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간 외교관계가 경색되면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서서히 진행되는 모습이다. 중국 정부가 한한령(한류 제한령)을 다시 실행하려는 모습마저 나오면서 중국 관련 매출 비중이 높은 뷰티·면세업계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중국 내에서 2주 넘게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접속이 막히고 한국 콘텐츠 공급과 한국 연예인의 방송 출연이 제한됐다.
네이버 접속 장애는 G7 정상회의에서 중국 견제 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나타났다. 공동성명 발표 다음 날인 지난달 21일부터 중국 교민들이 네이버 접속에 불편을 겪고 있다. 중국 교민이 네이버에 원활하게 접속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우회 접속 프로그램인 VPN을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한한령은 없다. 모른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단순히 포털 접속이 원활하지 않은 것도 있으나 콘텐츠 사업의 향방이 주목된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중국 내에서 웹툰·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 한국 가수 겸 배우 정용화가 중국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위해 중국을 찾았으나 돌연 출연이 취소됐다. 중국 텅쉰망 등 온라인 매체들은 중국 네티즌들이 정용화의 출연 계획을 방송 주관 당국에 신고한 것이 출연 불발로 연결됐다고 보도했다. 일부 온라인 매체는 '한한령'(한류제한령)이 철회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한한령이 부활할 기색을 보이자 뷰티·면세업계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뷰티·면세업계는 이미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매출 측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던 중 최근 중국에서 리오프닝(경기재개)이 나타나면서 업황 회복을 기대하던 상황이다.
뷰티업계의 중국 매출 하락은 이미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중국 내 ‘궈차오(애국주의 소비)’ 열풍이 나타나면서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애경산업 등 K뷰티 브랜드가 중국 브랜드에 자리를 내주는 상황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달 발표한 ‘2023 1분기 보건산업 수출 실적’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의 중국 수출(6억 4400만달러)은 전년대비 20.8% 감소했다.
여전히 뷰티업계의 중국 의존도는 높다. 좀처럼 중국 시장 매출이 오르지 못하자 뷰티업계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LG생활건강은 지난 2일부터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아모레퍼시픽도 2020년에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한 뷰티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 매출이 줄어든 것은 하루이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그나마 중국의 리오프닝 수요를 기대해왔지만 중국 자체 브랜드가 선방하고 있고 한중관계가 갈수록 경색돼 중국 매출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뷰티업계의 경우 이미 중국 매출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면세업계의 우려는 더욱 크다.
면세업계는 '큰손' 된 다이궁(보따리상)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다. 다이궁은 한국에서 면세품을 대량 구매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유통하는 보따리상이다.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둘러싼 갈등으로 중국 정부가 자국 단체관광객의 한국 입국을 금지하는 등 경제보복을 가하자 대신 한국 상품을 중국 내에 판매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이궁에 대한 송객수수료 인하 이후 그들과의 거래액이 크게 감소했다. 면세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입출국 관광객이 사실상 끊기자 다이궁에게 정상 가격의 40∼50%를 수수료 명목으로 환급해주며 물건을 팔았다. 그러나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해오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다만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시화되면서 면세업계의 업황 회복이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 해외여행자 수가 크게 늘면서 다이궁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게 됐다.
관세청도 면세업계에 다이궁에 대한 과도한 수수료 지급을 자제하는 등 시장 정상화를 위한 자정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지속 요청해왔다. 면세점들은 현 상황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지난 1월부터 일제히 다이궁 수수료를 인하했다.
각 면세점이 적용 중인 다이궁 수수료율은 대체로 30% 안팎으로 전해진다. 면세업계는 국제 여객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는 추세와 맞물려 앞으로 다이궁에 대한 매출 의존도를 더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왔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국내 면세점을 찾은 외국인 고객은 약 77만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15만명)보다 410% 급증했다. 코로나19로 운항이 중단됐던 해외 항공 노선이 점진적으로 정상화되고 있어 앞으로도 외국인 고객은 지속해서 늘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여전히 중국 의존도는 높다. 중국인 관광객 유입을 통한 반등을 기대해왔으나 중국이 지난 3월 자국민 해외 단체여행 허용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단체 관광길이 여전히 막혀있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한중 관계가 경색돼 단체 관광 비자 문제 해결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최근 일본, 동남아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어 중국 의존도를 서서히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