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상장사, 대주주 회사와 합병비율 논란 확산
순자산가치 하한선 정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
상장사협의회 “합병비용 상승, 사업 재편에 장애” 반대
최근 자사주 활용 교환사채 발행이 잦아, 상법 개정 전 막차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회사 간 합병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상장사 주가가 저조한 틈에 대주주에 유리한 합병 시도가 이뤄지자, 국회가 관련 제도를 고치고 나섰다.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4일 정치권과 재계 등에 따르면 국회에 상장사 합병가액 산정 시 주가가 저조할 경우 순자산가치로 평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해당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강일 민주당 의원은 “현행법상 주권상장법인이 합병 등을 할 경우 산정가액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자산가치나 수익가치보다 낮은 주식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일반주주의 권익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액주주의 경우 합병 과정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며, 주가조작이나 저가 합병을 통한 지배주주의 이익 편취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며 “따라서 합병 등에서 산정되는 가액에 대해 공정가액 산정 원칙을 법에 명문화하고, 순자산가치를 하한선으로 설정함으로써 투자자 보호 및 자본시장 신뢰 회복을 도모하려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상장사가 비상장사와 합병할 때는 상장사 주가가 저렴할 경우 순자산가치로 합병가액을 선택할 수 있다. 반면, 상장사 간 합병 때는 기준주가로만 정한다. 이에 밸류업 저평가(주가순자산비율, PBR 1 미만) 주식이 많은 한국 증시에선 소액주주가 불리해지는 사례가 잦았다.
본래 주가 부진한 상장사와 대주주 지분이 많은 비상장사 간 합병에서 논란이 더 많았다. 순자산가치 평가는 의무가 아니라서 대주주에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증시 부진이 극심할 때 다양한 합병 시도가 이뤄져 주주와 마찰이 심했다.
지난해 합병 발표 당시 PBR 0.36배 수준 역사적 저점에 있던 SK이노베이션과 비상장 SK E&S 간 합병이 논쟁을 겪었다. 고평가 됐던 두산로보틱스와 상장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분할해 비상장 평가하려 했던 두산밥캣 합병도 논란 끝에 무산됐다.
최근 합병을 결의한 HD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의 경우 순자산가치로 평가한다면, PBR이 0.83배인 HD현대건설기계 주주가 지금의 기준시가(가중산술평균종가) 평가보다 유리하다.
더욱이 HD현대건설기계는 자사주가 3.52%나 있어 주당 순자산가치가 불어난다. 순자산가치는 공정가치 평가 등을 거친 조정 자본을 의결권 없는 자사주 제외 발행주식 총수로 나눠 구한다. HD현대인프라는 PBR이 1.22배라 법률이 개정되더라도 기준시가로 정해진다.
비상장 계열사와 합병 결의한 코오롱글로벌의 경우 기준시가가 저조한 가운데 주주를 배려해 자산가치로 합병가액을 정했다. 다만, 이웅열 명예회장 지분 50%가 있는 비상장사(엠오디)와 합병함으로써, 가치평가에 회사 주관이 섞이는 부분(미래추정이익 반영)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재계는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이사충실의무 주주이익 보호)과 더불어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부담이다. 집권 여당이 발의한 만큼 입법 확률도 높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기업의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를 하회한다는 것은 해당 기업의 수익성 등 미래가치가 불투명하다는 의미”라며 “계열사간 합병 시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특정 계열사의 가치를 고의적으로 낮추는 행위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합병가액의 하한선을 결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더 높은 회사의 주주 이익을 훼손한다”며 “이러한 합병비용의 상승, 주주이익 훼손은 합병거래 자체를 감소시킬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밸류업 정책은 한국 증시가 글로벌 증시에 비해 PBR이 평균적으로 낮아, 본질가치보다 저평가돼 있다는 사회적 인식에서 출발했다.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를 밑도는 데는 미래가치 등 본질가치 외 다른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시장에선 이런 저평가 요인의 불신 때문에 최소 청산가치(PBR 1) 수준의 합병가액 하한선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스트레이트뉴스 이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