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공장가동 중단 등 비용절감 잇따라…美 고관세 해결 가장 시급
석유화학업계 구조조정 본격화…업계 요구 담은 특별법 제정 추진 속도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 전경. 현대제철 제공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 전경. 현대제철 제공

미국발 관세 타격과 중국발 공급과잉, 글로벌 수요 부진으로 국내 산업의 기반인 철강과 석유화학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주요 철강기업들은 중국발 저가 철강 공세에 반덤핑 제소를 하는 등 방어에 나서는 한편 미국의 고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내 투자에 속도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공장 일부 가동 중단과 인력 조정 등으로 운영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대미 철강 관세가 50%에 달하는데다 미국 내 투자를 통한 생산라인 건설에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현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협상이 필수인 상황이다.

석유화학은 증국발 저가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수요 부진까지 맞물리면서 '공급과잉'이 심각한 상황으로, 최근 주요 석유화학단지를 중심으로 설비 통합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석유화학업계 수익성 확보를 위한 사업 조정이 진행될 전망이다.


◇문 닫는 공장 늘었다… 미국 무역장벽에 국내 긴축 운영 들어간 철강업계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트럼프 정부가 미국 철강 산업의 상징인 US스틸을 일본제철이 인수하도록 허락했다. 이에 일본제철은 US스틸을 149억달러(약 20조2759억원)에 사들였으며 지난 18일 최종 인수 절차까지 마무리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로 국내 철강업계에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일본이 US스틸을 인수하면서 한 발 앞선 미국 내 진출을 이뤘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 철강 기업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대대적인 대미 투자를 진행해 미국 루이지애나 제철소 프로젝트 같은 현지화 계획을 밝혔지만, 생산라인 건설 완료까지 시간이 걸리는 반면 일본제철은 단숨에 미국 진출을 성공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일본제철이 고관세로 막힌 미국 시장을 직접 투자 방식으로 뚫으려는 전략으로 풀이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해 수출 장벽을 피하고 미국 정부의 프렌드쇼어링(우방국 간 공급망 구축) 정책에 부합하려는 방침이다.

실제로 US스틸은 미국 내에서 전국적인 물류망과 고객 기반을 갖추고 있어 신규 시장 진입보다 훨씬 낮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미국 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상태다. US스틸이 보유하고 있는 미네소타 철광석 광산까지 고려하면 원자재 공급 리스크도 줄이고 원가를 절감해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수직계열화도 가능하다.

일본제철의 미국 현지 생산이 시작되면 한국 철강의 경쟁력은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에 미국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인데, 국내 생산물량은 미국으로 수출시 50%나 되는 고관세가 붙기 때문이다.

주요 수출국이었던 미국에서 무역 장벽이 높아진 가운데 중국의 '밀어내기식' 저가 공세가 공급 과잉을 심화시키고 있고 전방 산업인 건설경기 부진도 장기화하는 추세로 '삼중고'에 접어든 상태다.

이에 국내 철강기업들은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비용 절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업계 1위인 포스코는 이미 지난해 1제강공장과 1선재공장을 잇따라 폐쇄한 상태며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지난 4월 조강(쇳물) 생산량은 88만8000톤으로, 고로가 정상 가동됐던 2023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2위인 현대제철은 포항2공장을 '무기한 휴업'에 돌입한 가운데 최근 장비용 무한궤도를 생산하는 중기사업부도 내년을 목표로 매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3위인 동국제강 역시 연 매출의 40%를 담당하는 핵심 거점인 인천공장을 다음 달부터 한 달간 가동 중단할 계획이다. 이곳은 단일 기준 국내 최대 규모의 철근 생산 거점으로, 지난 1972년 공장 가동을 시작한 지 53년 만의 첫 가동 중단이다.


◇공급과잉·수요부진에 몸살…설비 통합 등 구조조정 들어간 석유화학업계


중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과 공급 과잉의 직격탄을 맞은 국내 석유화학업계도 지난해부터 적자를 이어오며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과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HD현대케미칼, 롯데케미칼 등은 지난 1분기에 500억~1200억원 수준의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수요 부진까지 겹치면서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NCC(나프타분해시설) 통합을 목표로 구조조정 협의에 들어갔다. 범용 설비를 줄여 경영 효율화를 꾀한다는 목표다.

HD현대 자회사인 HD현대오일뱅크가 지분 60%를, 롯데케미칼이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는 NCC 합작사 HD현대케미칼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HD현대케미칼이 연간 85만톤 규모 에틸렌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는데, 롯데케미칼도 같은 대산 단지에서 연 110만톤 규모 에틸렌을 생산하고 있어서다.

따라서 롯데케미칼이 보유한 설비를 HD현대케미칼에 넘기고 HD현대가 추가로 출자해 하나의 법인으로 설비를 통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시작으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있다.

앞서 삼일PwC경영연구원은 "특정 석유화학단지에 중복으로 진출한 업체들의 공장을 유사 제품군별로 전략적 설비교환 또는 인수합병(M&A)하는 설비 통폐합이 필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유휴설비 비중을 낮추고, 국내 업체 간의 소모적 경쟁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한 바 있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제공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제공

◇국가 핵심사업 철강·석유화학, 정부 주도적 해결 필요한 시점


기업들이 비용 절감, 판로 모색 등 생존을 위한 전략 마련에 분주한 한편 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당장 해결이 시급한 철강 관세를 완화하는 한편 석유화학 업계의 친환경 스페셜티(고부가제품) 전환 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ABCDEF' 성장 전략을 통해 철강과 석유화학, 정유를 제조업 재도약의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특히 포항·광양·여수·서산·당진·울산 등 주요 산업 거점을 '산업위기 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하고 정부 주도의 구조 전환과 R&D(연구개발) 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대표적으로 여수산단의 친환경 스페셜티 전환, 여수석유화학특별법 제정, 포항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등이 주된 지역 밀착형 공약이다.

다만 수소환원제철 지원 등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철강업계에서는 당장에 미국 관세 해결을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고 있다. 이와 함께 '철강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을 비롯해 '전기료 인하', '국산 철강 사용 확대 지원' 등을 요구하는 중이다.

이에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철강 산업 고도화 방안 마련을 앞두고 주요 철강 제품별 적정 생산량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에 나섰다.

석유화학 산업을 살리기 위한 대책 마련은 철강보다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여수갑)이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석유화학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석유화학사를 직접 지원하는 특별법이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석유화학특별법에는 ▲기업간 생산량 논의 시 공정거래법 적용 배제 ▲사업재편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 ▲R&D 및 시설투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전기요금 감면 등의 조항이 담겼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의 근간인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이 흔들리면 한국의 제조업 강국 입지가 무너질 수 있다는 국가적 차원의 위기의식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새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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