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위, 유족 반발에 참사 중간 발표 돌연 취소…조사 과정 신뢰성 하락
유족 및 조종사노조 등 "투명한 조사, 구체적인 근거 제시 필요" 한목소리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무안공항 사고에 대한 중간 조사 발표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무안공항 사고에 대한 중간 조사 발표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제주항공기 무한공항 참사 원인에 대해 '조종사 책임론'을 제기했다가 공식발표를 취소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유족 등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사건 원인 조사 과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23일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사고에 대한 중간 조사 발표를 취소한데 따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조위는 지난 19일 유족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명회에서 "사고 당시 조종사가 손상된 오른쪽 엔진이 아닌 정상 상태였던 왼쪽 엔진을 정지시켰다"는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종사가 손상되지 않은 엔진을 정지시켜 주전력이 차단된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유족들은 해당 결과가 "조종사 개인의 과실에 집중돼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에 사조위는 유족 설명회 이후 진행하려고 했던 언론 브리핑 및 보도자료 배부 등을 모두 취소했다. 무기한 연기된 셈이다.

해당 조사에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와 프랑스 항공사고조사위원회(BEA)가 참여하는 국제 공조까지 이뤄지고 있어 사조위가 단독으로 결론을 내는 것은 불가능함에도 유족의 반발이 있자 바로 발표를 취소한 것을 놓고 조사 자체에 대한 신뢰성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족 측은 "사고 원인이 단순한 조종사 실수로 좁혀지는 것에 반대한다"며 "사고 발생 환경 전반에 대한 객관적이고 투명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어떠한 결과가 있다면 그 원인도 같이 규명해 알려주길 요청했는데 일방적인 사고 조사 결과에 대한 통보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사조위는 해당 중간 조사 결과를 뒷받침할 수 있는 FDR(비행기록장치). CVR(음성기록장치) 등에 기록된 근거자료를 전혀 밝히지 않은 상태다.

조사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사조위의 발표가 성급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NYT는 미국 항공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하며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고 지적했다.

미국 보잉과 미연방항공청(FAA)에 근무했던 항공 안전 전문가 조 제이콥슨은 "조류 충돌 후 조종석 디스플레이 정보가 사라졌다면 조종사들이 어느 엔진이 손상됐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며 "결론을 내리기 앞서 조종석의 상세한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위원이었던 존 고글리아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조종사들이 고장난 엔진을 식별할 수 있지만 시스템이 고장 나거나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며 "계기들이 꺼지면 조종사들이 의존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고 원인을 '조종사 책임론'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면 안된다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제주항공 노조를 비롯한 조종사 단체들도 반발에 나섰다.

제주항공조종사노조는 "항공기 사고는 단일 원인이 아닌 다양한 기여요인이 복합 작용해 발생하나 사조위는 '조종사가 조류 충돌로 손상된 오른쪽 엔진을 꺼야했는데 왼쪽 엔진을 꺼서 블랙박스와 전원이 모두 나갔다'고 말했다"며 "사고의 원인을 조종사의 단순한 오판으로 단정지으려고 했고 이는 심각한 조사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근거자료를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라"며 "사조위의 주장이 정당하려면 조종사가 2번 엔진을 차단하고 1번 엔진만으로 비행을 지속했을 경우 정상적으로 착륙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과학적, 기술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국내 조종사 노동조합의 연합단체인 대한민국조종사노동조합연맹도 사조위의 성급한 결과 발표를 비판하며 "사조위는 조종사가 비상 처치를 수행한 당시의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조종사가 엔진을 정지했다'라는 사실만 부각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사조위의 조사 발표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참사 발생 이후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던 무안공항 내 로컬라이저 둔덕과 관련한 내용은 일절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사조위가 국토교통부 산하인 탓에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제주항공조종사노조는 "사고를 참사로 이어지게 만든 핵심 요인인 활주로 인근 로컬라이저 둔덕 문제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국민강항공조종사협회 역시 "국토부 산하 사조위가 조종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선다"며 "불투명한 조사 진행과 책임전가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FDR과 CVR을 포함한 전체 사고 조사 관련자료를 공개해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를 시행하라"고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국토부를 향해서는 "사고의 근본 원인인 조류 충돌 및 로컬라이저 둔덕 설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항공안전법을 개정해 조류 관리·감시 체계, 공항 시설물 관리규정을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본래 국토교통부 예규 항공 장애물 관리 세부 지침 제25조에 따르면 로컬라이저 안테나 등 지원 시설은 부러지기 쉬운 장착대에 장착해야 한다. 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기준에 따라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에서 300m 이내에 설치하면 안된다.

그러나 무안공항의 경우 활주로에서 로컬라이저까지 251m에 불과했다. 당시 약 80t인 제주항공 항공기가 시속 200km 안팎으로 두께가 4m인 로컬라이저 구조물과 정면충돌했고 이에 따른 기체에 가해진 충격은 수천t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조위는 로컬라이저 둔덕 구조물에 대한 용역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결과는 이르면 8월 말쯤 나올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사고의 최종 조사 보고서는 이르면 내년 6월에 발표될 전망이다.

한편 유족 측을 비롯해 제주항공조종사노조, 국내 조종사 연맹 등은 사조위의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한 규탄 성명을 낼 예정이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