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12월 31일, 7살 쌍둥이 아들을 미니밴에 태우고 이동하던 아론 힐과 리네타 힐 부부는 붉은색 신호등을 보고 잠시 멈춰 섰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던 순간 엄청난 충격이 차량을 덮쳤다. 쌍둥이 아이 중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나머지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얼마 버티지 못했다.
사고 후 1년여의 세월이 지나고 정신을 차린 힐 부부는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참혹한 사고를 낸 사람은 2008년형 옵티마(국내명 로체)를 운전하던 83세 운전자 메리 진 파크였다. 파크도 사고 당시 목숨을 잃었다. 사고 당시 차량에 기록된 최고 시속은 90마일(약 145㎞). 급발진 사고로 보였다.
사고 원인이 차량 결함에 있는 것으로 판단한 힐 부부는 2017년 차량 제조사인 기아와 모회사인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총 배상 청구 규모는 피해 보상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합해 9500만달러(약 1145억원)에 달했다.
곧 치열한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힐 부부는 기아 옵티마의 크루즈 컨트롤과 스로틀( 기화기 아랫부분에 설치되는 밸브) 시스템 결함이 차량 오작동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옵티마에 의도치 않은 가속을 막아주는 '스마트 페달(브레이크 오버라이드)' 기능이 없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사고 차량이 사고 발생 8년 전 리콜을 받은 점도 논란이 됐다.
기아는 고령 운전자의 과실 가능성을 제기하며 맞섰다. 운전자인 파크가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가속페달을 잘못 밟아 사고로 이어졌다는 뜻이었다. 지난 2020년 미국 연방법원은 기아의 손을 들어줬다. 사고 원인이 옵티마 차량 결함이라기보다 운전자 과실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힐 부부는 판결을 거부하고 미국 연방 제6 순회법원에 항소했다. 연방법원은 해당 사건을 다시 심리했고, 결국 지난달 25일(현지시각) 힐 부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원고가 사고 차량의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 결함 문제에 대한 충분한 정황 증거를 제시했다는 이유에서다. 기아는 힐 부부와 다시 긴 법정 다툼을 이어가게 됐다.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서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애나 연방법원에서는 싼타페, 스포티지 등 현대차와 기아 48만5000대의 화재 위험 가능성으로 인해 소비자가 집단소송을 제기됐다. 지난 2020년에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 현대차와 기아의 세타2 엔진 결함 문제로 8100만달러(약 97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기도 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유희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