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시장에 긍정적 시그널" VS "정부의 '생색내기'"

한국은행이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금융권에 10조원대의 자금을 수혈해 주기로 했다. 이른바 '금융권특별대출제도'다. 대상도 은행뿐만 아닌 증권사와 보험사까지 모두 포함해 사상 최초로 금융회사에 직접 대출 해준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한은의 결정을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일부에서는 크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은이 의결한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에 대해 업계에서는 반응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이를 환영하고 있는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의구심 든다'는 반응도 나타나고 있다.

◆ 한은 "금융권 대출로 유동성 경색 완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6일 오후 임시회의를 열고 금융권 대출제도를 의결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 등으로 일반기업, 은행 및 비은행 금융기관의 자금조달이 크게 어려워질 가능성에 대비한 안전장치(safety net)라고 이 제도의 배경을 설명했다.

한은은 은행과 비은행금융기관인 증권사 및 보험사에 일반기업이 발행한 우량 회사채(신용등급 'AA-' 이상)를 담보로 최장 6개월 이내로 대출해 준다. 은행은 한국은행법 제64조에 근거해, 증권사 등 비은행금융기관은 제80조에 근거해 대출을 내준다.

특히 이 제도에서 보험사는 한은과 당좌거래 약정을 체결해야 하고 동시에 자기자본이 3조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 사실상 이 제도가 증권회사를 위한 제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내달 4일을 시작으로 3개월간 한시적으로 10조원 한도 내에서 대출제도를 운영하지만 금융시장 상황과 한도소진 상황 등에 따라 연장과 증액 여부가 추후 결정된다.

금리는 통안증권 182일물 금리에 0.85%포인트를 가산해 결정된다. 지난 14일 기준 1.54% 수준이다.

한은은 "이번 조치는 민간기업 발행 회사채를 담보로 증권사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자금수요에 따라 일정금리로 즉시 대출해 줌으로써 회사채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금융기관의 자금수급 사정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사실상 이 제도가 증권회사를 타깃으로 운용되지만 통상 증권회사들이 전체 채권 중 'AA-' 이상의 우량 회사채 보유 비중이 크지 않은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 한은의 긴급 조치...배경은?

금융권 등에 따르면 앞서 지난달 20일 금융위원회는 삼성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6개 증권사와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기업어음(CP) 등 단기 채권이 시장에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 상황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뤄졌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급락하면서 최근 지수형 주가연계증권(ELS)의 헤지 목적 선물에 대한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마진콜 규모는 3조원 정도로 추산됐다.

국내 주요증권사들은 급히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으로 유동성을 마련, 거액의 추가 증거금을 보충해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매각한 보유 단기채권 등이 단기금융시장에 왜곡을 만들었다.

이에 한은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등으로 일반기업, 은행 및 비은행 금융기관의 자금조달이 크게 어려워질 가능성에 대비, 금융시장의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권 대출을 실시한다는 입장이다.

◆ 한은 대출제도...엇갈리는 업계 반응

금융권에서는 이 제도에 대해 다소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향후 단기자금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쪽이 있는 반면 대출 조건인 '담보 요건'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관련 업계에서는 대체로 이 제도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더 많이 감지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신용경색 우려 커졌는데 이번 한국은행의 조치로 유동성 경색이 일부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이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자금경색 상황을 완화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대출의 담보 요건이 까다롭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이 제도의 취지가 나쁘지 않다"면서 "증권사들이 유동성을 조달하는 다양한 루트가 있어 이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정반대의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 제도가 사실상 정부의 '생색내기'라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무담보 차입을 원하고 있지만 한은이 우량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내주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실질적 유동성 공급에는 큰 효과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비슷한 맥락의 다른 얘기도 나온다. 사실상 자금 조달 경로가 많은 대형 증권사들이 굳이 한은을 찾아가 돈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AA-' 등급 이상의 우량 채권의 보유 비중이 높은 증권사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대형 증권사들은 기관간 환매조건부채권매매(RP) 등 담보 없이도 유동성을 공급 받을 수 있는 여러 루트가 있어 한은에서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중소형 증권사들에게 한은의 특별대출이 자금 경색을 일부 완화하는데 유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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