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는 공명정대한 길, 사도는 사사로운 길」
「여당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의회 폭거용 한시적 법안」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키워드는 사도를 위한 퍼펙트 스톰」
「정부・여당과 청와대는 이제라도 사도를 포기해야」
김태현
정도定道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임의로 바꿀 수 없는 바른 길을 말한다. 사도私道란 공명정대함과는 거리가 먼 사사로운 길을 말한다.
어떤 길이 정도이고 어떤 길이 사도인지를 판단하는 잣대는 여럿 있다. 신앙의 테두리를 기본으로 하는 종교의 율법, 전통적인 행동양식에 기초하는 사회적 관습 등이 그런 잣대들이다. 그중 강제력이 큰 잣대는 ‘물(氵)처럼 공평무사하게 조사해 그릇된 자를 제거(去)한다’는 의미를 가진 법(法)이다.
물론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전제된다면 율법도 시대에 따라 재해석될 수 있고, 관습이나 법도 바뀔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키는 것이 정도다. 이 사실을 2,400여 년 전에 알려준 이가 있다. ‘자연’에 머물러 있던 서양철학을 ‘인간’으로 옮겨 놓은 대철학자 소크라테스다.

그런데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놓고도 악법이라며 지키지 않으려는 이들이 2016년 이 땅을 활보하고 있다. 형편에 따라 갖가지 핑계를 들이대며 공명정대를 거부하는 사사로운 길, 곧 사도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은 자신들이 정했던 길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 주장을 국민적 공감대를 조장하는 주요 도구로까지 활용하고 있다. 바로 중점법안에 대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얘기다.
국회선진화법 개정안 발의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권성동 의원은 어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심사기일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여당이 발의해 국회를 통과했던 기존의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할 수 있는 요건으로 천재지변, 전시나 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그리고 교섭단체 대표의 합의 등 세 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발의된 국회법 개정안에는 위 세 가지에 ‘재적의원 과반수가 본회의 부의를 요구하는 경우’가 추가되어 있다. 또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중요 안건에 대한 심사를 15일 이내에 마치지 않을 경우, 다음날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는 것으로 보고, 그때부터 7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여당이 당론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정부・여당은 물론 청와대까지 나서서 밀어붙이고 있는 법안들, 즉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테러방지법 등을 처리할 수 있는 사도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여당의 의원 수는 그 사도를 현실로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안은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 되는 순간, 폐지를 주장하며 아우성칠 게 분명한 법안이다. 다수당에 의한 폭거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를 위한 사술邪術
사술은 요사스러운 술법 또는 술책을 말한다. 정부・여당과 청와대는 왜 사도를 펼치려 하는 것일까? 당연히 위에 언급한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야당이 합의를 해주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야당은 왜 합의를 해주지 않을까? 조금만 살펴봐도 그 이유가 선명히 드러난다.
먼저 기업이 M&A 등 사업 재편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은 이전보다 기업에 더 커진 경제활동의 전권을 부여하는 기업 친화적 법안의 성격이 짙다. 그런 점에서는 노동개혁 법안도 대동소이하다.
두 번째, 교육과 의료 등 이전에는 공공서비스였던 부문들을 서비스산업으로 분류하는 서비스산업발전법은 공공 부문을 민영화 하는 법안으로, 재벌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매우 높다.
세 번째, 국정원이 의심하기만 하면 영장도 별무소용인 테러방지법은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법안이라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시위에 참여하는 자국 국민들을 테러단체 IS에 비유하는 정부가 아니던가.

위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현실적으로 여야, 즉 국회가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야당이 매우 강경한 어조로 반대하고 있다. 이것이 정부・여당 및 청와대가 사술을 부리려는 이유다.
사술 강조에 할애될 대국민 담화
내일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다섯 번째 대국민 담화에 나선다. 이번 담화에서는 크게 네 가지가 거론될 것이며, 담화의 키워드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급작스럽게 현안으로 부상한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독자적 제재로 나누어 다루어질 것이다. 다음으로는 당사자들과 국민들을 철저히 배제한 위안부 합의 문제가, 세 번째로는 위에 언급한 법안들을 하루빨리 통과시키라는 압박이 언급될 것이다.
특히, 법안들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국회의장까지 직권상정 불가를 거듭 천명하고 있는 마당이다 보니, 이 문제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
정도를 지키려는 국회의장의 입장과 집요하게 사도를 밀어붙이려는 대통령의 입장을 각색한 대화로 들어보자.

대통령: 국회가 핵심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입법마비’ 사태를 연출하고 있어요. 국회의장님이 직권상정하기만 하면 간단히 통과될 텐데, 왜 안 하시는 거죠?
국회의장: 현행 국회법으로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도 권한도 없습니다.
대통령: 왜 없어요? 천재지변, 전시나 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 여야가 합의한 경우에는 직권상정을 할 수 있잖아요.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이나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 및 증시 폭락 등으로 침체된 국내 경제, 불안한 중동 정세 같은 걸 보더라도 전시나 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잖아요!
국회의장: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세요. 그게 무슨 전시나 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사탭니까? 제 상식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 무슨 소리예요!? 지금은 총체적인 위기, 그러니까 ‘퍼펙트 스톰’이 불어 닥친 상황이란 말이에요!
국회의장: 법을 수호해야 할 입법부 수장에게 사도로 가라니요? 입법부를 행정부 수장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주는 통법부通法府로 만들 작정이시오? 그게 지금 대통령이 하실 말씀이오!? 난 그럴 수 없소이다!
정도를 향한 집중포화
정의화 국회의장에 따르면, 대통령이 직접 직권상정을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는 물론이고, 친 정부 성향의 언론들과 관변단체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들고일어나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회의장을 향한 그들의 집중포화는 상상 이상으로 강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중 언론의 정도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는 평을 듣는 일간지 중 11일자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하나를 살펴보자.
정의화 국회의장의 답변을 굳이 여기에 옮겨 적을 필요도 없다. 인터뷰에 나선 기자의 질문 중 일부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국회의장이 얼마나 편향된 압박에 고통 받고 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질문: 대통령의 미움을 받는 게 피부로 느껴집니까?
질문: 요즘 스트레스는 받고 있지요?
질문: (법으로 직권상정을 할 수가 없는데, 청와대에서 해달라고 하니까) 그게 대통령의 뜻 아니겠습니까?
질문: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쟁점 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여전합니까?
질문: 북한 수소폭탄 실험과 경제 침체 위기를 맞고 있으니 ‘국가비상사태’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질문: 의장께서는 “직권상정을 하게 되면 국회가 통법부로 바뀐다”는 말씀도 했지요? ... 이보다는 경제를 살릴 법안을 국회에서 깔아뭉개고 있다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요?
질문: 쟁점 법안은 대부분 2년 전에 제출됐습니다. 직권상정에 몰리기 전까지 시간이 많았지 않습니까?
질문: 결국 국회에서 해결해줘야 하는 것이지요. 의장께서는 그 법안들이 시급하지 않다고 봅니까?
질문: 국회에서 번번이 발목이 잡히는 대통령 입장도 생각해봤습니까?
질문: 국회의장실로 항의나 비난전화가 빗발치지 않습니까?
질문: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평가를 받았지요?
독자 제위께서는 어떻게 읽으셨는지? 비록 명목상이나마 입법부 수장은 사법부 수장, 행정부 수장과 대등한 반열이다. 기자가 던진 위 질문들은 과연 공정했으며, 언론의 정도를 지켰다고 보는가?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강압적인 질문들을 행정부 수장, 즉 대통령의 면전에서도 똑같이 퍼부을 수 있는가?
사도의 세상에서 살 수는 없어
정도는 물처럼 공평무사하게 조사해 그릇된 자를 제거한다. 그러나 사도는 공평무사가 사라진 자리에서 싹을 틔우고, 그릇된 자에게 사사로운 힘을 실어주며, 올바른 자를 제거하도록 만든다.
정도에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의 적합성은 우격다짐이나 사리사욕에 있지 않다. 오직 국민적 공감대만이 정도에 손을 댈 자격이 있으며, 그 국민적 공감대란, 지금처럼 직접민주제 요소가 거의 없는 대의민주제에서는 여야 합의뿐이다.
국회선진화법이 무엇인가? 머릿수 지상주의를 없애고 여야가 합의하자고, 그러자고 만들어놓은 것 아니던가. 그리고 여당이 황우여 전 교육부총리를 전면에 내세워 그 법을 강압으로 통과시킬 때, “이 법안은 국회를 식물국회로 전락시킬 법안이다”라며 온몸으로 저항했던 이가 누구였던가? 바로 정의화 현 국회의장 아니었던가 말이다!

정도는 공명정대하고 공평무사하다. 국회의장 직권상정 문제에 관한 한, 공명정대의 가치를 잃어버린 정부・여당과 청와대는 이제라도 대내외 정세나 돌발적인 정세를 사도에 끌어들이려 하지 말 일이다. 공평무사를 잃어버린 언론 역시 사도를 위한 사술의 달콤한 유혹을 끊어낼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 무관심과 혐오와 생업을 핑계로 정치로부터 멀어져 있었던 국민들 또한 사도가 정도를 겁박하는 현실을 만들어낸 주체임을 자각하고, 반성의 각오로 정치에 큰 관심을 보낼 일이다. 어떤 생업도 정치와 떨어져 있지 않으며, 사도와 기회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우리도, 우리네 아이들도 살아갈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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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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