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DL, 여천NCC에 3000억원 자금 투입…채무불이행 막아
갈등 쟁점 '공급가격 결정 요인'…여천NCC 회복 놓고 서로 불신
석유화학 업황 악화로 부도 위기에 처한 여천NCC가 공동 대주주인 DL그룹과 한화그룹 자금을 지원받아 급한 불을 껐다. 조달받은 자금을 통해 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지는 것을 면했다.
다만 업황 악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 여천NCC의 근본적인 위기 극복 방안을 놓고 DL과 한화의 긴 공방전이 펼쳐질 전망인데 따라 빠른 회복을 이룰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화솔루션이 DL케미칼과 50대 50으로 출자해 설립한 석유화학업체인 여천NCC에 1500억원을 지원한 가운데 DL케미칼도 동일한 금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14일 DL케미칼은 이사회를 열고 여천NCC에 1500만원을 대여하기로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대여기간은 오는 20일부터다. 앞서 DL케미칼은 지난 11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DL그룹의 지주사인 (주)DL도 같은날 이사회를 개최하고 DL케미칼 주식 82만3086주를 약 1778억원에 추가 취득하는 방식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여천NCC에는 총 30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된다. 연말까지 31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여천NCC는 채무불이행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었는데, 양사의 자금 지원으로 해당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번 자금 조달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전망이다. 중국발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는데다 글로벌 수요 부진도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천NCC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연간 기준 순손실을 내면서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는 석유화학사업 재건을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중국은 석유화학 자급률 개선을 위해 증설을 본격화했고 그동안 중국 수요 증가에 따라 성장하던 한국 석유화학업체들에게는 이때부터 적신호가 켜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황 부진은 국내 주요 석유화학업체의 공장 가동률 하락으로 이어진다"며 "결국 공장 유휴설비를 축소하고 설비 합리화 방안을 모색하는 구조재편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또 특정 석유화학단지에 중복으로 진출한 업체들의 공장을 유사 제품군별로 전략적 설비교환 또는 인수합병(M&A)하는 설비 통폐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여천NCC의 공동 대주주인 한화와 DL이 큰 갈등을 빚으면서 여천NCC 회복을 위한 논의 진행이 순조롭지 못한 상황이다.
양사는 지난해 12월 에틸렌 등에 대한 원료공급계약이 종료됐으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가격 협상을 마치지 못하면서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서로 각각 임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
그러다 최근 여천NCC를 대상으로 한 자금 지원을 앞두고 서로 상이한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여천NCC 경영 악화의 원인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양사 분쟁의 쟁점은 원료의 공급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을 두고 발생하는 시각 차다.
한화 측은 기존에 에틸렌을 DL보다 더 많이 대량으로 공급받고 있으나 할인된 가격으로 받은 적이 없는데다 올해 1월부터 정한 임시 가격 역시 시장가에 따른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DL이 한화가 공급받지 않는 C4R1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받아 이득을 취해왔다는 지적이다.
한화솔루션이 여천NCC로부터 받는 에틸렌 규모가 연간 100만t이며 DL케미칼은 40만t 수준으로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
한화 관계자는 "통상 계약시 많이 구매하면 일부 (금액을)절감해줄 수 있는 수준의 거래가 가능하지만 한화는 그동안 그렇게 진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DL은)한화가 많이 가져가는 에틸렌은 시장가보다 높게 가져가고 DL이 많이 가져가는 C4R1 등은 시장가 대비 할인된 가격으로 계약하자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대신 공급가와 관련해서는 "계약상 직접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DL 측은 시장가를 부정하는 한편 계약 종료 이후 추가적인 협상이 안된 데 따라 올해 1월부터도 기존 가격대로 원료 공급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DL케미칼 관계자는 "원료 공급 계약 갱신 과정에서 가격 하락폭을 제한하는 하방 캡 조항을 제안했으나 한화가 이를 거부하고 있다"며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화가)시장가라면서 기존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받고 있어 여천NCC 실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C4R1을 통해 고부가제품을 만들어 내는 곳은 DL케미칼이 유일한 상황으로, C4R1을 구매하는 업체가 거의 없다"며 "에틸렌이나 프로필렌처럼 대규모로 거래되는 제품이 아니라 국제 시세가 없다. 적절한 시장가 결정이 어렵고, 납사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납사 시설에서는 납사 분해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C4R1이 대부분 버려지고 있으나 여천NCC는 DL케미칼에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DL케미칼은 C4R1을 활용해 폴리부텐(PB)을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공급 가격 결정과 관련해 이견을 보이면서 서로를 향한 불신이 커진 모습이다.
한화 관계자는 "올해 초 여천NCC가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에틸렌, C4R1 등 제품 저가 공급으로 추징액 1006억원을 부과받았고 DL과 거래로 발생한 추징액이 962억원(96%)"라고 지적했다.
DL 관계자는 "(한화는)여천NCC 회복을 말하면서 올해 1월부터 시장가로 기존보다 낮은 가격으로 에틸렌을 공급받는 모순을 보이며 여천NCC에 손해를 입혔다"고 꼬집었다.
한화 측은 공정위 제재 결과를 공개하며 여천NCC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DL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DL은 시장가로 여천NCC에 손해를 입힌 것은 한화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양사 갈등이 첨예한 데 따라 공급가격 논의가 장기전으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되면서 여천NCC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빠르게 나올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여천NCC는 이미 수년간 손실이 누적된 상태"라며 "추가 자금 투입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실적 회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