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1Q 호실적 예고.. '메모리 훈풍' 지속
고금리·중동사태·엔비디아 쇼크 등 리스크는 부정적 요소로
AI 반도체 수요 기대 여전.. 장기적 시장 침체 가능성은 낮아
지난해 심각한 불황이었던 반도체 산업이 올해 들어 회복세를 보이면서 '반도체의 봄'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실적도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돼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고금리, 중동사태 등 대외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반도체 수요가 예상보다 빨리 살아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면서 업황 회복 시기에 대한 불황실성도 교차하는 모습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는 30일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어닝 서프라이즈'를 예고하고 있다. 앞서 이달 초 1분기 잠정실적 발표를 통해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1% 증가한 71조원, 영업이익은 무려 931% 늘어난 6조6000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 4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한 SK하이닉스 역시 25일 1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조 단위 영업이익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1분기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매출 12조1152억원, 영업이익 1조7928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은 흑자전환, 매출은 138.1%나 늘어나는 등 호실적이 예고됐다.
이러한 호실적은 인공지능(AI) 가속기 선두 주자인 미국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데다 D램, 낸드 플래시 등 주요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상승효과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도 회계연도 2024년 2분기(2023년 12월∼2024년 2월) 매출 58억2400만 달러(8조원), 영업이익 1억9100만 달러(26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57.7% 늘고 흑자 전환했다.
다만 이같은 흐름 속에 '반도체의 봄'을 기대하던 시장에 다소 부정적인 요소들이 감지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전문업체 ASML이 올해 1분기 어닝 쇼크 수준의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대만 TSMC가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으며, 미국 엔비디아의 주가도 일시적으로 급락하는 등 반도체 산업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AI 열풍이 침체됐던 반도체 수요를 견인하고 있긴 하지만 AI 반도체를 제외한 업황 회복은 '아직 이르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메모리 반도체 생산 업체들이 최대 25% 이상 가격 인상을 시도하고 있지만 수요처인 모듈 업계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 업계는 지난해 업황 침체로 누적된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공격적인 가격 인상에 나섰다. 이에 따라 올해 1분기(1~3월) D램 평균판매단가는 전년 대비 20% 이상 상승했다.
이어 이달 초 대만 강진으로 마이크론이 일시적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D램과 낸드 플래시의 추가 가격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추가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메모리칩 주 거래처인 모듈 업계가 이같은 가격 인상 계획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메모리 수요 회복의 불확실성이 커 부품 가격 인상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게 이유다.
메모리 업계 전반의 재고 수준도 여전히 높은 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대만 강진 이후 D램 현물가격이 소폭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나 메모리 수요가 낮아 거래량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며 "조만간 하락세로 돌아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물가격은 대리점을 통해 일시적으로 이뤄지는 거래가격으로, 통상적으로 기업 간 거래가격인 고정거래가격에 선행하는 특성이 있다.
장비 수요 위축도 반도체 봄을 더디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주요 반도체 업체는 미래 반도체 수요를 예측해 장비를 구매하는데, 올해 1분기 반도체 장비기업인 ASML의 매출과 순이익이 모두 급감한 것이다.
ASML의 1분기 매출은 52억9000만 달러(7조7800억원), 순이익은 12억2000만 달러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1.6%, 37.4%씩 줄었다.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주문도 전 분기 56억 달러(약 8조2000억원)에서 6억5600만 달러(약 9600억원)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장비 수요 위축은 TSMC의 파운드리 성장률 조정으로 이어졌다. TMSC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초 약 20%로 예상한 파운드리 성장률을 10%대 중후반까지 낮췄다. 그러면서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AI와 데이터센터 수요 이외 소비자용 가전제품 및 글로벌 자동차 소비량 감소 등을 수요 위축의 원인으로 꼽았다.
반도체의 장비·생산 위축이 예상되자 AI칩 선두주자인 엔비디아에 대한 기대심리도 흔들리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엔비디아 주가가 10%가량 폭락하면서 하루 만에 시가총액 2조달러가 붕괴된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해온 HBM의 가격 조정론도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는 HBM 시장 점유율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사실상 독점적으로 엔비디아에 HBM3(4세대)을 납품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를 견제하며 HBM3E(5세대) 샘플을 엔비디아에 보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수요가 반도체 시장 분위기를 살린 것은 맞지만 여전히 주요 메모리 제품의 수요가 부진하다"며 "이에 따라 메모리 가격에 대한 갈등도 다소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점은 반도체 봄을 기다리는 업계의 기대가 높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엔비디아 주가가 22일(현지시간) 반등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4.35% 오른 795.18달러(109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9일 10%에 달하는 하락 폭을 일부 만회하며 다시 800달러에 바짝 다가선 모습이다. 시가총액도 1조9870억 달러로 불어났다.
업계에서는 이날 반등은 낙폭 과대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 헤지펀드 그레이트 힐 캐피털의 토마스 헤이즈 회장은 "이번 주 기술주 실적에 대한 긍정적인 기술적 기대와 주 후반에 발표될 생산자물가지수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다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짚었다. AI 반도체 수요가 큰 만큼 우려되는 요소들은 있으나 장기적인 시장 침체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인 상황이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봄을 기다리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차세대 제품인 HBM4(6세대) 개발을 놓고 치열한 주도권 경쟁에 나선 상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일부 기업의 매출 실적이 나빠졌다고 해서 반도체 산업 전체가 지금 나빠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쇼크가 오래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