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2018)」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나무는 땅에 뿌리박고 혼자 잘 살아가는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땅속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세균이 없으면, 나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나무와 세균의 공생관계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미생물이 낙엽, 삭은 가지, 동물과 곤충의 사체 등을 분해하고 질소와 인산을 합성함으로써 나무에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어낸다. 질소는 나무의 생장에 꼭 필요한 영양소이고, 인산은 열매의 당도를 높여주는 성분이다. 열매가 달아야 새와 곤충을 유인할 수 있고, 그들의 힘을 빌려야 씨를 널리 퍼뜨릴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무는 해가 비치는 동안 광합성으로 생산한 탄수화물을 밤사이 뿌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그 일부를 잔뿌리를 통해 흘려보냄으로써 미생물에게 일당을 지불한다. 그러니까 나무와 세균의 공생관계는 도덕책에 나오는 미담美談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이며, 일종의 분업체계인 동시에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이다.

진달래 꽃술에 붙어 꿀을 채집하는 벌 한 마리만 봐도 자연계의 질서가 얼마나 촘촘한지 알 수 있다. 벌의 노동 이전에 꽃을 피운 나무의 노동이 있고, 꽃부리에 고인 꿀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한 미생물의 노고가 담겨 있다.

나무뿌리 주변에 사는 미생물은 노동의 대가로 식량을 확보한다. 벌은 꿀을 얻는 대신 식물의 수분受粉(가루받이)을 돕는다. 가루받이를 바람에 의존하는 소나무는 꿀을 생산하지 않는다.

인간의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숲에서는 노동-생산-교환 행위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이 원활히 이루어질 때 숲은 건강해지고 점점 풍성해진다.

생산의 기본 수단은 역시 노동이다. 모든 생명은 생산을 기반으로 유지되며 노동 없는 생산은 극히 드물다. 겨우살이 같은 기생식물이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새들에게 영양이 풍부한 열매를 제공한다. 새들은 살아있는 동안 나무를 해치는 벌레를 잡아먹고, 나무에 똥거름을 주며, 죽어서는 그 스스로가 거름이 되어 나무를 키운다.

숲속의 노동은 땀 한 방울의 낭비도 없이 생태계를 돌고 돈다. 얼핏 보기에 먹고 먹히는 제로섬 게임 같지만, 사실은 분업과 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여러 단계를 거치지만 결국은 일한 만큼 보상받는다.

만약 노동에 비해 얻는 소득이 적다면, 그 생태계의 근본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바꾸어야 하고, 숲은 스스로 바꿀 줄 안다.

숲의 교환 과정은 매우 공정하다. 자신이 내주는 것보다 상대에게서 더 많이 가져가는 개체는 대부분 숲에서 퇴출된다. 인간 사회는 정반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리먼브라더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금융자본가가 살아남았다. 그들은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위험)은 납세자에게 전가했다.

자연생태계는 위험의 사회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주어진 기회나 능력보다 많이 가지려는 사자는 악어에게 먹히거나 물소의 뿔에 찔려 죽는다.

숲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보는 것은 인간의 편견이다. 숲은 모든 노동에 공평하게 보상한다. 100의 노동에 대해서는 100의 노동 성과로 값을 지불하고, 50의 노동에 대해서는 50의 노동 성과로 값을 치른다. 숲은 사기를 치거나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다. 자연계가 냉혹해 보이는 까닭은 룰을 엄격하게 지키기 때문이다. 시장을 농단하면 가차없는 처벌을 받는다.

자연계에는 ‘상속’이란 것이 없다. 민들레는 바람에 실려 멀리 날아간 풀씨에게 물과 거름을 물려주지 않는다. 부모에게 도토리를 물려받는 다람쥐도 없고, 몇 대에 걸친 조상에게서 숲의 과실을 독차지할 권리를 이어받은 원숭이도 없다. 숲에서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언제나 같은 조건에서 출발한다. 누구도 “네 아버지가 누구니?”라고 묻지 않는다.

숲은 완전경쟁시장이고, 지속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간이 만든 시장경제보다 효율적이다. 적어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다.

숲에서는 누구도 돈놀이를 하지 않는다. 10의 노동을 투입해서 10의 노동 성과를 얻는 것은 숲의 구성원 모두가 합의한 기본법이다.

4월이 되면 가느다란 생강나무 가지마다 앙증맞은 노란 꽃잎이 뾰족뾰족 돋는다. 밭두둑에는 꽃다지가 상긋상긋 피어나고, 산기슭의 진달래는 화사한 꽃 우산을 펼쳐 든다. 북풍한설이 몰아칠 적에는 언제 봄이 오랴 싶지만, 봄비가 한 번 밟고 간 들녘에는 뭇 생명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며 깨어난다.

숲을 보면 안다. 일한 만큼, 생산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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