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금융 순이익 은행 비중 70~100%...금리인하 시대 비은행 아쉬움
비은행 선두 증권업 수익 급감…카드 퇴조, 보험 약진
공시를 마친 지난 해 4대금융지주 실적을 뜯어보면 현재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판도가 한 눈에 보입니다. 그 중에도 눈에 띄는 부분은 보험의 약진과 증권의 퇴조입니다. 은행은 여전히 견조한 실적으로 주요 은행간 우열을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비은행 계열사의 차별화가 향후 수익을 가르는 주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왜일까요?
2023년에도 주요 금융지주 순위는 변함없이 KB, 신한, 하나, 우리 순으로 마감됐습니다. 선두경쟁을 하는 KB와 신한이 4조원대, 하나가 3조원대, 우리가 2조원대 실적을 보였습니다.
은행만 놓고 보면 금융지주간 우열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나은행이 3조4766억원(+12.3%)으로 은행 중 가장 높은 이익을 낸 가운데 KB국민은행 3조2615억원(+8.9%), 신한은행 3조677억원(+0.7%), 우리 2조5159억원(-14.95%) 순입니다. 하나은행이 약진하고 우리은행이 주춤한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은행들은 변함없는 이익체력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은행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습니다.
그나마 그룹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KB(70.41%)와 신한(70.23%)이 70% 수준을 보였지만, 우리(99.95%)는 은행 실적이 곧 그룹 실적이고, 하나는 은행실적이 그룹 실적을 넘어섰습니다.
이러한 원인을 각 그룹별로 살펴보면 하나의 줄기가 보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증권의 급감, 카드의 퇴조, 보험의 약진입니다.
그룹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분산이 가장 우수한 KB금융은 손보 7529억원(+35.1%), 증권 3896억원(+107.5%), 라이프 2562억원(+88.7%), 카드 3511억원(-7.3%) 등 맏형 은행과 보조를 맞추며 계열사간 경쟁 분위기 입니다.
신한금융도 업계 1위 카드 6206억원(-3.2%), 증권 1009억원(-75.5%), 라이프 4724억원(+5.1%), 캐피탈 3040억원(+0.2%) 등 비교적 안정적인 구성입니다.
하나금융은 캐피탈(2166억원)과 카드(1710억원)가 일부 기여를 했지만 증권이(-2708억원)이 적자를 내며 부진했습니다. 손해보험과 생명보험은 아직 숫자로 말하긴 어려운 단계입니다.
우리금융도 카드(1110억원), 캐피탈(1278억원)이 일부 은행을 지원했지만 우리종합금융(-534억원)과 우리금융저축은행(-491억원)이 적자를 내며 주요 은행 중 유일하게 실적이 줄어든 우리은행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습니다.
KB증권이 전년대비 2배가 넘는 실적으로 살아나며 4대금융 중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코로나19 시절 개인들의 투자 폭발과 함께 대형증권사들이 1조원대 실적을 보이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입니다.
한때 빅3 증권사였던 쌍용증권의 후예 신한투자증권은 아예 실적이 4분의 1로 줄었고, 하나증권은 큰 폭의 적자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최근 3년간 쌓은 대손충당금만 1조원 수준이라 부실을 다 털어낸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입니다. 아예 증권사가 없어 현재 증권사 인수에 나서고 있는 우리금융의 경우 그 대체 역할을 하는 우리종합금융이 적자를 내면서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지난해 IFRS17 도입과 함께 보험계약마진(CSM) 확대를 이어온 보험사들은 실적에서 약진하며 그간 비은행 선두 역할을 해온 증권업과 어깨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빅5로 안착한 KB손보와 출범한지 1년 밖에 안된 KB라이프가 원투펀치를 자랑하며 쌍두마차를 끄는 형국이고, 신한라이프도 5000억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이익으로 공언한 ‘생보업계 빅3’ 도전이 빈말이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아직 보험계열사의 체력이 약한 하나금융과 아예 보험사가 없는 우리금융의 아쉬움이 더 커지는 상황입니다.
우리금융은 오랫동안 공언해온 대형증권사 인수가 매물이 없어 마땅치 않자, 작은 증권사를 인수해 우리종금과 합병하는 시나리오도 검토 중입니다. 만약 이것이 우리금융 증권사 인수의 최종안이 될 경우 개인고객(리테일) 기반을 갖춘 증권사를 안고 시작하는 것과는 다른 그림이어서 타 그룹 수준의 증권사를 만들어내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증권사들의 퇴조는 사실 착시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부동산 PF, 해외상업용부동산 투자 부실, ELS 관련 영업 축소 등의 이유로 증권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한 이유지만, 실은 코로나19 기간 워낙 투자자가 늘며 수익이 단기 급증한 탓에 눈높이가 높아진 역기저 현상도 한 이유입니다. 대형 증권사들이 1조원씩 버는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은행들이 지금처럼 엄청난 이익을 내는 것도 역시 고금리가 가져온 현상입니다. 단기간에 금리가 곤두박질 칠 가능성은 현재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 하락 속도도 하반기에 일부 반영될 수준이고, 과거처럼 제로금리 시대는 오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많기도 하지만 은행의 수익 감소를 메워 줄 비은행 맏형이 증권에서 보험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보입니다.
최근 불거진 홍콩ELS(H지수 기초자산 주가연계증권) 손실 사태가 미중 패권전쟁 속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아예 은행에서 투자상품 판매 자체를 거두는 논의가 진행중입니다. 최종 결과는 가봐야 알 일이지만, 이미 사모펀드와 ELS 사태를 거치고 은행들의 독과점적 영업 행태를 못마땅해 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은행의 입지는 좁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DGB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제4인터넷은행 출범 움직임 등도 그 연장선상의 이야기입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ELS는 어찌보면 투자자들에게 일정 부분까지 주가가 하락해도 그 수익을 방어할 수 있게 만들어준 획기적인 상품인데 마치 투기의 온상을 만드는 상품처럼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일정 수준(Barrier) 밑으로 기초자산이 내려가지만 않을 경우 일반 주식 같으면 그만큼 마이너스 수익이 날 것을 막아주고 처음에 약속한 안정적 수익을 주는 좋은 상품이라는 설명입니다.
ELS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단순한 하나의 파생상품이 아닙니다. ELS의 지속 발행과 판매를 통해 안정적으로 투자자들의 자금을 수혈 받아 수수료 수익과 더불어 이를 파생상품으로 운용하며 운용 수익도 낼 수 있는 상품입니다. 일부 초대형 증권사가 영위하는 발행어음과 함께 자금줄 역할을 하는 상품입니다. 그 판매의 주요한 축을 이루는 은행이 이를 취급하지 않게 되면 투자자들은 투자의 기회를 잃게 되고 증권사들은 다른 자금줄을 찾아 가뜩이나 치열해진 채권시장에서 경쟁해야 합니다. 전체 금융시장에 미칠 연쇄효과가 만만치 않습니다.
투자의 역사엔 늘 부침이 있어 왔습니다. 영광의 시간 뒤에는 늘 고통이 함께 했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격언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증권업이 금융산업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