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의 믿음에 응답한 프로들…주주와 ‘밸류업’
기존 문법 깬 철저한 ‘성과주의 경영’ 결실 맺어

(왼쪽부터) 메리츠금융 조정호 회장.  김용범 부회장. 최희문 부회장. 메리츠금융 제공.
(왼쪽부터) 메리츠금융 조정호 회장.  김용범 부회장. 최희문 부회장. 메리츠금융 제공.

최근 메리츠금융이 연일 인구(人口)에 회자됩니다. 이달 초 조정호 회장의 주식 가치가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을 넘어서 1위가 됐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세간의 관심인 홈플러스에도 1조 2000억원 규모의 대출 채권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습니다. MG손보 인수전에 뛰어들어 주목을 받는가 하면 전문경영인 3인방이 스톡옵션으로 1200억원을 손에 넣는 잭팟을 터뜨려 새로운 신화를 썼습니다. 도대체 메리츠금융은 어떤 회사고, 이를 이끄는 조정호 회장은 누구일까요?

한때 우스개 소리로 메리츠(meritz)가 외국계 금융사가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메리츠는 일반에 많이 알려진 금융사가 아니었습니다. 메리츠화재가 ‘걱정인형’을 내세워 TV광고를 해서 조금 알려졌을 뿐, 리테일 비즈니스가 크지 않은 메리츠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드문 실정입니다.


◆ 한진가 막내 조정호 회장


한진가 막내인 1958년생 조정호 회장에게는 1949년생 조양호(대한항공), 1951년생 조남호(한진중공업), 1954년생 조수호(한진해운) 등 3명의 형들이 더 있습니다. 선친인 조중훈 회장이 일제시대와 미군정을 거치며 격동의 세월 속에서 하늘과 바다, 육지를 평정한 인물이었지만, 막내 조정호 회장에게 돌아간 것은 당시로선 그룹의 관심 밖이었던 한일증권(현 메리츠증권)과 동양화재(메리츠화재)였습니다.

동양화재는 우리나라 1호 손해보험사라는 타이틀이 있었지만 손가락에 드는 보험사는 아니었고, 한일증권 역시 대형증권사의 반열에 들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IMF 구제금융 시기를 지나 2005년 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며 독자생존의 길을 걸어야했습니다. 사람들이 메리츠와 한진을 잘 연결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 인재를 보는 눈…최희문과 김용범의 합류


오늘날의 메리츠가 본격 시동을 건 것은 2010년 지금 메리츠증권을 이끄는 최희문 부회장이 영입되면서부터라는 게 메리츠를 잘 아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전언입니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했다는 말로 회자되는 말입니다. 경제에 문외한이었던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인재에게 전권을 준 사례로 곧잘 인용됩니다.

조정호 회장은 자신이 몇 년간의 대한항공 직원 경험 뒤 한일증권에 입사, 한진투자증권과 동양화재 임원을 두루 거쳤으나 바닥에서 실무를 다져온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심장에서부터 기초를 닦은 최희문 부회장을 2010년 영입해 전권을 준 배경입니다.

최희문 부회장은 미국 명문 엠허스트에서 경제학사, 스탠퍼드에서 MBA를 마치고 골드만삭스를 포함 외국계 금융사에서 일한 경력을 가집니다. 이후 2002년 삼성증권에 스카우트돼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증권 캐피털마켓사업본부장을 역임합니다. 이 시기는 삼성이 차세대 먹거리로 금융을 지정, 삼성증권이 해외진출을 적극 펼친 시기입니다.

하지만 삼성증권의 해외진출은 짧은 시도 끝에 막을 내립니다. 때마침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도 삼성증권 글로벌 진출의 빠른 철수에 일조했습니다.

그런 삼성증권 최희문 전무를 눈여겨 봤던 조정호 회장이 2010년 그를 메리츠증권 대표 자리에 앉히며 스토리는 막을 올립니다.

조 회장으로부터 짧은 시간 내 인정받은 최 대표는 삼성증권 캐피탈마켓사업본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당시 김용범 본부장을 조 회장에게 소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용범 부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대한생명 증권부 투자분석팀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잠시 외국계를 거쳐 삼성화재 증권부 부장, 삼성투신운용 채권운용본부장, 삼성증권 채권사업부장 등을 거치며 채권 시장에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메리츠금융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최 부회장이 리스크관리와 구조화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면, 김 부회장은 채권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며, “오너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투톱체제를 이뤄 종금라이선스를 활용, 부동산PF 분야를 위시한 IB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했습니다.


◆ 주어진 기회에 실력을 발휘한 장수들


2011년 메리츠종금증권 CFO(전무)로 시작한 김 부회장은 이후 증권 대표이사, 금융지주 대표이사, 메리츠화재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최희문 부회장과 쌍두마차를 이뤄 그룹의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2025년 3월 21일 종가 기준 메리츠금융지주의 시총은 22조3905억원으로 삼성물산(21조2301억원)보다 많고 은행, 카드, 생명보험 등을 모두 가진 신한지주(24조647억원)에 두 계단 떨어져 있습니다. 메리츠금융 산하 주요 자회사가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메리츠캐피탈 정도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준입니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전국에 200여개의 점포가 있지만, 메리츠증권의 지점수는 서울에 6개, 부산과 대구에 각 1개씩 총 8개가 전부입니다. 메리츠캐피탈의 경우도 출장소와 사무소까지 다 합해도 영업점 수는 23개에 불과합니다.

이런 메리츠금융의 성장 과정에 부동산 프로젝트PF 비즈니스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비즈니스입니다. 최근 내수 침체에 따른 부동산PF 이슈가 불거진 상황이지만 외부의 우려와 달리 메리츠가 참여한 사업장에서 유독 문제가 불거진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한 증권사 IB본부장은 “대형사 어디나 부동산PF팀이 있지만 메리츠만큼 좋은 구조를 빨리 만들기는 쉽지 않다”며, “이는 각각 필요한 팀을 섭외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 구조를 메리츠가 짜고 리스크관리 위원회를 신속히 열어서 빠른 의사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메리츠 고위 관계자는 “사업 초기만 해도 부동산 준공 여부에 따른 리스크가 컸는데, 준공 이후 미분양 나는 물량은 회사가 떠안는다는 조건을 제시해 건설업계에 신뢰를 쌓은 것이 컸고, 우량 프로젝트를 걸러낼 수 있는 리스크관리 역량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후에 다올투자증권으로 간 김기연 사장이나 리스크관리를 맡은 길기모 전무 등 우수한 인재들을 적극 영입하고 이들에게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CEO들의 판단이 적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낸 ‘잭팟’


최근 공시된 메리츠금융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스톡옵션을 행사한 메리츠금융지주 김용범 부회장과 최희문 부회장이 각각 814억원, 278억원을 현금으로 받았습니다. 권태길 메리츠캐피탈 대표가 받은 110억원 까지 합치면 약 1200억원에 이르는 금액입니다.

메리츠금융 관계자는 “김부회장과 최부회장이 받은 스톡옵션은 이른바 롱텀 스톡옵션으로 회사에 5년 이상 장기 근무하며 성과를 입증했을 때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돼 있었다”며, “통상 주식으로 받으면 후에 매도시 물량출회에 따른 부담을 줄 수 있어 현금으로 받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증권사 대표는 “한 개인이 1000억원에 가까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인재를 등용하고 의사결정에 전권을 줄 수 있는 신뢰에 기반한다”며, “메리츠금융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배력이 떨어지는 것도 용인한 조정호 회장의 결단, 주주가치를 높이고 감액 배당 아이디어를 통해 세금이슈까지 덜어낸 치밀함 등이 업계에 회자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액 배당이란 자본준비금 중 일부를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한 자금을 배단 재원으로 쓰는 것으로 일반 배당이 15.4%의 세금이슈가 발생하고, 금액이 클 경우 종합과세까지 부담해야 하는 것을 피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메리츠금융은 밸류업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이 기법을 동원해 주주가치 제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믿지 못하면 쓰질 말고,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이병철 회장이 남긴 말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중국 역사서 송사(宋史)에 “疑人不用用人不疑”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전이 된 격언입니다.

인재를 보는 눈을 가진 오너, 주어진 기회를 활용해 최대의 성과를 낸 전문 경영인, 오늘날 메리츠금융이 이름을 세운 비결입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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