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으로 재활하고 심폐기능 향상·근육발달에도 도움
과천 등 3곳서 전용수영장 운영…제주는 해안가서 훈련
수영훈련과 경주성적 상관관계는 확실하게 입증 안돼

지난 3월 과천경마공원에 있는 수영장이 문을 열었다. "여름도 아닌 아직도 쌀쌀한 초봄에 웬 수영장?"이라고 의아해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영장은 사람이 아니라 말을 위한 것이다.
겨우내 휴장에 들어갔던 말 수영장이 봄을 맞아 개장한 것이다. 수영장으로 들어선 말들은 거친 숨을 내쉬며 줄줄이 수면을 가르며 나름대로(?)의 수영실력을 보여줬다.
산업화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 수영하는 모습은 영화나 TV 등 영상이 아닌 현실에서 직접 목격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이가 있는 시골 어르신들도 말이 수영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만큼 평소 말을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릴 적부터 말과 함께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말이 수영하는 모습은 그리 낮설지가 않다.
말은 등이 가려우면 땅바닥에 누워 큰 덩치를 좌우로 움직이며 해결한다. 덩치가 있는 대부분의 포유류들이 하는 목욕법과 비슷하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몸을 흔들어 붙어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근처에 물이 있으면 물 속으로 들어가서 헹구고 나온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목욕이자 샤워이다.
그런데 최근 알게 된 사실은 경주마들을 위한 전용 수영장이 있다는 것. 한국마사회(회장 김낙순)에 따르면 경주마 전용 수영장은 국내에 3곳(과천경마장 2곳, 부산경마장 1곳)이 운영되고 있다.
알고보면 말 수영은 오랜 역사를 지닌 말 훈련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경마를 시행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전용 수영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고대 로마시대 군마(軍馬)는 수영훈련으로 지구력 길러
평균 체중 500kg에서 많게는 1t(톤)에 달하는 말은 태생적으로 수영을 한다. 야생에서는 생존을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겠지만 사람에게 길들어진 말은 고대 때부터 훈련을 위해 수영을 해왔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은 물론 로마시대, 아메리카인디어들도 전쟁을 대비해 말들에게 수영 훈련을 시켰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말의 지구력 향상을 꾀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말 수영은 현대에 와서 경주마 훈련에도 적용됐고, 193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해안수영을 실시한 경주마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후 많은 국가에서 말 전용 수영장을 도입해 경주마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도 1986년 첫 말 수영장을 개장했고, 지금은 3곳으로 늘었다. 제주도는 전용 수영장이 없지만 섬이라는 지역적 특징을 활용해 해안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된다.
◇수영의 최대 효과는 재활…심폐능력·근육발달 효과도
훈련이 한창인 말 수영장은 거친 숨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경주마들의 흉곽이 수압에 의해 압박돼 평소보다 더 강하게 호흡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경주능력과 직접 연관된 심폐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평소 사용하지 않던 주변 근육을 발달시킴으로서 육상에서 활동할 때 지구력 향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말 수영의 가장 큰 목적은 재활이다. 관절염이나 인대부상 등 경주 중 충격으로 발생하는 운동기질환으로 인해 정상적인 훈련이 부담스러운 말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충격의 부담이 적은 수영을 통해 환부 주변조직을 강화하고 유연성을 향상시키며 냉찜질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재활효과를 통해 부상마의 컨디션 조절을 하고 경주에 조기 복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인간과 거의 유사하다.
게다가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미성숙 말의 경우 발육을 촉진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반대로 체중관리가 중요한 경주마는 비만예방을 위해 수영을 시키기도 한다. 특히, 해안에서의 수영은 바닷물 삼투압으로 찜질효과가 더 크고 피부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말 수영의 단계는 적응운동, 유산소운동, 무산소운동 순으로 진행된다. 처음 수영을 접하는 말의 경우 적응을 위해 1분 정도만 수영을 실시한다. 물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점차 시간을 늘려 느린 속도로 20분까지 확대한다. 유산소 운동의 경우 약 400m의 거리를 6∼7분 가량 사람의 보통걸음 속도로 진행한다. 가장 많은 체력을 요하는 무산소운동의 경우 200m를 빠른걸음 속도로로 3~4분 진행하는데, 이때 경주마는 지상에서 전력질주 하는 것과 비슷한 훈련강도를 느끼게 된다.
이처럼 말 수영은 운동기 질환에 대한 걱정 없이 경주로에서와 유사한 훈련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간의 건강에 수영이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 처럼 말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수영훈련한 경주마들이 성적도 좋을까?
과천경마공원 경주마 중 가장 뛰어난 그룹인 1등급 경주마 87마리 중 약 절반이 수영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수영훈련 여부는 경주성적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영을 하지 않은 경주마의 승률이 일부 높기도 하다.
하지만 이 중 7세 이상의 고령 경주마인 경우 수영훈련을 거친 말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3~4% 높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수영훈련이 관절과 인대의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에 경주마의 컨디션 조절은 물론 선수로서의 수명까지 늘릴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2019년 두바이 월드컵 결승에 출전했던 돌콩(이태인 마주, 배대선 조교사)을 비롯해 뉴시타델(이성재 마주, 배휴준 조교사), 상감마마(이관형 마주, 박병일 조교사)등 간판스타 경주마들도 부상 방지와 심폐기능 강화를 위해 수영훈련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또 2018 브리더스컵 우승마인 부산경남 경마장의 킹삭스(김창식 마주, 김영관 조교사)는 다리부상으로 인한 오랜 공백을 딛고 1년 4개월만에 경주로로 복귀를 앞둔 상황에서 현재 수영훈련에 집중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한다.
◇수영훈련도 경주마 특성에 맞춰 시행여부 결정해야
서울 경마공원에서 수영훈련으로 손꼽히는 유명한 마방이 있다. 통산 전적 759승에 빛나는 베테랑 김대근 조교사의 마방이다. 김 조교사가 관리하는 대부분의 경주마들은 매주 지상훈련과 수영훈련을 병행한다.
김 조교사는 "경주마들의 수영 미시행기간과 시행기간의 주행컨디션을 비교해보면 세밀한 부분에서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며 "운동기질환이 없더라도 수영을 통해 전력질주에 버금가는 심폐기능 강화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적극 시행한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어린말은 수영으로 인한 체력소모가 심해 수영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어 주의해서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조교사 통산전적 승률3위 성적을 기록 중인 송문길 조교사는 수영보다는 지상훈련에 집중하는 전략을 통해 높은 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송 조교사는 "수영에 익숙한 말들에게는 확실히 수영은 효과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겁을 먹고 발버둥치거나 당황하다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봤다"며 "이럴 경우는 수영훈련 보다는 워킹머신이나 끌기운동, 외승훈련 등 말의 특성에 맞는 훈련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의 성향에 따른 맞춤 트레이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주마의 건강을 관리하는 한국마사회 진료담당 장기영 수의사는 "말 수영 훈련은 말의 관절에 부하를 주지 않고 심폐 기능을 향상 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요통이나 급성 관절 질환, 심장 질환 등을 악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수영 훈련 전 주의가 필요하다"며 "지면을 박차고 달려야 하는 경주마의 근력 향상을 위해서는 지면훈련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수영은 보조적 훈련수단으로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주마들의 훈련이나 진료사항은 물론, 수영 훈련 내역도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정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