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한미반도체와 갈등…이달말 TC본더 발주 공시 예정
마이크론, 엔비디아 HBM3E 12단 납품 가능성↑…삼성전자 '아직'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연합뉴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연합뉴스

HBM(고대역폭메모리)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분주한 한국 반도체 업계에 최근 전운이 감돌고 있다. HBM 시장에서 1위를 달리던 SK하이닉스가 HBM 제조에 필요한 열압착장비인 TC본더를 놓고 공급업체인 한미반도체와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5세대 HBM(HBM3E)을 납품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으면서 국내 반도체업계 HBM 경쟁력을 둘러싼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29일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는 양사의 거래 관계가 '종결' 수순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SK하이닉스가 TC본더뿐 아니라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한미반도체 외 업체로 다변화하기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는 주장에 대해 양사 모두 반박한 것이다.

양사의 갈등이 격화되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이를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제기되는 상황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는 지난 2017년부터 8년간 TC본더 등 주요 반도체 장비 납품을 통한 동맹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최근 SK하이닉스가 본래 한미반도체가 단독으로 공급하던 HBM용 TC본더를 후발주자인 한화세미텍에서 추가로 공급받기로 결정하면서 갈등을 빚게 됐다.

8년간 가격을 동결했던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를 상대로 HBM TC본더 납품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한편 SK하이닉스 공장에서 납품 장비의 CS, A/S 등을 담당하던 엔지니어 인력들의 배치를 철수하는 등 강하게 대응하는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장비 공급망 다변화를 꾀하는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특정 업체를 배제하거나 어느 한 곳의 업체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HBM 수요 증가에 따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기업이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솔벤더(독점 공급업체)일 경우, 해당 업체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대응하기 어렵고 생산능력 저하 등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 CMP(화확기계적연마) 공정에 필요한 연마제인 CMP 슬러리를 동진쎄미켐으로부터 납품받기 시작했다. 원래는 솔브레인이 단독 업체였는데, 납품받는 곳을 확대한 것이다.

다만 SK하이닉스와의 계약에서 한화세미텍의 공급가액이 기존 한미반도체 것보다 높다는 점, 한화세미텍이 한미반도체와 법적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 등이 갈등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해 12월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을 TC본더 특허 침해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조만간 SK하이닉스가 TC본더 발주를 할 예정인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물량을 배분할 지가 사태의 향배를 가를 전망이다.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갈등에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사의 갈등으로 협업이 지속되지 못하면서 한국의 HBM 경쟁력이 하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HBM용 TC본더 기술력의 경우 그간 한미반도체가 독점할 정도로 기술 장벽이 높은 분야였고,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가 지난 8년간 밀접한 협업을 통해 수율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왔기 때문에 양사의 시너지가 향후에도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한미반도체가 경쟁사인 마이크론에도 TC본더를 납품하고 있는 중으로, 마이크론의 추격이 빨라지고 있어 SK하이닉스가 HBM 주도권을 잘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마이크론은 HBM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한 상태다. 최근 엔비디아로부터 HBM3E 12단 제품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고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블랙웰' 기반 'GB300'에 탑재할 제품 양산에 돌입했다.

마이크론이 최종적으로 엔비디아에 HBM3E를 납품하면 SK하이닉스에 이은 두 번째 업체가 된다. 마이크론은 "HBM3E 12단은 엔비디아의 GB300에 맞춰 설계됐고 이에 대한 고객 인증에서 좋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HBM3E 12단 공급망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 엔비디아의 요구에 맞춰 성능을 높인 HBM3E 개선 제품을 양산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는 상태로, 올해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제품 공급을 확대하고 하반기에는 HBM3E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다만 아직 품질 테스트 통과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2.5%로 압도적인 가운데 삼성전자가 42.4%, 마이크론이 5.1% 등이었다. 점유율 차이는 큰 편이지만 HBM의 경우 차세대 제품의 수익성이 더 높기 때문에 HBM3E 주도권을 잡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1b(10나노급 5세대) DDR5, 1a(10나노급 4세대) HBM3E 제품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삼성 메모리 경쟁력 및 실적 개선 여부는 HBM3E 12단 개선 제품의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통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가 HBM 제조 장비로 갈등을 겪고 있고, 삼성전자가 아직 HBM3E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마이크론 등 후순위 업체들의 반격이 거세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경우 공급망 다변화로 겪는 현 시기를 안정적으로 넘기는 것이 필요하다"며 "하반기에는 HBM3E 12단 제품이 시장에서 주력 제품이 될 예정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입지를 잘 굳히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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