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호재에도 메모리에 쏠린 한국 반도체 산업 한계 노출
삼성전자 파운드리 적자 보며 한국 비메모리 산업도 위기에
이재명 정부 당면 과제, 파운드리 분사설·용인 클러스터 인프라

SK하이닉스 HBM. 사진=뉴스1
SK하이닉스 HBM. 사진=뉴스1

삼성전자 파운드리 적자 해결 여부가 한국의 반도체 산업 위기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가 고대역폭메모리(HBM), 비메모리가 파운드리 중심인데 양 사이 틈이 크다. HBM에서 SK하이닉스가 승승장구하지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조단위 적자 탓에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위태롭다. 삼성의 위기는 한국이 비메모리 산업에서 밀려나 메모리에 국한될 위기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에만 머문다면 중국의 혹독한 추격을 감수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기술 혁신을 통해 파운드리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거나, 파운드리를 분사해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해법도 제시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시급하게 반도체 산업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삼성전자가 국내 파운드리를 짓기로 한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의 RE100(신재생에너지100%) 등 인프라 문제가 지목된다.


◇마이크론 세컨소싱 늘리는 엔비디아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적자 누적의 이유로 사업을 포기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도 도태될 우려가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TSMC로 연결된 AI 반도체 생태계서 성장 중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이 생태계 구조에서 엔비디아가 영역을 넓히고 SK하이닉스 비중이 작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엔비디아향 세컨소싱 비중을 키우고 있고 미국 우선주의 트럼프 행정부도 마이크론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HBM 개발 단계가 진화할수록 엔비디아의 자체 설계 영역이 커질 것도 이미 예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마이크론에 대해 “HBM4의 경우 SK하이닉스와 유사한 일정으로 고객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며 “특히 베이스 다이(HBM D램 칩 적층 가장 아래 존재하는 핵심부품)를 자사 D램 공정을 통해 생산함으로써 원가 측면 일부 경쟁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비디아 생태계에 맞선 삼성전자는 자체 설계부터 파운드리, HBM까지 독자 수직계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IC(집적회로) 설계 1위 엔비디아향 HBM 납품이 지연되고, 파운드리 적자가 누적되면서 위기에 빠졌지만, 반전에 성공한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이 주도권을 잡을 기회가 생긴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자축하던 모습. 사진=뉴스1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자축하던 모습. 사진=뉴스1

◇엔비디아 대항마서 삼성 세컨소싱 기회


다행히 최근 반전의 기미가 포착됐다. 엔비디아에 대항하는 브로드컴과 AMD가 삼성전자 HBM3E를 채택했다. 파운드리 위탁을 맡긴 것은 아니지만 HBM 시장 확장만으로도 삼성전자 파운드리엔 기회가 생긴다. 자체 파운드리서 만든 HBM의 납품처가 늘어나면 파운드리 적자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

시장에선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 파운드리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이란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HBM 납품 호재 외에도 파운드리 3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및 2나노 공정의 수율 개선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또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는 거시경제 요소가 SK하이닉스 외 삼성전자까지 품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여전히 TSMC와 경쟁이 심하고 자체 물량 외 고객사 확보가 어려운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고객사 문제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인적분할하게 된 보안 이슈와 일치한다. 그래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분사가 필요하다는 관측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보안 이슈만 없다면 엔비디아 경쟁사인 고객사들에게서 세컨소싱의 기회가 커질 것이란 예상에서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적자를 감수하며 수직계열 전략을 고수하는 사이 중국이 무섭게 따라왔다. 중국은 HBM 개발에도 나섰고, 중국 파운드리 SMIC는 삼성전자와 시장점유율을 불과 1%대 차이로 좁혔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삼성전자 파운드리 점유율은 7.7%로 전분기 8.1%에서 감소했다. SMIC는 같은기간 5.5%에서 6%로 성장했다. 거기에 TSMC도 67.1%에서 67.6%로 압도적 격차를 유지했다.

물론 삼성전자와 SMIC는 점유율 이상의 기술격차가 아직 존재한다. 삼성전자는 2나노 양산을 올해 목표로 잡고 있으며 2027년에는 1.4나노 도입 계획도 발표했다. SMIC는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최첨단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 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DUV(심자외선) 장비를 활용해 7나노 공정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화웨이의 일부 칩에 적용되며 상당한 기술 발전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생산 효율과 비용 측면의 한계가 있다. SMIC의 주력은 여전히 28나노 이상의 성숙 공정이다. 그럼에도 자국 시장 수요와 정부 지원 아래 SMIC가 성장할 가능성은 한국에 위협적이다. 삼성전자가 중국 내 파운드리 수요를 SMIC에 차츰 뺏길 것이 예측 가능하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에 대해 “내년을 대비한 사업경쟁력 회복이 절실하다”며 “파운드리의 경우 2나노 GAA 대형 고객을 확보해야만 향후 미국 공장 가동도 가능하고 실적을 개선시킬 수 있으며, 엔비디아 HBM3E 12단 공급망 진입 여부도 관건”이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TSMC 조력을 받으면 수월하겠지만 공조는 어려워 보인다. 올초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2500의 생산을 TSMC에 위탁 제안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삼성 타도를 외쳤던 대만 업체들의 견제가 엔비디아 생태계를 계기로 더욱 노골화된 모양새다.

2025년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 출처=트렌드포스
2025년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 출처=트렌드포스

◇“파운드리 분사하면 세컨소싱 기회 커질 것”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생존에 실패한다면 메모리만 남은 한국 반도체 산업도 위기에 빠진다. 메모리 범용제품 시장은 이미 중국 자급화가 두드러졌다.

김웅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 확대로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국내기업의 매출 기반 축소가 예상된다”며 “중국 메모리사들은 공격적인 캐파 확장 및 저가격 정책에 기반한 신제품 유통을 통해 자국 내수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상황으로, 중국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제조하는 범용 제품의 판매 기회는 점차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쪽에선 정부가 펀드를 조성해 적자를 보는 삼성 파운드리를 인수하면 세컨소싱 기회가 커져 국가적 기회가 생길 것이란 대안이 주목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파운드리 분사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박 교수는 “내년까지 파운드리 적자가 누적된다면 삼성이 버티기 힘들 것”이라며 “대만의 TSMC가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민간 펀드를 조성해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인수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한국에 팹리스가 많은 AI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고 했다.

새 정부의 당면 과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파운드리 투자다. 삼성전자가 투자를 약속했지만 취약한 전력망과 RE100이 보장되지 않는 인프라 환경 때문에 약속이 실현될지 불투명하다.

업계 관계자는 “TSMC는 여전히 핵심적이고 최첨단인 파운드리 시설을 대부분 대만에 짓고 운영하고 있다”며 “기술안보와 인적자원 때문인데,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국내 수도권에 짓고자 하는 이유도 동일하지만 인프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이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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