말지를 결정하는 투표를 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라서 그렇다.

주민소환 청구 서명부가 제출되자마자, 신대호 경상남도 행정국장은 브리핑을 갖고 “서명부 열람기간에 위·변조, 사서명 위조 등 불법적 서명행위를 검증해 150억 원이라는 혈세가 주민투표로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크게 반발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시민이 직접 뽑는다. 그러나 직권남용이나 부당한 정책, 예산을 낭비하는 정책 등을 펼치는 지방자치단체장이라면, 시민이 투표로 해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풀뿌리민주주의 아닌가.

▲ 청구인 명부 / 브리핑 중인 신대호 경남도 행정국장

지방의 중대한 정책을 주민투표로 두 번이나 부결시킨 나라 독일, 그리고 도지사 해임을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야만 하는 나라 한국, 독자 제위의 눈에는 어느 나라가 더 민주적으로 보이는가.

뽑는 권리를 시민이 가졌다면 끌어내릴 수 있는 권리도 시민에게 있어야 하며, 시민이 지방자치단체장을 끌어내리려는 결정을 서명으로 했다면, 지방정부의 행정 담당자는 시민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러라고 시민들이 혈세를 급료로 지불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때 있었지만 사라져버린 국민의 권리

주민투표, 주민소환과 같은 제도는 대의민주주의가 그동안 드러내왔던 문제들을 보완해 지방정부와 시민이 권력을 분점하도록 하는 제도들이다. 대의민주주의가 가진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직접민주주의의 단점을 혁신하기 위해 탁월한 능력을 가진 대표를 내세운 것까지는 좋았으나, 선출된 대표에 의한 ‘이성적’ 통치를 지나치게 강조했던 것,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의민주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 중 하나인 주민소환을 한 국가로 확대해 보면 국민소환, 국민발안, 국민거부투표 등이 있다. 이런 제도들은 헌법과 대통령, 정부정책 등을 대상으로 하며, 국민의 결정을 국가 운영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우리나라에 이런 제도가 있을까? 없다. 현행 헌법은 대의민주제에 반하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국민발안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헌법 제128조 제1항
헌법 개정의 제안권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한정한다.
헌법 제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과거에도 없었을까? 허이구, 지금도 없는데 과거에는 당연히 없었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있었다. 1954년 11월 29일, 이승만 정권의 제2차 개헌에 포함되었던 ‘국민발의 국민투표제’가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의 제약 또는 영토의 변경을 가져올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사항은 국회의 가결을 거친 후에 국민투표에 부하여 민의원 선거권자 3분지 2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3분지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전항의 국민투표의 발의는 국회의 가결이 있은 후 1개월 이내에 민의원 선거권자 50만인 이상의 찬성으로써 한다.’

- 1954년 제2차 헌법 제7조의 제2항 -

▲ 헌법개정의 건 / 헌법개정의제의 공고에 관한 건 ⓒpa.go.kr

또한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개정된 제3공화국 헌법에도 다음과 같이 국민발의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헌법 개정의 제안은 국회의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또는 국회의원 선거권자 50만인 이상의 찬성으로써 한다’

- 제5차 개헌 헌법 제119조 -

그러나 이 법은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제7차 유신헌법 개헌으로 폐지하면서 무려 18년 28일 간의 긴 생명을 마감해야 했다.

 

국민은 국가 경영의 중요한 축

신대호 경상남도 행정국장의 브리핑을 보면, 그가 주민투표 비용 150억 원을 낭비의 요소라고 본 것이 확실해 보인다. 좋다. 불필요하다면 분명 낭비일 것이다. 그러나 따져보자.

홍준표 도지사가 무상급식 폐지를 선언한 직후, 대한민국은 온통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라는 이분법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후로도 지금까지 국민들은 이 문제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분열을 겪어야 했던가. 그동안 사회적 갈등에 소비된 비용이 고작 150억 원 정도일 것 같은가?

▲ 사회적 기회비용은 무시하고...?

만일 애초에 홍준표 도지사가 강압으로 관철시키는 대신 깔끔하게 주민투표로 시민의 의사를 물었더라면, 오늘 고위 공무원인 행정국장의 정신머리 없는 예산 낭비 우려 따위는 듣지 않고도 150억 원보다 더 많은 혈세가 낭비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선거권자 50만 명이 모이면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는 나라, 국회의원 선거권자 100만 명이 모이면 헌법도 바꿀 수 있는 나라, 우리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가 되면 안 되는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에서 국민이 이기는 정부는 존재한 적이 없다. 온통 국민을 이기는 정부뿐이었다. 그 이유는 무슨 사기를 치건, 무슨 감언이설을 늘어놓건, 일단 정부만 구성되고 나면 국민과의 권력 분점 따위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행정부 수장이 국민을 IS에 비견하는 오늘이다. 국민이 그 말에 놀라 ‘브이 포 벤데타’라는 영화를 다시 보는 현실이다.

그나마 성취한 이 나라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18년 28일 동안 살아 있었던 권력 분점 제도까지 지워버린 유신시대로 역주행하고 있는 지금, 국민을 국가 경영의 중요한 축으로 생각하면서 권력을 나눠주는, 그래서 국민이 이기는 정부를 탄생시킬 수 있는 초석은 언제나 다져질까? 홍준표 경남도지사 주민소환이야말로 큰 미래를 향한 작은 출발점이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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