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이후 8년, 두 번째 대통령 탄핵
민주의 진전인가, 민도의 수시변침인가?
헌재 결정 승복은 대한민국 '미래 토대'
양극화 ‘실질적’ 정치선진화로 치유해야
상업성에 올라탄 가짜뉴스...제어장치는?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지만, 기습적인 12・3 비상계엄 사태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대한민국은 심판 선고가 미뤄지는 탄핵소추의 안갯속에서 ‘이념적 내전’으로 몸살을 앓았다.
국민은 ‘불법 탄핵 및 불법 구속 반대’ 집회와 ‘파면 촉구 범국민대회’ 등으로 갈라졌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정권 때도 경험했던 일이다. 10년도 지나지 않아 제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다시 또 내친 ‘유례없는 세계사의 현장’. 한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진전일까, 천박한 민도(民度, 국민의 생활・문화・의식 수준)의 수시변침일까, 그것도 아니면 저질 정치의 끝판왕을 향한 중단없는 노력일까?
두 번째 포스트 탄핵 정국,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살펴본다.
최종적·불가역적 결정 수용 의무
2017년 3월, 헌법재판소 결정 불복 과정에 탄핵 반대파 4명이 사망했다. 이번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흔드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됐고 극우 세력의 서울서부지법 침탈 및 헌법재판관을 향한 인신공격이 감행됐으며, 그 과정에 벌써 2명이 목숨을 버렸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수시로 ‘국회 해체 및 재선거’와 ‘헌법재판소 해체’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는 지난 1일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헌법재판소는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극렬 발언들을 쏟아냈다. 소기천 전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지난 달 12일 페이스북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암살계획의 성공을 빈다”고 쓰기도 했다. 지금도 광장에서는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과 과격 시위가 난무한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달 13일 민주당을 향해 “헌법재판소의 결론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당의 공식 입장은 헌법재판소 결과에 대한 승복”이라며 “국민의힘은 여야 당대표 기자회견이든 공동 메시지든 승복 메시지를 내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 이 대표 역시 채널A 유튜브 “정치 시그널 night”에 출연해 “탄핵 심판 결과에 당연히 승복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달 6일에는 ”어떤 폭력도 정의를 죽이지 못하고, 폭력은 일시적 결과를 가져올 뿐 영구적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의견이 있으면 설득하라. 마음을 움직여라”고 했던 마틴 루터 킹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원리이자 원칙"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사과는 윤석열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생각이나 이념은 다를 수 있지만,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헌재 선고는 돌이킬 수 없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헌재의 종국 결정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든 미래를 보장하는 토대다. 우리 모두는 그 결정을 수용할 의무를 지고 있다. 승복과 수용은 국민 통합의 출발점이다.
‘양극화 치유와 국민통합’은 반복되는 공염불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조기대선이 확정됐다. 차기 대선은 사유 확정일로부터 60일 이내인 6월3일 이전에 치러진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두 번째 과제는 민주주의의 적인 극단적 정치 양극화를 치유해 내는 통합의 리더십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치유와 통합이 가능하기는 할까? 실마리는 이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발언에 담겨 있다.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저는 이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야권, 진보 시민단체 등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과 자유 대한민국 국민은 소수의 목소리까지 담아내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통합의 길로 함께 나아갈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탄핵 직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국민통합을 전가의 보도처럼 외쳐댔지만, 점점 더 후진적 민주주의의 공염불이 되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천주교와 정교회, 개신교 모임인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공동의장 이용훈 주교・김종생 총무)는 지난 달 18일 공동성명서에서 “분열과 증오의 확전이 아니라, 더 나은 민주주의, 더 튼튼한 민주주의, 더 따뜻한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공동체적 화합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이제 차이를 존중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해 길고 추운 정치적 분열과 증오의 겨울을 끝내야 한다”고 했다.
불교계와 개신교계 모두 대통합, 화합, 상생 등을 주문한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민생을 최우선시 하는 대통령? 국민이 으뜸인 정부? 아름다운 슬로건은 차고 넘친다. 문제는 선언적 미사여구가 아니라 실천 가능한 대안이다. 그래서 관점은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국민통합의 유일한 수단, ‘정치 선진화’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의 충돌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한 표면적인 이유는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에게 192석 야권은 소통과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 공격과 대립의 상대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오히려 여소야대일 때 우리나라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의 협력이 가장 좋았다. 당정과 제1야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중재에 나서는 제3당이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2대 국회는 그렇지 않다.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의 보다 깊은 곳에 더불어민주당 단일 정당에 의한 여소야대 정국이 있어서다. 정가에서 제1야당 이재명 대표를 ‘여의도 대통령’이라 부르는 이유다.
단일 정당이 여소야대 정국을 쥐락펴락하는 정치판에서 불거지는 행정과 입법의 불협화음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은 없다. 성립되기 어려운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윤 전 대통령이 ‘부러지기’보다 ‘휘어짐’을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해결책이 있다면? “정치 선진화”
‘87년 체제’라 불리는 6공화국 헌법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충실할 뿐,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방향타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 사실로 굳어져 왔다. 이를 뜯어고치는 작업, 즉 제왕적 대통령제를 권력 분립형으로 바꿔내는 ‘권력 구조 개편’이 정치 선진화의 급선무다.
권력 구조 개편에는 ‘의원내각제로 갈 것인가’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갈 것인가’ 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그 하부에서 국회가 개헌특위를 구성해 ‘국회의 총리 선출’, ‘증원에 따른 비례대표제 강화’, ‘정당득표 비례 연동형제’ 등 다양한 방법들을 논의해 합의된 개헌안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스트레이트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3월 8~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01명을 대상으로 대통령 권한축소 개헌 필요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국 7개 권역 모두와 전체 연령층에서 '필요하다'는 응답이 58.0%로 '필요없다'는 응답(35.8%)보다 20%포인트 이상 높게 나왔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중대 폐해로 지목되면서 4년 중임제 51.3%, 현행 5년 단임제 23.3%, 내각제 9.5%, 이원집정부제 2.5% 등 국민 과반이 대통령제 '4년 중임제' 개편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짜뉴스의 산실 유튜브, 그냥 둘 건가?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는 동안, 국민이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여론조사 결과가 상당수 도출되면서 민심 왜곡 현상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비상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7~9일 윤 대통령 탄핵 또는 하야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 찬성 75.1%, 반대 23.3%로 집계됐다. 찬성 의견은 지역과 나이, 남녀를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보수 성지 대구・경북에서도 찬성 70.8%, 반대 27.0%로 전국 7개 권역 모두에서 찬성이 반대를 압도했다. 또한 ‘윤 대통령이 내란죄를 범했다는 주장’에 76.0%가 공감했고, 78.5%의 국민이 ‘윤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후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추이를 보면,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해 파면해야 한다’는 응답률은 1월 첫째 주 61.4%에서 2월 둘째 주와 넷째 주 53.3~53.5%로 최대 8.1%포인트 내려앉았다. 3월 둘째 주 조사에서는 54.8%로 나타났다.
반면 ‘기각해 대통령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응답률은 1월 첫째 주 35.8%에서 2월 둘째 주와 넷째 주 44.9~45.0%로 최대 9.2%포인트 상승했다. 3월 8~10일 조사에서는 43.3%로 나타났다.
특히 2월 넷째 주 조사 당시 민주당 이 대표와 국민의힘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국민의힘 후보 47.1%, 이 대표 44.1%로, 오차범위 이내이긴 하지만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정당에 우호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이처럼 기형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침묵의 나선 이론’이라는 오래된 매스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찾기도 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 의견을 인정하는 상황에 반대 의견을 가진 소수는 고립과 배척을 두려워해 침묵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그 침묵은 여론조사 미응대로 인한 모수 왜곡으로 이어졌다.
그 배경에 ‘가짜뉴스’와 유튜브가 있다. 상업성에 매료된 나머지 의도・왜곡된 가짜뉴스가 유튜브를 타고 공공연하게 전파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적・민주적 토대를 무너뜨리는 현실,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로 보고 용납해야 할까?
이제 ‘조기대선’이라는 국민의 시간이 열렸다. 자서전 ‘국민이 먼저입니다’를 출간하면서 대선 정국으로 걸어나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제외하고는 탄핵 기각・각하에 보폭을 맞추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등이 윤 전 대통령과 선을 그으며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야권에서는 민주당 이 대표가 독보적이다.
포스트 탄핵 정국, 새로운 대한민국 앞에 언제나처럼 ‘양극화 치유와 국민통합’,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의 조화’, ‘개헌을 포함한 정치 선진화’, ‘가짜뉴스 대응’ 등의 현안들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은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치 선진화 방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조기대선에 나올 잠룡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국민은 그들 중 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적임자가 있다고 생각할까?
[스트레이트뉴스 김태현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