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 제3보험·디지털·GA채널·글로벌
손해보험, 수익성 제고·디지털·글로벌

2020년 초 코로나19 시작과 함께 금리의 하락과 상승이 이어지며 4년간 롤러코스터를 겪은 금융시장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금리 하락을 기다리는 차주들의 마음과 달리 고물가와 싸우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움직임은 더디다. 금융권에선 상생금융을 새로운 표준(New Normal)으로 삼고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으며 디지털 전환, 해외진출, 신사업 등을 통해 치열한 일전(一戰)을 준비하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가 그 현장을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친다’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의 자세로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나간다면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을 것”(김철주 생명보헙협회장 2024 신년사 中)

"성장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이 2024 신년사 中 인용한 윈스턴 처칠의 격언)

2024년을 맞는 보험업계 수장들의 일성은 진지함을 넘어 비장하다. 노령화로 인구구조가 변화하고 기존의 먹거리가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신사업에 대한 열망, 디지털을 통한 효율화, 비즈니스 지평을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하고자 하는 변화의 열망을 담은 목소리다.

주요생명보험사 CEO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홍원학 삼성생명 대표, 신창재 교보생명 의장,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 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 윤해진 NH생명 대표, KB라이프 이환주 대표. 각사 제공.
주요생명보험사 CEO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홍원학 삼성생명 대표, 신창재 교보생명 의장,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 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 윤해진 NH생명 대표, KB라이프 이환주 대표. 각사 제공.

 


◆ 동생 손보에 체면 구긴 생보…2024년 국내외 채널 확장하며 제3보험 진격


생명보험, 손해보험, 증권, 카드, 운용 등 삼성금융네트워크가 진출한 영역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은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두 곳이다. 자산규모와 실적에서 타사를 압도한다. 그런 삼성이지만 지분구조상 엄연히 맞형의 역할은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을 보유하며 연결이익도 적지 않게 올리는 곳이다. 삼성생명 CFO들이 계열사 대표를 거치는 것은 하나의 전통이다.

하지만 지난해 상황은 조금 달랐다. 아직 4분기 결산이 끝나지 않았지만 자산 규모가 삼성화재의 3배가 넘는 삼성생명이 3분기까지 삼성화재에 약 2000억원 정도 뒤진 이익을 시현하며 체면을 구겼다.

지난 해 삼성그룹은 핵심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고전하며 그룹 전반에 쇄신 인사를 불러왔고, 그 와중에 안팎으로 예상에 없었던 삼성생명 전영묵 대표가 물러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삼성생명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인물은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다. 삼성생명 영업담당 본부장에서 삼성화재 부사장이 된지 3년, 대표이사에 오르고 2년만에 친정 삼성생명 CEO로 금의환향했다.

개인으로선 영광이겠으나 산적한 숙제를 생각하면 마냥 기쁠 수 없다. 올해 신년사에 그런 고민들이 묻어난다.

홍 대표는 2024년 신년사에서 "우리 회사 미래 성장의 핵심인 자산운용은 운용 자회사뿐 아니라 금융 관계사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글로벌 운용사 지분 투자의 질과 양, 그리고 속도를 높여 글로벌 종합자산운용 체계를 완성해 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대표이사의 전문분야를 논할 필요가 있겠냐 싶지만, 홍대표의 주전공은 보험영업이다. 삼성화재 CEO가 되기 전 삼성생명에서 특화영업, 전략영업, FC영업 등을 맡았고 그 경력을 살려 삼성화재 자동차보험본부장을 맡았었다. 생보사와는 달리 비교적 정형화된 영업구조를 가진 삼성화재에서 그의 영업 역량은 이미 검증을 마쳤다.

하지만 생보사는 조금 다르다. 빅3라고는 하나 2위 한화생명의 약 2배인 200조원을 굴리는 회사에서 보험상품을 더 파는 것이 전부일 수 없다. 취임사와도 같은 신년사 일성으로 자신의 전문분야도 아닌 자산운용 경쟁력을 말한 것에 주목하는 이유다.

생명보험업계는 구조적 변화를 맞고 있다. 과거엔 종신보험 위주의 상품판매가 통했으나 인구구조가 변하고 최근 경제사정마저 좋아지지 않아 보험유지율이 위협을 받으면서 생전에 내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제3보험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막연한 미래에 대한 대비는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지만 당장 아프거나 사고가 났을 때 필요한 건강보험 등에 대해서는 젊은 세대에게도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판단은 생보사로 하여금 제3보험에 관심을 높이게 하고 있다. 삼성생명도 지난해 ‘건강보험 탑3’로 올라설 것을 천명한 바 있다. 보험 가입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미래고객 유치 차원에서도 필요한 선택이다.

지난해 도입된 신 회계제도 IFRS17도 이런 분위기에 ‘뒷바람’이 됐다.

보험계약마진(CSM)이 미래 수익성을 상징하는 항목으로 대두되면서 저축성보험보다 CSM 제고에 유리한 보장성보험 판매 경쟁이 일어난 탓이다. 손해보험사들이 장악해왔던 시장을 뺏어오기까지 막강한 자체 판매채널 보유 및 GA채널을 넓혀가고 있는 생보사들에게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으리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디지털전환은 생보와 손보를 가리지 않고, 더 나아가 전 금융업계의 화두다.

교보생명 신창재 의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혁신’을 강조하며 그간 구축해온 디지털 인프라를 유지 및 지속 성장시키기 위해 전진할 것을 다짐했다.

특히 "전통적인 종신보험에 대한 고객 니즈는 줄어드는 반면 생존 시 다양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건강, 상해보험 등 제3보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며,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환경에서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부 파트너의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과 서비스, 신기술을 활용해 고객 서비스와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해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며 "외부 스타트업들의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문화가 우리 회사의 혁신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지난해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며 부회장으로 올라선 한화생명 여승주 대표는 지금까지 속도를 낸 해외진출을 올해에도 확대하고 그룹이 강조해온 디지털화와 보장성보험 상품 확대로 수익성을 지속 높여갈 뜻을 비췄다.

한편 생보업계에 GA중심으로 돌아가는 판매채널을 의식한 전략 수정도 엿보인다.

신한라이프 이영종 대표는 지난 경영전략회의에서 GA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해 새롭게 재편된 GA채널 성공적 안착과 전속 설계사 조직 확대로 방향을 잡았다. 조직개편에서 GA마케팅팀을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사업에 대한 주문도 이어진다.

NH농협생명 윤해진 대표는 “신사업 저변 확대를 통해 수익 기반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기존사업과 결합을 통하여 업무경쟁력을 강화하고 성공적인 수익모델로 구현”을 강조했다.

KB라이프 이환주 대표도 “시니어케어 서비스와 디지털화, 그리고 글로벌 진출은 신속하면서도 내시있게 추진해야 한다”며, “(KB손보로부터 이관받은) KB골든라이프케어와 함께 시니어 종합 케어 서비스로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요 손해보험사 CEO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문화 삼성화재 대표, 조용일 현대해상 대표, 이성재 현대해상 대표, 구본욱 KB손보 대표, 정종표 DB손보 대표. 각사 제공.
주요 손해보험사 CEO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문화 삼성화재 대표, 조용일 현대해상 대표, 이성재 현대해상 대표, 구본욱 KB손보 대표, 정종표 DB손보 대표. 각사 제공.

◆ 생보 공격 받는 손보, 달리는 말에 채찍 더한다


발군의 수익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 손보업계는 새로운 먹거리 찾기와 CSM 제고에 더욱 속도를 내면서 해외진출 등으로 시장 축소 리스크를 벗어난다는 전략이다. 특히 요양보험, 펫보험 등 새로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디지털화에 더욱 속도를 낸다는 입장이다.

홍원학 대표에 이서 삼성화재 선장에 오른 이문기 대표는 ‘초격차 삼성화재로의 재탄생’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여전히 1위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나 DB손해보험이 업계1위를 선언하는가 하면, 전통의 현대해상, 그룹 시너지를 노리는 KB손보, 부동산금융 및 펫보험 강자 메리츠화재 등이 수익성을 높이며 추격하는 것을 허용치 않겠다는 포석이다.

특히 그는 빅테크기업들이 보험시장을 노크하는 상황에서 “보유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보험가치를 만드는 인슈어테크사로의 혁신 및 보험을 넘어 국내외 디지털 사업으로 영토 확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용일, 이성재 두 현대해상 CEO는 신년사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이익 창출 증대에 경영활동의 중점을 둘 것"이라며, "특히 고수익 상품 위주의 매출 확대를 통해 장기보험 CSM 극대화에 주력하고, 자동차보험 손해율도 경쟁사 대비 우위를 점하며, 퇴직연금 운영을 개선하는 등 일반보험 이익 확대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라고 수익성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전통적으로 업계 2위의 지위를 유지해온 현대해상이지만 최근 수익성에서 DB손해보험이 2위 자리를 굳히고, 한단계 아래로 평가받아온 KB손해보험과 메리츠화재가 추격해오는 상황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듯한 모습이다.

DB손보 정종표 대표도 "장기보험 CSM 확대를 위해 PA(전속)채널에서는 조직체력 성장 기반으로 1위사 대비 격차를 축소하고 GA채널에서는 철저한 수익성을 전제로 적정 시장점유율을 확보해야 한다"며 "차별화된 신상품 발굴 및 포트폴리오 운영을 통해 CSM 성장을 견인하고, 손실부담계약 유입을 제어하고 저가치 계약을 리모델링하여 신계약 수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DB손해보험은 지난해까지 베트남 시장 내 톱10 손보사 세 곳을 확보해 해외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KB손보 신임 구본욱 대표의 첫 일성도 수익성이었다.

구 대표는 신년사 겸 취임사에서 "2024년은 본업 경쟁력 강화 및 경영효율 우위 확보를 통해 손해율, 유지율 등의 '경영효율 지표', 신계약 CSM 등의 '미래가치 지표', 보유고객, 우량고객 등의 '고객가치 지표' 등으로 대표되는 '회사가치성장률 1위에 도전' 하는 원년의 해"라며, "새해에는 상품개발 및 판매, 계약관리, 보상 등 보험회사 벨류체인 전반에 있어 '대한민국 손해보험의 새로운 스탠다드'를 제시하자"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KB금융그룹 신임 양종희 회장도 비은행 부문 계열사들을 KB국민은행처럼 업권 대표 회사로 끌어올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만큼 구 대표가 신임 대표로서 수익성을 이야기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며, “은행 뿐 아니라 보험업권에 대해서도 상생금융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커지고 보험 본업에 대한 경쟁력은 도전을 받는 시기라 이를 만회하기 위해 디지털로 효율화, 신사업 발굴, 해외진출 가속화로 시장 확대 등이 공통된 목표”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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