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의료연구원, 급여화 항목과 퇴출 항목 근거 검토 중
"다양한 국가 정책 참고해 국내 실정 맞는 체계 구축해야"
금융학계에서 건강보험 비급여 관리 이슈에 대해 “표준화를 비롯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이 나왔다.
5일 보험연구원은 서울 종로 코리안리 빌딩에서 ‘건강보험 지속성을 위한 정책과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스트레이트뉴스는 “보험업계에서 마이데이터 추진을 하고 싶어도 비급여 항목에 대한 진료 정보가 없다면 사실상 반쪽짜리가 아니냐?”라고 질문했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교수는 “2020년 의료법 개정을 통해 이제 모든 의료기관, 병원급뿐만 아니라 의원급에서도 비급여 정보를 보고하도록 한 것은 제도적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비급여의 정확한 규모조차 알지 못했던 상황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뗀 셈”이라고 설명했다.
비급여 항목이란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의료서비스 또는 진료 항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제공받는 의료 행위나 서비스 중 건강보험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항목으로, 환자가 전액 본인 부담으로 비용을 지불한다.
이주열 교수는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와 적정 가격 설정을 위해선 표준 진료 지침과 포괄수가제(DRG)의 도입이 전제 조건”이라며, “학계를 중심으로 표준진료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표준화된 가격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현재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급여화할 항목과 퇴출할 항목에 대한 근거를 검토하고 있다”며 “이러한 과정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면서 정책적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정 국가의 사례를 그대로 모방하기보다는 다양한 나라의 정책을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는 큰 틀의 비급여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급여 관리의 표준화는 단순히 가격 통제에 그치지 않고, 진료의 질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과정”이라며, “학계와 정부, 의료계가 협력해 점진적으로 이를 실현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주열 교수는 “비급여 관리 문제는 단순히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 정부 개입이 오히려 시장을 왜곡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비급여 문제는 의료 체계 전반의 신뢰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중하고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국내 건강보험 보장률은 65.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에 비해 낮다.
이 교수는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비급여 관리에 적극 개입해야 하지만, 과도한 개입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급여 항목은 의사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개발되고 새로운 의료 기술과 서비스가 계속 추가되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통제하지 않으면 시장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근 의료기관에서 비급여 항목만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약 2000곳에 달한다”며, 이는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왜곡시키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급여 관리 정책 방안으로 ▲비급여 항목의 표준 가격 공개 ▲비급여 보고 주기 분기별로 확대 ▲의료기관 입구에 QR 코드를 통한 비급여 항목 정보 제공 등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의료기관이 비급여 정보를 보고하게 한 것은 큰 진전이지만, 현재는 한 달 치 자료만 보고하도록 되어 있어 실질적인 관리에는 한계가 있다”며 보고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손보험과 비급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과잉 진료와 비급여 증가 문제는 실손보험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실손보험이 비급여를 조장한다는 시각이 있지만, 실손보험 자체가 낮은 보장률과 높은 본인 부담금을 보완하며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실손보험과 관련해 “정부의 정책이 보험사의 이익만을 보장하고 소비자의 보장 범위를 축소하거나 자기부담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비급여와 관련한 정책 개선 방향으로는 학계와 정부의 협력을 강조했다. 이주열 교수는 “비급여 항목의 관리 기준과 표준화 작업은 학회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정부는 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급여 관리로 실손보험 개혁에 대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한국이 2025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비급여 관리와 실손보험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건강보험과 실손보험의 재정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료 남용과 비급여 관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비급여 항목과 실손보험이 국민 의료비 부담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도수치료와 비급여 주사제, 발달지연 치료 등은 2023년 기준 전체 실손보험 지급금의 31%를 차지하며 급증하는 상황이다.
김 연구위원은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비급여 사용이 집중적으로 늘어나면서 필수 의료 분야의 공백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급여 문제와 실손보험 구조 개혁은 정부, 의료계, 보험업계의 협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며 “비급여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민관 협의체를 통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독일과 호주의 비급여 관리 사례를 언급하며 “해외 사례를 참고해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비급여 관리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번 세미나에서 논의된 방안들이 건강보험과 실손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안철경 보험연구원 원장은 “국민건강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은 국민 건강과 의료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라며 “비급여 관리와 실손보험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총 의료비 121조원 중 실손보험이 11%를 담당하지만, 의료 시스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며 “과잉진료와 비급여 증가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기관과 사기업, 건강보험의 협력과 정부, 학계, 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오늘 논의가 의료보험 체계 혁신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