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 전설의 경주마 'Top 14' 추려 2000m 가상대결
통계 기반의 경마 특성 활용해 1980~2020년 명마 추려내
문학치프 기록 2분04.05초…동반의 강자 2위, 3위는 돌콩

한국마사회가 1990년 이후 전설의 경주마 '톱 14'를 추려 2000m 가상대결을 펼친 결과, 문학치프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한 동반의 강자와 돌콩을 제치고 우승했다. 사진은 2019년 9월 열린 코리아컵 우승 당시 문학치프/제공=한국마사회
한국마사회가 1990년 이후 전설의 경주마 '톱 14'를 추려 2000m 가상대결을 펼친 결과, 문학치프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한 동반의 강자와 돌콩을 제치고 우승했다. 사진은 2019년 9월 열린 코리아컵 우승 당시 문학치프/제공=한국마사회

차범근과 손홍민 선수가 같은 시대에 뛰고 있다면 누가 몸값을 더 받고 사랑을 받았을까. 또 고(故) 최동원 선수가 류현진 선수와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다면 누가 더 좋은 성적을 낼까?

스포츠팬이라면 한 번쯤 가져보는 궁금증이지만 선뜻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시대적 상황이 다르고 스포츠라는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빅데이터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선수 개개인의 특성과 상대 전적 등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한 가상대결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경마 100년사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명마들이 동시에 출전한다면 어떤 말이 우승할까.

주로(走路) 상태와 부담 중량, 기수의 능력 등 모든 조건을 맞추기는 어렵지만 정확한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시행돼온 경마에서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대략적인 예상도 가능하다는게 한국마사회의 설명이다.

그래서 석 달째 경마가 중단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마사회가 역대급 경주마들을 추려 재미 있는 가상대결을 진행해보았다.

우선 마사회는 팬들의 큰 성원을 받았던 'Top 14'  경주마를 가상대결에 소환해 시대순으로 마번을 배정했다.

다만, 경마는 ‘마칠인삼(馬七人三)’이라는 말처럼 기수의 영향도 중요하지만 가상대결에서는 기수 조건을 배제하고 경주로의 구조와 상태 등도 배제했다.

대표적 장거리 경주인 2000m에서 생산국, 성별 등을 망라한 역대 최고의 경주마를 가린다는 전제 하에 각 경주마별로 2000m 우승 또는 준우승 최고기록을 세웠던 당시의 출전조건들을 기준 데이터로 했다(가상대결에 선발된 역대 TOP 14 경주마 기준 데이터와 예상순위 참조).

출전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1990년대에는 우선 유일한 암말로 11연승과 1990~91년 그랑프리 2연패의 기록을 가진 ‘가속도’, 1995년 그랑프리와 29승의 기록을 보유한 ‘대견’, 무려 12세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며 역대 최다승인 43승을 거둔 ‘신세대,’ 그리고 국산마 최초의 그랑프리 우승과 한동안 역대 최다상금을 획득한 ‘새강자’가 눈에 띈다.

2000년대에는 그랑프리 2연패와 현재 국내 2000m 최고기록을 보유한 ‘동반의강자’, 그 아성을 무너뜨렸던 ‘터프윈’, 대통령배 3연패에 빛나는 ‘당대불패’, 국내 최다연승인 17연승의 ‘미스터파크’가 있다.

2010년대 출전마로는 대통령배와 그랑프리를 동시에 거머쥔 ‘경부대로’, 대통령배 4연패와 그랑프리, 두바이 원정에 빛나는 ‘트리플나인’, 최초의 통합 삼관마이자 그랑프리 우승마 ‘파워블레이드’, 부산광역시장배 우승과 국내 최초 두바이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한 ‘돌콩’ 또한 그의 영원한 라이벌 ‘청담도끼’, 2019년 한국경주마 최초의 코리아컵 우승을 비롯, KRA컵 클래식, 그랑프리를 연달아 제패한 ‘문학치프’가 보인다.

역대 명마로 1980년대를 주름 잡은 ‘포경선(뉴질랜드산, 1980년생)’과 ‘차돌(미국산, 1984년생)’을 빼놓을 수 없지만 뚝섬경마장 시절의 경주로 구조 등이 현 서울경마장과는 차이가 있고, 객관적인 데이터도 부족해 배제했다.

가상대결은 경주마의 성별과 마체성숙도 등을 고려해 부담중량을 부여하는 마령중량 방식의 2000m 경주로 <표>의 기준 데이터 자료를 통해 기수, 부담중량, 경주로 상태 등의 조건을 수치로 보정해 최종기록을 산출했다. 마령중량 방식은 세계 최고의 경주인 미국 브리더스컵클래식, 두바이월드컵과 동일한 경주 조건이다.

드디어 출발대 문이 열리고 전설의 'Top 14' 경주마들이 치고 나선다. 출발과 동시 당대불패와 가속도, 미스터파크, 청담도끼가 조금 앞선 가운데, 문학치프와 파워블레이드, 대견, 신세대가 뒤를 따른다.

그 뒤로 새강자와 돌콩, 트리플나인이 중위권에 포진하고, 경부대로와 터프윈, 동반의강자는 후미에서 경주를 시작했다.

2코너를 지나 직진주로에서 동반의강자가 특유의 무빙으로 조금씩 중상위권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당대불패와 미스터파크가 선두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문학치프와 트리플나인이 바짝 뒤쫓는다.

4코너에 가까워질 즈음 가속도와 신세대의 걸음이 무뎌지고 경부대로와 터프윈이 서서히 올라서면서 중위권이 두터워진다. 결승 직선주로에 진입하자 모든 말들이 막판 힘을 내는 가운데 경주 내내 중상위권에서 안정적인 전개를 펼치던 문학치프가 선두로 나선다.

돌콩과 터프윈, 트리플나인이 그 뒤를 바짝 쫓아 보지만 순위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인 상황. 오히려 결승선 200m를 남기고 가속이 붙은 동반의강자가 추월에 나서고, 결국 문학치프와 동반의강자 순서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문학치프의 가상대결 우승기록은 2분04.05초, 2위를 차지한 동반의 강자 기록은 2분05.9초였다. 3위는 돌콩(2분06.1초)이 차지했다.

하지만 문학치프의 실제 2000m 우승기록은 2분05.5초로, 동반의강자(2분04.9초) 보다 조금 늦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활약한 대견이나 신세대 등은 다승 기록에서는 앞서지만, 당시 도입된 외산마의 수준이 다소 낮고 2000m 경주기록이 약 4∼5초 뒤지는 점을 고려할 때 우승권에서는 다소 멀다"고 분석했다.

또 이 관계자는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경주마의 국제경쟁력이 점차 향상된 것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동반의강자와 터프윈은 당시에도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기량을 갖추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상대결의 최종기록은 역대 경주마들의 2000m 우승 최고기록에 기수, 당시 부담중량, 경주로상태 등의 영향을 고려하여 산출한 것이다.

경주는 말들의 당일 컨디션, 경주로 상태, 경주마들의 상대적인 주행습성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므로 만약 실제 경주를 펼치는 상황이 생긴다면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경마팬 개개인 역시 게임을 즐기듯 좋아하는 경주마들을 선정해 이같은 가상대결을 펼쳐볼 수 있을 것이다. 추억의 명마까지 소환한 경주마 TOP 14 가상대결은 장기간 경마 휴장으로 무료한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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