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자금법, ESG경영과 충돌
해외 자회사, 세금도 고용도 현지 중심
해외 자회사 배당도 비과세…국내 경제 연결 약화
“윤리경영·산업공동화 등 다층적 문제 내포”
[스트레이트뉴스 이재영 기자] 현대차, 한화,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기부금을 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의 정치자금법을 우회해 현지 자회사를 통해 기부했지만, 관세 부과 등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현지 자회사 성장의 국내 환수 효과가 약화 되고, 국내 법인의 윤리 규정이 해외 자회사에 적용되지 않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훼손 우려도 커지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100만달러, 한화 약 14억여원), 한화(2개 계열사 합산 100만달러, 일부는 회수), 삼성전자(31만5000달러) 등은 미국 정치자금법을 우회해 해외 자회사에서 기부했다.
원칙적으로 미국 정치자금법상 외국인과 외국기업은 미국 선거에 기부할 수 없다.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정치자금 활동이 금지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는 선거조직이 아니라 정치자금법상 기부금 제한 대상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현대차, 한화, 삼성전자 등은 모두 미국 자회사가 기부해 외국기업 금지 규정을 피해 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부 효과는 현재로선 불확실하다. 현대차가 28조원 투자를 약속했음에도 10%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상호관세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자동차, 반도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시행했거나 예고한 상태다. 미국 자회사가 로비해서 사업이 확장되면 법인세는 현지에 낸다.
고용도 현지서 창출한다. 심지어 포스코와 현대제철도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고 해, 미국 자동차 법인 향 소재·부품 수출도 약해질 전망이다. 해외 자회사서 창출한 부를 국내 들여올 수단은 배당인데, 그마저도 정부가 비과세(익금불산입)해 줬다. 산업공동화에다 국내 법인의 해외 투자에 대한 경제적 연결 효과도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 기부는 ESG 워싱(과장·포장행위) 논란도 자초했다. 국내에선 정치자금법으로 정치적 기부 행위를 금지한다. 대기업 자체적으로도 ESG 경영을 표방하며 컴플라이언스 규정이나 윤리헌장에 따라 정치자금 관련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런 취지를 고려하면 해외 정치 기부라도 ESG 관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미국 정치자금법상 정치 기부에 대한 의사결정도 미국인이 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부도 모회사가 관여할 수 없다. 하지만 국내 법인은 정치자금 관련 행위를 윤리경영에 따라 내부통제 하도록 하고 있어, 자회사와 상충한다. 현대차의 경우 2015년 이사회 내 윤리위원회를 만들고 이후 투명경영위원회와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위원회는 지난해 자회사 기부와 관련해 심의한 적이 없다. 또 현대차가 2021년 제정한 반부패·뇌물정책은 정치적 목적의 기부 및 후원을 금지하고, 자선기부 및 후원에 대한 내부 집행기준 및 절차 등의 지침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부통제가 연결 자회사엔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적 중립 없이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관계를 노출하면 브랜드 이미지도 손상될 수 있다. 트럼프를 지지한 머스크 발 리스크로 테슬라 불매운동과 주가폭락이 일어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 자회사가 벌어들인 수익은 미국 법인세로 납부되고, 고용도 현지 중심”이라며 “단순한 정치적 기부 논란을 넘어 한국 대기업의 대외 전략, 윤리경영, ESG, 산업 구조 전환 등 다층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논란은 단지 정치자금 기부 이슈가 아니라, 대기업 윤리경영의 실효성, ESG 실천의 일관성, 글로벌 사업과 국내 경제의 연결 고리 약화 등 한국 경제 구조에 직결되는 문제”라며 “해외 자회사에 대한 내부통제 강화, ESG 경영의 연결회계 수준 확대,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글로벌 기준 정립 등이 시급히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미국은 1986년 레이건 감세정책 이후 해외 자회사 배당 비과세를 도입했고 그러면서 미국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갔다”라며 “그걸 되돌리려고 2017년 트럼프 1기 때 해외 자회사가 설비투자를 늘리면 그걸 배당으로 간주해 미국 모회사에 배당소득세를 부과하는 세법을 만들었다”라고 했다.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해외 자회사 배당 비과세 규정을 도입한 국가는 미국 외 영국, 독일, 일본 등으로, 유 교수는 그 부작용을 경고했다. 그는 “영국 기업들이 다 해외로 나가버리고, 독일 폭스바겐이나 벤츠는 중국에 공장을 짓고 돈을 많이 벌지만 독일 경기는 나빠졌다”라며 “우리도 기업은 미국 투자 늘리면 관세 장벽을 벗어나고 현지 투자로 세액공제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번 돈이 국내 배당으로 들어온다면 95% 비과세 받으니 일거양득인데, 우리 정부는 자본 해외 유출과 그로 인한 일자리 감소, 수출 감소, 경기 악화 등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세제 혜택을 받아 미국에 투자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