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바이오, 식량·소재·재활용에 방점
선진국 대비 기술 격차 커…종합전략 필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의약품·백신을 비롯한 바이오 업종이 각광받게 됐다. 이에 의약품·백신이 바이오 업종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다만 바이오 업종은 의료·제약을 뜻하는 ‘레드바이오’ 뿐만 아니라 생명공학을 적용해 농업과 식품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그린바이오’, 옥수수와 콩 등 재생 가능한 식물자원을 원료로 화학제품이나 바이오 연료 등을 뜻하는 ‘화이트바이오’로 나뉘며 각 업종별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국내 식품·소재 기업들은 화이트바이오 부문의 성장세에 주목해 투자와 연구를 거듭해왔고 상당수의 성과를 얻어내왔다. 그러나 국내 화이트바이오의 기술 경쟁력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에서 업체간 협력 활성화를 통한 산업 생태계 구축, 정부의 세제혜택과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된다.
현재 화이트바이오 사업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국내 식품·소재업체로 CJ제일제당, 대상, 삼양홀딩스 등이 꼽힌다. 이들 업체들은 본업인 식품·소재 부문과 화이트바이오가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또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등으로 국내 식품 시장 성장이 한계가 있다고 본 영향이 크다.
먼저 CJ제일제당은 해양 생분해 소재 PHA(천연 폴리에스터 고분자의 일종) 등을 중심으로 화이트바이오 소재 사업을 벌이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식품첨가물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CJ제일제당은 화이트바이오사업을 전담하는 독립조직(CIC)을 구성하고 지난해 3월 이승진 전 롯데비피화학 대표이사를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했다. 이를 기반으로 CJ제일제당의 화이트바이오 사업부문은 올해 5월부터 해양생분해플라스틱 생산에 들어갔다. 연료·플라스틱 등 화학 제품의 대체제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화이트바이오 부문에서 오는 2025년까지 6만5000톤의 생산능력 확대를 목표로 세웠다. 물성·생분해도 우수성을 기반으로 고객별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판매율을 늘려나간다는 구상이다.
대상은 석유계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신소재 ‘카다베린’을 개발하며 화이트 바이오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카다베린은 주로 나일론이나 폴리우레탄을 생산하기 위해 기초 원료로 쓰이는 바이오매스 기반의 친환경 소재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라이신을 원료로 사용해 생산 공정상 기존 석유계 소재인 헥사메틸렌디아민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적다는 평가다.
대상은 기존 소재 사업에서 보유한 발효 제조 기술력을 통해 라이신을 원료로 한 카다베린을 직접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라이신을 대상의 군산 바이오 공장에서 자체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다베린의 단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카다베린 샘플 테스트 과정을 거치면서 화학섬유 기업 등 국내외 수요처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또 옥수수 전분을 이용한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 소재인 ‘열가소성 전분(TPS)’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전분 제품 생산 노하우를 바탕으로 우수 연구기관 및 수요처와 기술 협력을 통해 열가소성 전분의 고품질화 및 고강도화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바이오플라스틱 원료의 국산화와 소재 다양화에 앞장선다는 방침이다.
삼양홀딩스(삼양그룹)는 그룹의 근간인 식품기술과 화학기술의 융합이 잘 이뤄지는 화이트 바이오 소재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스페셜티' 소재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삼양홀딩스는 플라스틱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고순도 이소소르비드(ISB)를 상용화했다. 이소소르비드는 옥수수로 만들어지는 100% 천연 바이오 물질이다. 기존 석유 유래 소재를 대체해 플라스틱, 도료 등의 생산에 쓰인다.
ISB로 만든 플라스틱은 내구성과 투과성이 우수하다. 전기차 배터리 등에 사용하는 열관리 소재는 배터리 모듈과 냉각 패널 사이에 도포돼 배터리 온도를 관리한다. 전기차 배터리 성능 향상과 안전을 위한 소재로 주목받는다. ISB 생산을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삼양홀딩스는 화학 사업 계열사인 삼양이노켐을 통해 지난해 전북 군산 자유무역지역에 ISB 상업화 공장을 준공했다.
이렇듯 국내 업체들이 화이트바이오에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선도 국가와의 기술 격차는 크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2020년 기술수준평가’에 따르면 ‘친환경 바이오 소재’ 및 ‘바이오 및 폐자원 에너지화’ 등 화이트 바이오산업 관련 핵심 기술의 경쟁력은 미국 대비 각각 3년, 4년의 격차가 있다. EU나 일본과 비교해도 국내 기술력은 낮은 수준이며 미국의 경쟁력을 100으로 볼 때 78~85%에 그친다.
우리 정부도 2020년 12월 ‘화이트 바이오산업 활성화 전략’ 등을 발표하고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 형성 초기 단계로 불확실성이 높아 민간의 화이트 바이오 R&D에 대한 세제지원을 포함한 인센티브 설계와 제품의 실용화 및 사용 확대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바이오 업계는 해외 선진국이 추진하는 ‘바이오경제’를 국내에도 빠르게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이오경제란 다양한 산업에 바이오 기술을 활용해 사회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경제적 가치에 더해 대체 에너지와 차세대 식품 개발 등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에서 다뤄질 정도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지난 4월 ‘바이오경제 미래전략 포럼’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가 (바이오경제에 대한)시작이 늦은 만큼 산·학·연이 협력해 바이오경제에 대한 범정부차원의 종합전략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오경제로 전환은 기술력 확보와 함께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현재 윤석열 정부도 바이오 업종에 대한 투자와 지원책을 발표했으나 의료·제약 부분에 아직 한정돼 있다.
최윤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바이오 기술은 의약품 시장에 치중돼 있는데 반면 글로벌 시장은 레드·그린·화이트 바이오 비중이 각각 30%를 차지하고 있다”며 “바이오경제 전환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