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정치불안·관세전쟁 고려…성장 하방 위험 막아야
일각 통화정책 무용론도…연말까지 한·미 금리 격차 확대 예상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 제공

오는 2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기준금리 결정에 나선다. 내수 침체로 성장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환율이 내려오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 살리기와 환율 방어 중 고심이 커지고 있다. 매파적인 기조를 보이며 금리 인하를 미루는 미 연준의 상황도 한은의 결정을 어렵게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안 상황 장기화와 미 트럼프 대통령발 관세전쟁을 고려, 금리 인하쪽에 베팅하는 분위기다.

23일 연합뉴스가 경제 전문가 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명이 이달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인하(연 3.00%→2.75%)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4분기 계엄 등의 여파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분기에 이어 두 분기 연속 0.1%에 머물고, 올해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과 함께 관세전쟁 충격이 더해져 금리 하향을 통한 통화 공급으로 민감소비와 투자 등 내수 진작에 무게를 두는 전망이다.

박석길 JP모건 본부장은 "성장 하방 압력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면서 한은이 금리 인하로 경기 리스크(위험)에 대응할 것"이라며 "물가의 상방 리스크보다 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훨씬 더 강하다"고 강조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도 "한은은 원화 약세와 국내 경기 부양 사이에서 적절한 절충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미국 달러 강세가 다소 주춤한 상황인 만큼, 금리 인하가 원화 약세를 자극하기보다 국내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하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외국인 자금 수급 관점에서도 환율이 높아져(원화 가치가 낮아져) 자금이 빠지는 영향보다는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자금 회수의 압력을 더 높일수도 있다는 시각으로 이해된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현재 원/달러 환율 수준은 미국과 금리 격차보다 정치 등 국내 악재가 더 크게 반영된 결과"라며 "앞으로 정치가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을 고려하면 2월 금리 인하가 환율 상승 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최대 정치 쟁점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 향방이 내달 중순께 윤곽이 나올 것에 대한 정치 안정 기대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 역시 "원/달러 환율이 추가 상승 압력을 받기보다 안정을 찾고 있다"며 "정치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환율은 추가로 더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준금리 인하가 부동산·가계대출에 다시 불을 붙일 가능성도 크지 않은 것으로 봤다.

그는 "현재 부동산 시장의 경우 유동성과 별개로 일부 지역은 오르고, 일부 지역은 미분양 등에 어려움을 겪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으로 부동산·가계부채에 대응하는 게 바람직한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난해 10월, 11월 기준금리가 인하됐지만 시중 은행의 대출금리는 떨어지지 않았다"며 "이처럼 통화정책의 전달 경로 측면에서도 기준금리 인하가 부동산·가계대출을 자극할 것이라는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지난 4분기 당국은 기준금리 인하에도 제1금융권을 중심으로 창구지도를 통한 가계대출 확대를 자제해 왔고, 그 결과 은행들의 예대마진만 확대됐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즉 금리 인하는 곧 대출 확대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을 수 있는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인하를 망성일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미국 연준의 인하 속도 조절, 한·미 금리 격차 확대에 따른 환율·물가 불안 가능성 등을 근거로 동결을 예상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 등을 근거로 연준은 금리 인하 필요성이 줄어든 것으로 판단한다"며 "한국 역시 환율 상승 효과로 물가가 조금씩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달러 환율도 1430원대에서 안정됐다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고환율을 고려하면 금리 인하가 부담스러운 국면으로, 만약 인하로 환율이 1500원을 넘으면 기업들이 쓰러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환율로 수입품의 물가가 올라 서민들의 삶이 더 어려울 수 있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인하 전망에 무게를 두면서도 "만약 미국이 계속 금리를 안 낮추면, 현재 한국과 미국 간 금리 차가 상당히 큰 상황에서 환율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아울러 "다른 나라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한다지만, 그 나라들은 현재 금리 수준이 미국보다 높거나 비슷하다"며 "하지만 현재 미국보다 낮은 한국의 기준금리가 더 내려가면 외환시장과 물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금리 등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의 효과 자체가 의문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이른바 통화정책 무용론이다.

강 교수는 "금리 인하의 경기 부양 효과는 일시적이고, 저금리 장기화의 부작용이 더 크다. 경기가 나쁘다고 구조적 문제 해결이 아닌 단기 처방으로 계속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예를 들어 금리 인하로 가계부채가 늘어나면 사람들이 빚을 갚느라 소비를 줄이고, 결국 중장기적으로 경기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장 선임연구위원도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어느 하나만으로 경기를 살리기 어렵고, 같이 해야 한다"며 "현재 트럼프 정부 정책 등 대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데, (국내에서) 금리만 내리고 돈을 푼다고 경기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2~3차례 내려 최종 기준금리가 2%대 초중반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미 연준은 올해 기준금리 동결 또는 1회 인하 전망이 주를 이뤄 한미간 기준금리 차이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환율 방어와 물가 관리에 부담이 생긴다는 뜻이다.

한편 최근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에 대한 국내외 기관들의 전망이 지속 낮아지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지난해 제시했던 1.9%가 너무 높아 1.6%대로 낮출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또 1.9%로 제시됐던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2%대로 상향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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