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의 주인공들은 1971년생들이다. 쌍문동 5인방은 1988년 쌍문고 2학년으로 올해 만 45세가 됐다. 이들이 태어난 해에는 약 102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 아직까지는 신기록으로 남아 있다.
덕선, 정환, 선우, 택, 동룡 등 5인방이 정상적으로 대학에 입학했다면 이른바 90학번이 된다. 90년대 학번은 정치적인 문제를 대하는데 있어서 386세대라고 불리는 80년대 학번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나이가 겨우 5~10세밖에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군사독재정권 타도를 목표로 대학시절을 보낸 선배들과 그 의식부터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응팔>에 비친 1971년생들은 자유분방하고 탈 이념적이며 대중문화에 대한 동경도 거침없이 뱉어낸다. 이들은 당연히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얽매여 있기를 무척 싫어한다. 최근 1970년 이후 태어난 청년들이 여야 정당에 새로 가입하지 않는 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70년대 산업화와 1980년대 3저 호황의 풍요로움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1990년 9.2%, 1991년 9.4%, 한국경제는 여전히 고속성장을 구가했다. 이들이 대학 캠퍼스를 누빈 1990년대 초반에는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사회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자유화, 개방화의 흐름을 탔다. 이들은 ‘워크맨’과 ‘삐삐’를 처음으로 구매한 신세대였고, 세계화의 물결에 발맞춰 해외 배낭여행을 떠난 ×세대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에 진출한 386세대는 웬만한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종합상사나 요즘 인기를 구가하는 민간은행, 그리고 증권회사를 골라서 취직했다. 부동산과 증시 활황의 혜택까지 더해져 상당수는 중산층으로 올라서게 됐다.
그러나 이들보다 불과 5년 남짓 늦게 사회에 진출한 1971년생들의 삶은 달랐다. 군대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인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한창 돈을 모아 집부터 마련해야 할 때인 2000~2006년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아파트값 폭등하자 당시 많은 30대들이 내 집 마련을 포기해야 했다. 2008년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이후 이어진 부동산시장 침체는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이들에게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거실태조사에 의하면, 2012년을 기준으로 1971년생들이 속한 2차 베이비부머세대(1968년~1974년생)의 자가주택 거주비율은 약 41%로 전체 평균보다 13%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세대는 전체 유권자의 약 14.6%를 점유하는 무려 605만명에 달한다.
그런데 호방한 대학생활과 달리 어려운 사회생활을 거듭해온 이들 ×세대의 정치성향은 어떨까? 리서치&리서치가 지난해 5월 15~16일 사이 실시한 전화면접 여론조사(전국 성인남녀 1000명, 유무선RDD,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에 의하면, 1971년생이 속한 90년대 학번(만 40~44세)의 대통령 긍정평가 지지율은 30.2%였다. 이에 반면에 80년대 학번(만 45~49세)의 대통령 긍정평가 지지율은 43.3%로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부정 평가의 경우, 90년대 학번은 무려 3분의 2가 넘는 66.9%였지만 80년대 학번은 긍정 평가와 엇비슷한 48.7%였다. 상대적으로 궁핍하게 살았던 90년대 학번이 보다 더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보인 것이다.
또 다른 데이터도 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세대별 여야 후보의 득표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이념에 따른 후보(정당) 선택이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18대 대선 당시 방송3사의 출구조사(이하 같음)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바에 의하면, 1971년생이 속한 만 40~45세 구간의 득표율은 문재인 후보 66.6% 대 박근혜 후보 33.4%로 더블스코어였다. 10년 전에도 이들 세대는 노무현 후보 61.3% 대 이회창 후보 31.7%(KBS 출구조사, 이하 같음)를 지지해 유사한 정치성향을 보였다.
그렇지만 386세대인 40대 후반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56.9%) 대 이회창 후보(37.4%)를 무려 19.5% 차이로 앞서며 지지했으나,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를 각각 45.9% 및 54.1%로 지지해 10년 만에 역전돼버렸다.
역시 386세대가 포함된 50대 초반도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은 각각 48.9%와 46.5%로 노무현 후보가 다소 앞섰다. 그러나 이들 또한 2012년에서는 문재인 후보(45.8%)보다 박근혜 후보(54.2%)를 더 많이 지지했다.
한편 30대 후반은 문재인 후보 65.5% 대 박근혜 후보 34.5%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니 만 40대 초반을 포함하여 하나의 세대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8대 대선 당시 세대별 투표 성향은 40대, 50대가 아니라 1960년대 출생(80년대 학번)과 1970년대 출생(90년대 학번)으로 구분이 된다. 즉,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은 하나의 세대로 나타났고, 30대 후반과 40대 초반 역시 같은 투표 성향을 보이며 이 두 학번은 확연하게 갈렸음이 확인되었다.
진보 성향이었던 386세대(80년대 학번)가 10년 사이 40대 후반이 되면서 오히려 여당 지지로 돌아선 것이다. 그 이유는 사오정(45세 정년)으로 요약되는 실업과 빈곤, 그리고 전무하다시피한 사회안전망 때문이다.
복지부가 발표한 2015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1.3세이다. 그런데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09년 엠브레인과 공동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예상 정년은 전년 대비 4.5세 줄어든 겨우 44세이다. 40대 중반이면 여전히 자녀 교육비와 주택 대출금 상환문제 등으로 한창 일을 해야 하는데, 이들 세대를 일자리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퇴희망나이는 평균 72세인데 반하여 근무했던 직장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은 놀랍게도 49세였다. <인쿠르트>의 조사는 부풀려진 게 아니었다.
40~50대의 약 20%는 은퇴 후 첫 일자리를 임시일용직으로 얻었다. 퇴직 후에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사전에 재취업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취업이 어려운 경우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창업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놀랍게도 2015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4년 창업자 112만 6천명 중 40대가 32%로 가장 많았고 30대(25.3%)와 50대(24.2%)가 뒤를 이었다.
통계청이 지난 1월 4일 발표한 ‘전국 사업체 조사’ 자료를 보면, 2014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영업 중인 치킨집은 3만 1529곳이며, 이 가운데 44.2%의 대표자가 40대이다. 50대는 27.2%, 30대는 17.6%가 그 다음 순서다. 단절된 경력, 게다가 별다른 전문기술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가장 손쉽게 뛰어들 수 있는 창업이 치킨집이다. 우리나라 치킨집 숫자는 프랜차이즈의 대명사 맥도날드 전 세계 매장 수보다도 많은 수치이다. 그래도 5년 생존율은 17.7%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이들 40대가 충분한 준비 없이 은퇴 후 대출을 얻어 창업에 나서고 있지만 준비 없는 창업으로 파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창업 실패는 부채문제로 이어져 중산층이 대거 저소득층으로 내몰릴 우려를 낳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자영업자의 가구당 평균 부채는 2015년 3월 현재 9392만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 6181만원보다 3천만원 남짓 더 많다. 빚을 내어 창업에 나섰으나, 3년을 채 버티지 못한 채 빚더미에 올라앉고 있다. 치킨집의 3년 생존율은 겨우 28.5%이다.
통계청 주민등록인구현황을 분석해보면, 2012년 40%에 불과했던 5060세대(60대 이상 포함)의 전체 유권자 구성비는 2016년 43.5%로 증가한다. 이와 반면 2030세대(19세 포함)는 38.2%에서 36.2%로, 40대는 21.8%에서 20.3%로 각각 낮아진다. 이와 반면에 50대는 21.8%로 늘어나 전통적인 캐스팅보트인 40대의 중요성이 떨어졌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40대도 다시 5세 구간으로 나누어 보면 40대 후반은 50대 초반과 유사한 정치성향이어서 실제 캐스팅보트는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10월 16∼20일 문화일보(엠브레인 실시) 창간 24주년 ‘40·50·60 세대별 정치의식’ 여론조사 결과, 40대 전반(40~44세)과 후반(45~49세)은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성장 대 분배’에 대한 응답은 40대의 경우 전반 ‘37.5% 대 59.5%’, 후반 ‘39.1% 대 57.6%’ 등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40대 전반은 새누리당 19.3%, 새정치연합 19.2%, 정의당 7.9%로 야당 지지자가 더 많은 반면, 40대 후반은 새누리당 28.2%, 새정치연합 15.6%, 정의당 6.4%로 역전됐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에서도 40대 전반은 긍정 32.7%, 부정 61.1%로 부정평가가 월등히 많았으나, 40대 후반은 긍정 42.3%, 부정 51.2%로 차이가 현저히 줄었다. 이 문화일보 조사는 40대 후반이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정치적인 인식 등에서 보수화가 먼저 나타난다.
또 다른 데이터도 있다. KBS(리서치&리서치 실시)가 국정교과서 정국 한복판인 2015년 8월 10~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0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물어본 결과(중복 응답), ‘물가 상승 억제’가 39.9%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는 ‘재취업 기회 확대’(34.3%)였다. 이밖에도 노후연금 지원 확대, 노후 건강 지원 확대, 자영업자 보호 대책 마련, 주거 불안 해소,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 등이 뒤를 이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교과서 문제에 대한 요구는 없었다. 386세대인 이들은 낮에는 짱돌을 던지고 밤에는 막걸리를 마시며 토론하는 대학생활에 익숙해 1987년 직선제 개헌의 중추 세력이었다. 이어진 민주화시대에 자연스럽게 1997년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었고, 2002년에는 노풍(盧風) 발화의 중요한 동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이 50대 초반이 되면서 오히려 정치적 무관심층으로 돌아선 것이다. 베이비붐세대는 바로 ×세대의 바로 선배들이다.
한국갤럽의 데일리 오피니언리포트를 보면 2015년 10월 셋째 주 여론조사에는 흥미로운 데이터가 발견된다. ‘노후생계유지에 대한 불안정도’ 조사에서 ‘불안하다’는 응답이 40대가 가장 높은 70%였다. 50대(56%)와 60대 이상(45%)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난 것이다. ‘나의 노후 생계를 주로 돌봐야 할 주체’에 대한 조사에서도 ‘정부와 사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비율이 40대는 26%로 50대(21%)와 60대 이상(15%)보다 높았다.
×세대는 고달프다. 정치·문화적으로는 자유분방하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지 않다. 1971년생 돼지띠들은 곧 다가올 실업의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다소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청년기부터 취업 걱정, 내 집 마련의 어려움, 자녀 사교육비, 주택대출금 문제 등으로 지금껏 어렵게 버텨왔다. 사실상 50세 미만으로 단축된 정년 탓에 일찍부터 재취업이나 창업 준비에 나서야 한다. 이들을 어루만져주는 정당이야말로 ×세대의 마음을 잡을 자격이 있다.
호방한 ×세대에게는 이념보다는 실리를 내세워야 승산이 있다. 지난 10년 사이 야당이 전국단위 선거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2010년 지방선거의 주된 이슈 중 하나는 ‘무상급식’이었다. 그 계기를 만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은 활활 타올랐지만, 2013년 국정원 부정선거 촛불은 왜 타오르지 않았을까? 국정원 부정선거는 민주주의를 유린했지만 광우병처럼 자신의 생활 속으로 직접 다가오지 않았다. 2015년 성완종 리스트 공개는 여권의 부패한 정치스캔들이었지만 그것을 공격하는 것만으로 유권자는 분노하지 않았다.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전패한 이유이다.
120석을 가진 제1야당이 정권심판론만 반복해서 외친다면 패배는 또 다시 반복될 것이다. 기존 사회안전망 제도에 대한 보완대책을 제시하는 등 생활 진보공약을 구체적으로 선보여야 한다. 서울시장을 포함한 무려 9석의 시도지사를 보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정부 비판에 머무는 단순한 견제야당이 아니라 집행능력까지 갖춘 대안야당이다. 직업능력개발법 제2조 규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도 공공직업훈련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이제 곧 일터를 떠나야 할 40대 후반에게 재교육을 시켜야 한다면 바로 이 제1야당도 그 한 몫을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덕선, 정환, 선우, 택, 동룡 등 쌍문동 돼지띠 5인방들이 태어났을 때의 102만명, 이들이 속한 제2베이비부머세대 605만명의 마음을 얻어야 총선에서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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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광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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