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에서 독재 대통령에게 ‘국부’ 칭호 자체가 터무니없는 발상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 등과 함께 14일 4.19 민주묘지를 참배한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라고 평가했다.

이는 그의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 마치 강도에게 살해당한 이의 초상집에 와서 강도가 잘했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반인륜적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승만 전 대통령이 과연 국부로 칭송받아야 할 인물인가. 그는 종신집권의 야욕에 눈이 멀어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을 도모하고 3.15부정선거를 감행하다 4·19 혁명으로 하야했다.

그런데도 한 위원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 때 뿌려진 (자유민주주의의) 씨앗이 성장해서 4·19학생혁명으로 터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말은 궤변이다. 일본이 강제수탈해가면서 경제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결국 이완용 덕에 조국이 근대화된 것이며, 히틀러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평화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평화와 인권의 사도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승만은 1948년 대통령이 되자마자 친일세력을 기용, 김구 등 독립운동에 헌신한 많은 이들을 정적이라는 이유로 공산주이자로 몰아 제거케 했다. 7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친일의 후예들이 이 땅에 주류세력으로 활개치게 만든 주범인 것이다.

또한 이승만 정부는 보도연맹의 이름으로 무수한 민간인들이 학살했다. 양민들을 공비로 몰아 처형하여 유족들의 한이 오늘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뉴라이트’ 등 그를 국부라고 부르는 세력의 주장은 그가 나라를 건국하고, 6·25 때는 자유 대한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그럼 6·25 때 그의 행적을 살펴본다.

북한의 6·25 기습남침에 국군통수권자로서 이승만 대통령은 입으로만 ‘북진통일’을 외치고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로 호언장담하며 국민에겐 안심하라고 방송하면서 막상 자신은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몰래 도주했다.

대통령이 사실상 유고된 가운데 전쟁지휘체계는 붕괴되었고, 국민의 목숨은 각자도생에 맡겨졌다. 질서있는 퇴각의 노력은 아예 없었다. 적 치하에 신음했던 서울시민들은 9·28 수복 후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대했건만, 돌아온 건 가혹한 부역자 처벌이었다.

1952년, 이승만은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헌병과 깡패들을 동원하여 의원들을 겁박하여 소위 발췌개헌을 단행했다. 전선에서 국군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동안, 후방에서 이승만은 자신의 집권 연장을 위해 헌법파괴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의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예측도, 대응도, 주도적 해결도 못한 채, 오직 정권 연장에만 유능했던 인물에게 국부란 호칭은 당치 않다.

그는 이순신처럼 나라를 지켜낸 인물이 아니라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것도 모자라 나중에 나라를 지키려고 애쓴 이들을 숙청한 선조처럼 파렴치한 행위를 한 인물이다.

이승만을 ‘한국의 조지 워싱턴’으로 일컫는 사람들도 있다.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웠고 이겼으면서, 종신 대통령의 유혹을 뿌리치고 민주주의의 모델을 만들어냈다. 전쟁과 정치 모두에서 이승만과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둘의 공통점은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뿐이다.

사실 오늘날 ‘국부’란 말 자체가 낡아빠진 개념이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에서 한명의 독재 대통령에게 국부 칭호를 헌정하겠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아무리 당 세력 확장이 급박하기로 이승만을 국부라고 칭하고 박정희를 찬양하는 것이라면 그 당은 결코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이 아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생각하는 이들, 특히 새정치를 하겠다고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국민의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깊게 새겨들었으면 한다.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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