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성남시장 시절 ‘주빌리은행’ 가동
은행권 “상생금융, 지속가능해야”

이재명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에 업권별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 은행권은 ‘상생금융’을 전면에 내세운 반면, 보험업계는 반려동물 보험 활성화에 방점을 찍었다. 카드사는 다자녀 가구 지원, 증권업계는 코스피 5000 달성, 디지털 자산 업계는 기본법 제정이 주요 키워드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신정부 금융권 과제」시리즈를 통해 각 업권의 특성과 민심을 반영한 정부의 맞춤형 금융정책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제공.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제공.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금융권 정책의 지형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도입했던 채무자 구제 모델 ‘주빌리은행’을 모티브로, 전국민 대상의 배드뱅크 설립을 공약한 바 있다.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대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취지지만, 은행권에선 자산 건전성과 수익성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 신정부 상생금융 본격화..채무조정 논의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하고,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함께 소상공인 채무조정 및 탕감 방안을 논의했다. 대통령은 선거 당시 “코로나 정책자금 대출에 대한 채무조정부터 탕감까지 종합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으며, 이번 논의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이 대통령 취임 이틀째인 5일,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채무자 보호에 관한 감독규정’ 개정 예고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지금까지 금융회사가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했던 개인금융채권 매입을, 비영리법인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금융위가 지정한 기관 외에는 부실채권 매입 권한이 제한돼 있다.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금융당국은 이 같은 제도 개편을 통해 채무조정 확대 및 금융취약층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존의 개인워크아웃, 자율조정 제도를 보완하면서, 배드뱅크 모델을 병행 추진하는 구조다. 국회도 이에 호응해 ‘개인채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며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정부는 이 구조를 활용해 금융권의 직접 손실 부담은 줄이면서도, 부실채권을 정책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배드뱅크'는 회수가 어려운 부실자산을 금융회사에서 분리·이관해 처리하는 특수목적기관이다. 국내에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설립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번 정부 구상은 이를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정책금융 차원에서 확대 적용하겠다는 시도다.

이재명 대통령은 앞서 성남시장 재직 당시, 민간기부금을 활용한 ‘주빌리은행(현 롤링주빌리)’을 설립해 직접 초대 은행장을 맡았다. 주빌리은행이라는 이름은 2012년 미국에서 시작된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 프로젝트'에서 따왔다. 

당시 성남시 주빌리은행은 채무자에게 원금의 7%만 상환하도록 하고 저신용자를 정상적인 경제활동인구로 유입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기업을 살리기 위해 170조 가까운 국가예산을 공적자금으로 썼지만 서민을 살리기 위해선 얼마나 투입했나”며 “주빌리은행이 민간모금으로 빚탕감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정책과 예산으로 서민 빚을 탕감해주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은행권 수익 늘었지만 건전성은 악화..체력 ‘시험대’


문제는 현재 은행권의 체력이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금융지주회사 경영실적 잠정치(연결 기준)’에 따르면 작년 말 금융지주회사 10곳(KB·신한·하나·우리·NH·iM·BNK·JB·한투·메리츠)의 연결당기순이익은 23조8478억원으로, 전년(21조 5246억원) 대비 2조3232억원(10.8%)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금융지주의 전체 대출 중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90%로 전년 말(0.72%) 대비 0.18%포인트 상승했다.

경기둔화와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국내 금융지주의 대출자산 등 자산성장세는 둔화된 반면, 고정이하여신비율 증가와 충당금적립비율 감소에 따라 리스크 확대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특히 2020년 4월부터 시행된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조치 중 약 47조 원 규모가 오는 9월 말까지 순차적으로 만기를 맞이할 예정이어서, 금융당국과 은행권 모두 리스크 관리에 고심 중이다.

서울 경리단길에 놓인 주요은행 ATM기. 장석진 기자.
서울 경리단길에 놓인 주요은행 ATM기. 장석진 기자.

이미 정부는 ‘상생금융 시즌1~2’를 통해 이자 감면, 채무조정 등 정책을 추진했고, 시중은행들은 2조 원이 넘는 이익을 사회에 환원했다. 유동성 관리와 자산 건전성 유지, 배당 및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전략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또 한 번의 고강도 공공기여는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생금융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민간 금융기관이 수익성과 지속가능성 없이 일방적 손실을 감당하는 구조는 어렵다”며 “배드뱅크가 일회성 구제가 아니라면, 중장기적으로 시스템 리스크와 연계해 정교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 역시 “정권별 단기 대책이 아니라, 구조적 과제로서 상생금융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정책금융과 민간금융의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고, 민간이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제도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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