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역 건설경기 안정화 방안 발표
LH, 지방 악성 미분양 3000가구 매입
핵심인 스트레스 DSR 규제 완화 빠져
재정당국 우려에 세제 혜택 역시 제외
“미분양 해소와 수요 진작 대책 없어”
정부가 관계부처(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합동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매입, 건설사 책임준공 부담 완화 등 ‘건설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지역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했지만, 금융당국과 재정당국의 외면에 ‘속 빈 강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19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한건설협회(협회장 한승구), 한국주택협회(협회장 윤영준), 대한주택건설협회(협회장 정원주), 대한전문건설협회(협회장 윤학수) 등 건설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지역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한 방안은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와 지방 미분양 문제 해소를 위해서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7만173가구(수도권 1만6997, 지방 5만3176)로 2012년(7만4835가구) 이후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중 ‘준공 후 미분양’, 즉 악성 미분양은 2013년(2만1751가구) 이후 11년 만에 최대치인 2만1480가구(수도권 4251, 지방 1만7229)로 나타났다.
문제는 지방 미분양이 전체의 75.8%, 지방 악성 미분양이 전체의 80.2%를 차지해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 부동산시장 양극화의 골이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건설부동산 업계가 지방 미분양 문제의 심각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이유다.
건설업계와 시장은 그동안 ▲스트레스 DSR 3단계 규제 지방 유예 또는 조건 차등 적용, ▲지방 미분양 주택 매입자와 기업구조조정(CR) 리츠에 대한 추가 세제 지원,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확대 및 조기 집행, ▲금융권의 책임준공 요구 관행 개선, ▲공사비 현실화 방안 등을 지속 요청해 왔지만, LH의 지방 미분양 주택 매입과 책임준공 요구 관행 조정 등 찔끔 대책에 머물렀다는 평가다.
유동성 지원 방안 담겨
지방은행에 한해 가계대출에 대한 경영계획을 수립할 때, 실질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경상성장률 3.8%를 초과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는 지방의 부동산시장 침체가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보다 원활한 자금 공급이 시장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 비은행이 지방의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늘일 경우, 인센티브도 부여될 예정이다.
그밖에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를 대상으로 최대 5조원의 유동성을 지원한다. 채권시장안정펀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등의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또한 중소 및 중견 건설사를 대상으로 정책금융기관(한국산업은행, IBK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해 대출 4조원, 보증 4조원 등 8조원 규모의 정책금융도 공급될 예정이다.
LH의 악성 미분양 물량 매입 "언 발 오줌누기"
이번 안정화 대책의 핵심 방안이다. LH는 2024~2025년 비아파트 11만 가구 매입을 진행 중인데, 이와 별도로 올해 대구, 부산 등 악성 미분양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3000여 가구를 매입해 부동산 경기 회복기에 분양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비아파트만 적용되는 '매입형 등록임대'도 지방의 전용 85㎡ 이하 악성 미분양 아파트에 허용키로 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리먼브라더스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분양 물량이 전국적으로 16만가구를 넘어서자 2009년 정부가 발표한 대책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당시 LH가 7000여 억원을 들여 미분양 주택 2163가구를 매입한 데 이어 정부는 2009년 2월 이후 1년 내 미분양 주택을 취득할 경우, 5년 동안 양도세 전액, 취득세와 등록세 각각 50%씩 감면해줬다.
이번에는 세제 혜택이 포함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세수 결손이 약 30조원이나 돼 재정 당국이 세수 확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세제 혜택 없는 미분양 물량 매입으로는 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이와 관련, 시공능력평가 20위권 중견 건설사 임원은 “건설부동산시장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고 지방 미분양도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해 수요를 만들어 내려면 LH 주택 매입 수준으로는 '언 발에 오줌누기'다. 금융당국과 재정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정책과 금융, 세제 등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향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DSR, ‘부동산 살리기’ 아닌 ‘대출 억제’ 방점
“스트레스 DSR을 완화해도 미분양 해소에는 별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스트레스 DSR 규제 때문에 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전체적인 가계부채 수준이나 집값 상승 우려 등을 감안할 때, 3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 도입을 원칙대로 진행한다는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전혀 없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스트레스 DSR 대출 규제 관련 내용도 빠졌다. DSR의 한시적 유예 또는 완화는 지방 미분양을 해소할 수 있는 핵심 방안으로 꼽히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이미 ‘DSR 대출 규제 강행’ 시그널을 명확히 제시한 바 있다.
건설업계와 시장은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스트레스 DSR 3단계 규제에 대한 지방 유예 또는 조건 차등 적용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지난 4일 ‘경제분야 민생대책 점검 당정협의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정부에 요청한 바 있다.
이는 스트레스 DSR 대출 규제가 고금리, 원자재 값・인건비 급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 부동산 경기 침체, 매수심리 위축 등과 함께 미분양 증가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시장의 예상대로 이번 지역 건설경기 보완방안에서 이 문제를 제외했다. 다만 지방 건설경기 상황 등을 보고 4~5월 중 구체적인 적용 범위와 비율 등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단 가능성만 열어 둔 셈이다. 이유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지난 10일 2025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발언에 이미 예고돼 있었다.
“올해는 경제성장률 둔화와 미국 신정부의 정책 변화 등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매우 큰 한 해가 될 것이다. 금융시장 불안 요인에 대해 어느 때보다 기민하게 대응해 나가겠다.” -이복현 금감원장-
대출 규제를 풀어서 건설부동산을 살리기보다 현재 가장 큰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부상한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다. 금융당국은 DSR 규제를 완화할 경우, 가계대출 증가세를 자극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한다.
CR 리츠・책임준공 차등화...'계획' 수준
기업구조조정(CR) 리츠 활성화를 위한 대책도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 운영하는 CR 리츠의 상반기 중 출시 지원' 방안뿐이다. 추가 세제 지원 방안도 없다.
박 장관이 최근 “CR 리츠를 앞당겨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정부 발표 이후 10개월 동안 등록업체가 전무해 취득세 면제와 같은 확실한 당근 없이는 미분양 해소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평가다.
금융권의 책임준공 요구 관행에 대한 개선책 마련은 오는 3월로 미뤘다. 책임준공이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일으킬 때, 금융권이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한 시행사 대신 시공사에 과도한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을 말한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국토부 고시 '민간공사 표준도급계약서'와 유사하게 범위를 확대하고, 책임준공 도과 기간 등에 따라 채무인수 비율을 차등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24~25년 신규사업에 대한 개발부담금 감면 지원(수도권 50%, 비수도권 100% 감면, 개발이익환수법 개정), 정비사업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재건축촉진법 제정 등의 계획이 담겼다.
명지대 대학원 실물투자분석학과 한문도 교수는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제한 뒤, “LH가 대구 미분양 물량 중 일부를 매입한다고 대구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까? 수요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책임준공 완화나 CR 리츠 방안 역시 계획일 뿐이다. 금융과 재정 당국 역시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 정도 방안으로는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고 평가했다.
[스트레이트뉴스 김태현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