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대 팍팍해진 조달시장…자산가치 붕괴
생존 위해 몸부림 친 한 해…커진 금융 소비자 고통
올 한 해 금융업계는 전년까지 풀린 유동성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역습에 대응하고자 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양산했다. 주식과 가상자산 가치가 폭락하며 고금리를 찾아 머니무브가 활발하게 일어났고 부동산 가격 급락에 따른 혼란도 적지 않았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올 한해 금융권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편집자 주)
▲ 인플레이션 막기 위한 금리인상
코로나19 펜데믹 2년간 쉼없이 증가한 시중 유동성 탓에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미연준을 비롯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인상 경쟁에 돌입한 한 해였다.
지난 11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올해 마지막 금리 결정에서 빅스텝(50bp인상)을 밟으며 기준금리를 3.25%로 끌어올렸지만, 12월 들어 미 연방준비제도가 FOMC 정례회의에서 다시 빅스텝을 결정해 기준금리를 4.25~4.50%로 높여 한미간 기준금리 차이가 상단 기준 1.25%로 벌어지게 됐다.
미 기준금리 4.50%는 지난 2007년 이후 최고치로 이번 빅스텝 결정 전에는 4연속(6월, 7월, 9월, 11월) 자이언트스텝(75bp인상)을 걸어 주요국들의 금리 인상 레이스를 주도했다.
다만 연준위원들이 개인 의견을 표시하는 점도표로 나타난 내년 미 연준의 기준금리는 5.00~5.25% 수준으로 확인돼 향후 1년간 0.75% 추가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 은행 이익 사상 최대…내년 전망도 ‘굿’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들의 수신금리도 따라 오르고 자연스레 여신금리를 결정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상승해 은행들의 이익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3분기까지 주요 4대 금융지주 이자이익이 40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은행업 1,2위를 다투는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이 각각 2조5925억원과 2조5506억원을 기록하는 등 역대 최대 실적을 갱신하고 있다.
내년에도 은행 이익은 견조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신평은 최근 펴낸 내년 은행업 전망 보고서에서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평가하며, 2023년 상반기까지 금리인상 영향에 따른 예대금리차 확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하반기 들어 NIM(순이자마진)이 하락전환할 가능성도 제기했으나 유가증권 가격 상승에 따른 순이익 및 자본비율 증가 효과가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 GDP 대비 가계부채 심각…세계 3위
2023년은 전년까지 급등하는 자산가격 상승에 올라타기 위해 빚을 낸 투자자들의 고통이 급격히 늘어난 해였다. 부동산과 주식, 가상자산 등의 상승 기대감으로 ‘영끌’한 탓에 가계부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의 상반기 기준 가계부채 절대금액은 2245조 원으로 9년 전인 2013년 상반기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이는 GDP대비로는 129.4%를 기록한 스위스, 117.1%를 기록한 호주에 이어 국제결제은행(BIS)이 통계를 내는 43개국 중 3위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대출 비율은 105.6%로, GDP보다 가계부채가 더 큰 나라는 스위스, 호주, 한국, 캐나다 등 4개국에 불과하다. 특히 한국은 올 들어 부동산 가격이 많게는 절반 가까이 떨어지는 지역이 나타나는 등 담보가치 또한 급격히 낮아지고 있어 차주는 물론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의 부실 가능성도 동시에 커지는 상황이다.
▲ 조달시장 경색…레고랜드, 흥국생명 사태
금리가 급격히 오르자 개인 뿐 아니라 기업들의 고통도 커진 한 해였다. 특히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발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번복 해프닝 등이 시장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이벤트였다.
강원도가 지난 9월 28일 도내 테마파크인 레고랜드 기반조성사업을 추진한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보증채무 2050억원에 대한 상환을 미루는 듯한 액션을 취하며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과 채권시장이 경색하는 일이 일어났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중앙정부와의 교감이 부족한 상황에서 GJC의 경영 개선을 위한 기업회생 신청을 발표하며 촉발된 사태다. 자금시장 충격이 커지자 강원도의회는 GJC의 보증 채무를 갚겠다며 추가경정예산 2050억 원을 편성해 12월 9일 예산안을 최종 의결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들어 흥국생명이 통상 매 5년마다 콜옵션 행사로 갚아온 신종자본증권 상환을 벌금을 물어가면서까지 나중에 갚겠다고 선언해 시장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과도한 차환발행 이자를 물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으나 기업의 재정상태에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는 궁금증을 증폭시켜 우량한 금융사마저 힘들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결국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흥국생명은 원래 계획대로 상환에 나서기로 결정했으나 자금 조달 문제가 또 불거졌다. 흥국생명이 소속된 태광그룹의 모기업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유상증자 4000억원에 참여할 계획을 검토했으나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트러스톤자산운용 등이 이에 반대하고 나서자 조달 규모를 2800억원으로 낮추고 태광산업을 제외한 타 계열사 참여로 선회했다.
▲ 가상자산 시장 급락…신뢰 붕괴
꿈을 먹고 자란 가상자산 시장은 거품이 꺼질 때도 가장 빨리 반응했다.
작년 한 때 8000만원 대까지 치솟았던 대장 자산 ‘비트코인’은 올들어 세계 3위권 거래소 FTX 붕괴 사태 당시 1500만원까지 곤두박질하며 시장의 공포를 자아냈다.
한국의 대표 코인으로 손꼽히던 코인 테라USD(UST)·루나 폭락 사태는 가뜩이나 불안한 심리에 부채질을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5월 가상화폐 기업 테라폼랩스의 테라USD와 루나 코인의 가격이 급락해 투자자들이 수십조 원의 손실을 입은 상황에서 다시 복구가 가능하다 큰소리 치던 권도형 대표는 가상자산 중심지 싱가포르에서 도망쳐 최근 세르비아에 근거지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며 공분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행정안전부는 최근 가상자산 과세 인력 증원을 예고해 이른바 ‘코인 과세’가 시작되는거 아니냐는 궁금증을 자아내 투자자들이 동요하고 있다. 그간 증권성이 인정되지 않아 과세를 할 근거가 없었으나, 과세를 위한 입법의 과정을 거쳐 가상자산이 제도권 내로 편입되는 신호가 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면서도 당장 수익에 대해 과세를 하면 투자심리가 냉각될 거라는 우려도 많다.
당초 정부는 올 1월부터 가상자산 양도 및 대여에 따른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보고 수익이 연 250만원을 넘을 경우 소득에 20% 세율 부과를 검토했으나 내년 1월로 시행이 미뤄진 상태였다. 다만 정부는 지난 7월 가상자산 과세 시행을 오는 2025년까지 늦추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테크핀 기업의 퇴조…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몰락
올 초 주요 금융지주 신년사에는 작년 상장을 통해 주가가 욱일승천한 카카오뱅크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특히 하나금융지주 회장 임기 막바지였던 김정태 전 회장이 하나금융을 테크핀 기업에 빗대 ‘덩치만 큰 공룡’으로 비유하며 전열을 가다듬을 것을 경고한 신년사가 널리 회자됐다.
하지만 자산버블의 시대에 승승장구하던 테크핀 기업들의 상승세는 올 한해 빛을 내지 못했다. 작년 하반기 버블의 마지막 시기에 상장한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에 대한 올해 시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는 작년 한때 각각 9만4400원, 24만8500원을 기록했으나 12월 16일 현재 종가 2만6000원과 6만1400원으로 4분의 1토막이 나 외부 투자자는 물론 자사주를 산 임직원들마저 고통에 빠뜨렸다.
특히 상장 직후 고점에서 주식을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겨 CEO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회사는 관련 CEO를 고문으로 위촉해 예우를 하는 등 시장의 성토와는 반대되는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어 카카오톡이라는 국민메신저 운영 그룹의 불통 이미지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의 등장은 기존 금융지주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며 디지털 전환의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11일 금융위가 밝힌 ‘제2기 금융산업 경쟁도평가귀원회 운영 결과 및 향후 계획’에 따르면, 일반 은행의 시장 집중도가 지난 1차평가(2018년 3월) 대비 전반적으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집중도 저하는 특정 은행에 대한 쏠림 현상이 줄어들고 상호 경쟁이 촉진됐다는 의미다.
발표에 따르면 개인 고객과 관련해 가계대출의 집중도 하락이 두드러졌다. 신규 출범한 인터넷은행 3사(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가 기업대출 서비스에 앞서 가계대출에 집중한 영향으로 보인다.
▲ 당국 금융권 인사개입 신경전
올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사 출신의 금감원장이 출현하는 진기록이 나왔다.
검사이자 회계사 출신인 이복현 원장은 경제 위기 속 금융의 역할을 강조하며 업계와 스킨십 행보를 이어갔다. 다만 금융시장에 과도한 개입을 시도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특히 이미 오랜 기간 진통을 겪어 온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 당국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연임을 시도하는 금융지주 회장들과 소송전을 벌이는 등 갈등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내년 3월 임기를 마치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라임펀드와 관련해 중징계를 받아 행정소송 제기 가능성이 대두되는 상황이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도 DLF 손실 사태 관련 중징계 취소소송 2심을 진행 중이다.
3연임이 기대되던 신한금융 조용병 회장은 돌연 연임 고사의 뜻을 비춰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회장 취임을 앞두고 있다.
이에 앞서 BNK금융지주 김지완 회장도 임기를 5개월 앞두고 사퇴하는가 하면, 빼어난 실적으로 연임이 기대되던 NH농협금융지주 손병환 회장도 연임의 뜻을 접는 등 주요 금융CEO들이 모두 일선에서 물러나자 관치의 압박 강도가 너무 센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전운 감도는 카드업계… 페이전쟁 서막
조달압박과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카드업계는 결제시장에서 힘을 키우고 있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 빅테크에 대적하기 위해 공동 간편결제서비스 ‘오픈페이’ 시범서비스에 들어갔다.
먼저 국민카드와 하나카드가 서비스를 시작한 가운데 속속 다른 카드사들도 합류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픈페이는 기존에 앱카드 사용을 위해 카드사별로 각기 다른 앱을 열어 사용해야했던 불편함을 없애 하나의 앱에 여러 카드를 등록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한때 우리카드와 현대카드가 참여를 망설여 실효성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삼성카드를 제외한 카드사들은 모두 참여를 앞두고 있다.
때에 맞춰 현대카드를 파트너로 염두에 두고 있는 애플페이의 한국 상륙도 임박한 상황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지난 5일 애플페이의 국내 도입을 위한 약관 심사를 완료했다.
애플페이의 국내 상륙 이야기는 나온지 오래 됐지만 개인정보 보호문제, 결제 방식 차이에서 오는 단말기 보급의 리베이트 여부 검토 등으로 시간이 걸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애플 페이의 도입은 단말기 경쟁자인 삼성의 삼성페이와 일대 결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가맹점 확보 속도, 국내 모바일 시장 점유율 차이 등에서 삼성이 훨씬 앞서기 때문에 시장 판도에 큰 변화가 없다는 관측이 많지만 애플이 가진 상징성 만으로도 삼성페이, 애플페이, 오픈페이, 여기에 빅테크 페이 서비스가 첨예한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마이데이터 사업 시작…삼성금융네트웍스 자체 플랫폼 모니모 런칭
올해부터 금융분야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시작됐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여러 금융사에 산재되어 있던 자신의 신용 정보를 한 번에 확인, 개인화된 금융 정보를 통한 맞춤서비스 비즈니스다.
올해 시작돼 주요 금융기관들이 여러 자회사, 또는 타사에 있는 개인정보를 한데 모으기 위한 마케팅 전쟁이 시작됐고 금융그룹들은 한 회사의 앱에 여러 관계사 서비스를 통합하는 슈퍼앱을 만들기도 했다.
다만 삼성금융 관계사의 경우 삼성생명이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아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시작할 수 없게 되자 자체 플랫폼 ‘모니모’를 런칭해 대응에 나섰다.
특히 개인 고객과 최일선에서 접촉하는 카드사들이 마이데이터사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신규 수익원 발굴 차원에서 데이터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15일, 신한, 삼성, BC카드를 국가 지정 민간 데이터 전문기관으로 예비 지정했다. 카드사에 쌓이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데이터를 활용한 신사업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기업을 통하면 데이터의 익명 및 가명처리 적정성을 평가해 안전성에 기반한 효율적 데이터 결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그간 관련 사업은 신용정보원, 금융보안원, 금융결제원, 국세청 등 공공기관들만 영위할 수 있었다.
▲ 비금융서비스 활발…금융회사들의 엉뚱한 도전들
금융회사들은 치열해지는 경쟁상황, 빅테크등 IT기반 신사업자들의 도전에 맞서 기존 금융서비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비금융 서비스 활성화에 힘썼다.
메타버스는 올 한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됐다.
NH농협은행은 광복절에 맞춰 메타버스 플랫폼 ‘독도버스’를 정식 오픈했다.
가상 공간에 독도를 구현해 낚시 미니게임, 둘레길 방문 등 재미적 요소를 가미하는가 하면, 메타버스 속 독도행진을 하면 참여자에게 기념 NFT를 증정하는 등 이용자 활성화를 통한 사이버 공간 창출에 힘썼다.
신한은행은 배달앱 ‘땡겨요’를 런칭해 1년 만에 4위 배달앱으로 키워냈다. 일반 배달앱과 달리 상생배달앱을 표방, 낮은 수수료와 빠른 정산서비스 등이 호응을 얻었다. 특히 배달라이더대출, 땡겨요전용카드, 땡겨요 적금 등 배달앱과 금융서비스를 결합해 진화를 거듭 중이다.
KB국민은행은 MZ세대 공략을 위해 웹드라마, 소설 콘텐츠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MZ세대 타깃 금융플랫폼인 리브NEXT 안에 웹드라마 ‘광야로 걸어가’를 공개해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신세대 고객 유치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오랜 기간 공들여온 아트뱅킹 분야도 강화했다.
1위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과 손잡고 프리미엄 자산관리 브랜드 Club1PB센터 공간을 활용, 미술작품 전시 및 미술에 관심 있는 고객에게 미술 교육 등 아트서비스를 제공할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이 밖에도 고금리를 찾아 고객들이 은행 지점 문 앞에 진을 치는 오픈런,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시행에 따른 고객 유치전, RBC비율을 맞추기 위해 보험사들의 부동산 매각 등 금리 변동과 자산상황 변화에 따른 진풍경이 벌어진 한해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