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행사장 참석 후 사고 현장 외면 '빈축'
#. 2014년 4월 예천양수발전소. 지하 변압기실에 일하던 작업자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직원이 변압기 스위치를 켜는 순간 폭발음이 터졌다. 변압기 퓨즈용량을 맞추는 교체작업 중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폭발로 밀폐된 공간의 변압기실 철제문 3개가 떨어져 나가고 터널현장 내부는 전기가 차단되면서 연기로 가득찼다. 그나마 작업자들이 긴급 대피하면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0년 6월 9일. 예천양수발전소는 또 다시 가동이 중단됐다. 발전기와 각종 설비장치가 있는 지하층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누수로 물이 유입되면서 침수가 된 것이다. 발전소 측은 현재 동력을 모두 차단하고 사태수습에 나서고 있다. 예천양수발전소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해보면 누수 발생을 처음 발견한 시간은 9일 오전 2시경. 그리고 약 4시간이 지나서야 한수원 본사로 사고사실이 보고됐다.
#. 사고 발생 58시간 후인 11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경기도 춘천의 한 발전용 댐. 이 곳에서는 최문순 강원도지사, 엄명삼 춘천부시장 그리고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다. 한수원 춘천 한강수력본부에서 열린 통합 물 관리 실현을 위한 ‘한강수계 발전용 댐 다목적 활용 선포식’ 현장이었다. 정재훈 사장은 "한강수계 발전용 댐의 다목적 활용을 선포하고, 물 관리 기관으로서의 적극적 역할 수행에 대한 의지를 다진다"며 "한수원은 이제 국가 수자원 관리의 중요한 일원이 됨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예천양수발전소 누수 사고 원인 파악과 수습을 위해 밤낮으로 진땀을 흘리고 있는 직원들과 달리, 정재훈 사장의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했다.
현장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재훈 사장은 누수 사고 발생 사흘째인 11일 아침까지도 사고 현장을 찾지 않았다. 물론, 한수원 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워낙 많고, 또 오래 전부터 예정돼 있던 행사들이 많아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안전사고와 이에 따른 수습과 대책 마련 등은 그 어느 것보다 최우선 순위의 일이 되고 있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질병본부장도 사고가 발생하면 민방위복으로 갈아입고 사태수습에 나서는 모습을 우리는 숱하게 보고 있다.
하지만 예천양수발전소에서는 최고경영자(CEO) 정 사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인명피해가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방송사 카메라가 오지 않아서였을까. 사고를 보고 받고도 만 사흘이 지나도록 현장을 찾지 않은 정 사장의 행보에 고개가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9일과 10일 이틀동안 정 사장의 일정 중에 눈에 띄는 아주 중요한 행사는 보이지 않는다.
11일 한강수계 발전용 댐 다목적 활용 선포식이 열렸던 장소는 춘천이다. 그리고 예천양수발전소는 한수원 본사가 있는 경주와 춘천에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만약 경주 본사에서 춘천 행사장을 자동차로 오고갔다면, 사고 현장을 두 번이나 지나친 셈이 된다.
이 정도면 '안전 불감증'을 넘어 '지도력' 문제까지 거론될 수 있는 사안이다. 한수원에는 1만2000명에 이르는 임직원이 낮과 밤으로 국민과 산업의 빛을 밝히고 기계를 돌아가게 한다. 이들은 누굴 믿고 일을 할 것인가. 현장 지휘나 격려도 없이 사고 발전소를 스쳐간 정 사장.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 핵심인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집행 수장이 맞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