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은 법원 유권해석에 달려”…디스커버리는 절차법
이재명 대통령 10대 공약에…박범계 의원 발의 법안 계류 중
차규근 의원은 징벌배상제도 상법 개정안 발의
박상인 교수 “동시에 시행해야 효과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이재영 기자] 새 정부의 상법 개정(이사충실의무 주주이익보호) 움직임과 더불어 디스커버리(증거개시제도)와 징벌배상 입법 가능성이 주목된다. 두 법안은 이미 국회 발의돼 계류 중이다. 디스커버리는 법조계에서도 요구하고 있어, 증시 밸류업 정책과 맞물려 입법 가능성이 높아졌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상법 개정 이슈가 코스피 지수를 달구며 증시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잦은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 때문에 재계는 상법 개정에 반대한다. 그런 재계에서도 실제 개정됐을 때 법정에서의 실효성은 회의적으로 본다. 재계 관계자는 “법원의 유권해석에 따라 재판 결과는 기대한 것과 다를 수 있다”며 “반드시 원고에만 유리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비해 디스커버리는 유권해석이 덜 필요한 절차법으로, 여러 손해배상 사건에 적극 활용될 수 있다. 디스커버리는 소송 당사자가 재판 전에 상대방이나 제3자로부터 소송과 관련된 증거와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절차이다. 주로 미국을 비롯한 영미법계 국가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10대 공약에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등 기술탈취 행위 강력 근절’ 방안을 담았다. 디스커버리는 주로 민사소송에 활용돼 민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일부 요소를 도입할 수도 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은 최근 한국형 디스커버리 목적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상 문서제출명령 제도를 강화해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불응 시 제재를 규정하는 내용이다.
법조계에서는 디스커버리가 도입되면 소송 당사자 간 정보 불균형 해소, 재판의 예측 가능성 확보 등의 효과가 있다고 보며, 변호사 업계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피해 구제 취지에서 디스커버리는 징벌배상제도와 연결된다. 마침 징벌배상제도도 입법 추진 중이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최근 징벌배상제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상인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의 최대 5배 범위 안에서 배상할 책임을 지도록 한다.
이들 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해온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징벌배상과 디스커버리 제도는 동시에 시행돼야 효과가 있게 된다”며 “기술 탈취가 만연함에도 피해 기업은 삼키고 넘어간다.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드물고 승소해도 얼마 배상을 못받아 이겼지만 사실상 졌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 당시 법무부에 징벌배상과 디스커버리 제도를 입법하라고 자문했었다. 임기 말 법무부는 실제 법안을 제출했지만 입법에 실패했다.
디스커버리는 기술 탈취 및 영업비밀 침해 소송, 불공정 거래, 주주대표소송, 소비자 집단 소송 등에 폭넓게 활용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최근에도 기술 탈취와 불공정 하도급 거래가 만연한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이날부터 10만개 기업을 상대로 서면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최근 적발 사례를 보면, 두원공조는 차량용 냉난방 장치 제조에 필요한 금형 제작을 수급사업자에게 위탁하면서 금형도면을 수령해 중국 법인에 3건, 인도법인에 2건 제공했다. 이에 대한 처분은 시정명령과 과징금이다.
공정위는 또 효성과 효성중공업에 대해 수급자에 대한 부품 제조 위탁 과정에서 기술자료를 요구·사용한 것과 관련해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해 조사했는데, 효성 측의 동의의결 절차 요청을 받아들였다.
동의의결제도는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사업자가 스스로 피해구제, 거래질서 개선 등 시정방안을 제시하고 공정위가 이해관계인 의견수렴을 거쳐 법 위반 여부 판단을 유보하고 시정방안 집행에 맞춰 사건 종결하는 제도다.
스텔란티스코리아는 대리점에 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손익자료 제출을 요구했다가 대리점법 위반 행위로 적발됐다. 처분은 시정명령만 부과됐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도 대리점 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판매금액 정보를 요구한 행위가 대리점법 위반행위로 시정명령 대상이 됐다. 이런 판매 마진 정보가 본사에 노출되면 공급가격 협상 시 대리점이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들 사례는 가해기업 제재에서 그치지만, 디스커버리가 도입되면 피해 구제로 이어질 수 있다. 대리점이 디스커버리를 활용한다면 부당한 요구로 인해 실질적 손해를 입은 부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대리점은 소송 과정에서 손익 자료 요구 행위에 따른 본사의 부당 이득과 불리한 거래 협상을 입증해야 한다. 디스커버리를 통해 본사의 내부 문건(회의록, 손익자료 요구 목적과 관련된 본사 지침, 대리점에 불이익을 주었다는 증거 등)을 광범위하게 요구하고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여전히 피해 보상 문제가 진행 중인 가습기 살균제 사태나 최근의 SK텔레콤 유심정보유출 사건에서는 피해자 집단 소송에서 디스커버리와 징벌손해배상제도가 활용될 수 있다. 제도 도입 법안들의 취지는 이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사후 조치 목적도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