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 속 가격·성능 앞세운 하이브리드차 각광
BYD 한번 주유에 서울-부산 왕복 2번반 주행 가능
韓 완성차, 中 '기술력·원가경쟁력' 풀어야 할 과제로
최근 중국 전기자동차 업체인 비야디(BYD)가 한번 충전 시 2000km 이상을 주행할 수 있는 고사양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보이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의 주행 가능 거리에도 관심이 쏠린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가 '캐즘'(Chasm·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으로 판매가 주춤한 대신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신차 출시를 발표가 있다. 특히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모델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모습이다.
PHEV는 전기모터와 석유연료 엔진(보조)이 조합돼 구동하는 원리로,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의 중간 단계이자 둘의 장점을 결합한 모델로 불린다. 배터리 용량을 늘려 주행거리를 증가시킨 게 특징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2027년 PHEV 모델을 출시할 계획을 밝혔으며, 일본의 도요타와 마쯔다, 스바루 등도 PHEV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BMW도 PHEV를 중심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회사는 BMW3 시리즈(G20) 부분변경을 공개했는데, 첫 페이스리프트 제품의 2차 버전으로 내·외관 디자인을 소폭 바꾸고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파워트레인 성능을 개선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전기차 전용브랜드 EQ를 포기하고 계획을 수정한 뒤 새로운 모델에 PHEV를 적용하고 시장 공략에 돌입한 상황이다. 역대 S-클래스 중 가장 강력한 주행 성능을 갖춘 벤츠 AMG S63 E 퍼포먼스를 출시할 계획을 밝혔으며, 이 모델을 S클래스 첫 PHEV로 출시한다.
이 가운데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비야디가 최근 완충, 풀주유하고 최대 2500km를 달릴 수 있는 PHEV를 출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470km라고 가정하면, 두 지역을 2번 반 정도 왕래할 수 있는 셈이다.
비야디는 지난달 28일 산시성 시안에서 제품 발표회를 열고 5세대 PHEV 시스템을 적용한 중형 PHEV 세단 '진 L(Qin L)'과 '씰2 06(Seal 06)'을 공개했다.
BYD의 앞선 4세대 PHEV 시스템으로는 배터리로 수십 km 주행이 가능하고 가솔린 엔진으로 ℓ당 26.3km의 연비를 갖췄었는데 이번 5세대 PHEV 시스템은 배터리가 모두 소진된 상태에서도 ℓ당 34km를 주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회에서 왕찬푸 BYD 회장은 "완충된 배터리와 가득찬 가솔린 탱크를 함께 사용하면 2100km의 주행 거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충전이나 재급유 없이도 200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테슬라 모델 3 주행거리(630km)의 3배가 넘는 수치이며, 지리 갤럭시 L6 하이브리드(1370km)와 도요타 캠리 하이브리드(1100km)보다도 2배 가까이 길다.
특히 이같은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차량 가격이 3000만원 이하로 저렴해 이목이 집중됐다. 두 모델의 가격은 9만9800위안(1890만원)과 3만9800위안(2640만원)으로 책정됐다.
PHEV를 둘러싸고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BYD가 가성비 높은 PHEV를 내놓으면서 더욱 치열한 시장쟁탈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모건스탠리는 전기차 전문매체 CNEV포스트를 통해 "BYD의 최근 행보는 판매량 증가와 해외시장 성장에 도움을 주겠지만 완성차업체와의 가격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 모델 출시가 도매 물량을 늘리겠지만 또 다른 가격 경쟁을 촉발할 수 있는지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BYD는 중국 현지에서부터 무서운 속도로 PHEV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폭스바겐을 제치고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에 오르고 지난해 4분기에는 테슬라를 넘어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업체에 등극한 가운데 4세대 PHEV 시스템을 탑재한 차량은 누적 360만대 이상 판매됐다.
이에 국내 완성차업체들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며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하이브리드 차량 시장 규모는 매우 작은 편이다. 완성차 5개사 중 한국GM과 KG모빌리티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아직 생산하지 않고 있으며 르노코리아는 기존 주력 모델인 아르카나(옛 XM3)의 하이브리드 1종을 판매하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에 신형 하이브리드 모델 출시를 예고한 상태다.
대신 KG모빌리티는 모든 신차 라인업에 하이브리드 트림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는데, 내년부터 본격적인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디. 앞서 지난해 11월 BYD와 협업을 통해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르노코리아는 이달 열리는 부산모빌리티쇼에서 신형 하이브리드 차량 '오로라1'(프로젝트명)을 최초 공개한다.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하이브리드 모델로, 볼보가 개발한 자동차 플랫폼 CMA를 기반으로 제작됐다는 설명이다.
국내 업계 선두인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전기차에 이어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전환도 비교적 빠르게 하면서 미국 등에서 선방하고 있다. 실제로 양사의 올해 1분기 실적에서는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현대차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ℓ당 21.1km를(전체 주행 가능 거리 약 1078km), 기아 니로 하이브리드는 ℓ당 20.8km(전체 주행 가능 거리 약 946.3km) 등으로 연비가 우수한 편이다.
현대차는 올해 연말까지 가동을 앞둔 미국 조지아주 HMGMA(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 공장에서 하이브리드 차량도 생산할 수 있도록 시설을 투자할 예정이다.
또 하이브리드 모델이 없던 제네시스도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GV70을 대상으로 'EREV'(주행거리 확장 전기차, 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 차량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6년 12월 양산이 목표다.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GV70 EREV 버전을 개발하고 있으며 내연기관을 통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동시에 전기 주행 거리를 연장하도록 설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기존 PHEV의 최대 전기 주행 거리가 일반적으로 100km 수준인 것을 감안해 EREV 기술을 새롭게 도입하겠다는 전략이다. EREV 기술은 전력으로만 200km 이상의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GV70 EREV는 총 주행 거리가 1000km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BYD가 선보인 2000km 이상 보다는 아직 짧은 거리이지만 실질적으로 테스트에 들어갔을 때 전력과 내연기관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주행거리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현지 전기차업체의 공세가 막강한 상황으로, 이번 BYD가 내보인 원가 경쟁력과 선제적 기술력과 관련한 문제가 큰 과제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으나 중국이 원가경쟁력을 이미 확보한 상태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완성차업체들의 비용 절감이 생존의 핵심 키워드가 되고 있어 부담이 클 전망"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