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반응과 주가 흐름…ODM 기대감 키워
한국 증시가 다시 ‘K-뷰티’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중국 국가광파전시총국(NRTA)이 외국 콘텐츠 규제 완화 방침을 담은 내용을 발표하면서 9년 가까이 이어져온 비공식 ‘한한령’이 사실상 풀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국 ‘한한령’ 해제 기대감…K-뷰티 주가 다시 달아오를까
16일 경제계에 따르면, 정부는 관광 산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이달 29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15일 범위에서 중국 단체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특히 오는 10월1~7일은 중국 황금연휴인 국경절이 있어 유커 특수가 기대된다.
중국에서도 한국 문화 콘텐츠에 대한 장벽을 낮추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중국 NRTA는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라디오·TV·영상 공급 촉진 조치’를 발표했다. 해당 조치에는 ‘우수 해외 프로그램 소개 및 방송 촉진’이 명시돼, 사실상 해외 콘텐츠 수입 장려를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간 중국은 명문화된 제재 없이 방송 편성, 심의, 광고 허가 등 실무 절차로 한류 콘텐츠를 제한해왔기 때문에, 문서 수준의 변화는 시장에 의미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외교 이벤트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정부는 시진핑 주석 방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외교부 고위급 방중 등 양국 교류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 과정에서 한류 콘텐츠 규제 완화가 정치적 상징성과 맞물릴 경우, 문화산업 전반에 미치는 체감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6월 ‘수출 1조 달러 달성 전략’을 내놓고 코프라 내에 ‘무역구조 혁신 TF’를 출범했다. 화장품은 수출 다변화 핵심 품목으로 꼽히며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정책 모멘텀은 K-뷰티 업계와 투자자들 사이에서 중국 수출 활로 회복에 따른 성장 시나리오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상반기 국내 화장품 수출은 55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5% 증가했다. 대중 수출액은 10억8000만 달러로 절대 규모는 여전히 1위지만,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19.6%로 낮아졌다. 미국, 일본, 폴란드 등 신규 시장의 고성장이 이뤄진 가운데, 7월 한 달간 수출은 9억8200만 달러로 월간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중국 시장 회복과 글로벌 다변화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 화장품주, 공매도 과열 종목 오명 씻나
8월에는 화장품 업종이 잇따라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받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8월에만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된 화장품주는 총 57건에 달한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먼저 판 뒤 주가가 하락하면 되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 방식으로, 주가 하락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거래가 급증하면 다음 날 공매도가 제한되는데 이를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이라고 한다.
시장전문가들은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화장품 종목 주가가 회복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 인바운드의 경제적 효과는 1인당 소비금액과 방문객 수에 의해 결정되는데 내년 상반기까지 방문객 수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며 “1인당 소비 규모의 회복에는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현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호텔신라에 대해 “면세와 호텔 모두 중국 단체관광 무비자 허용으로 (여행업 등에) 모멘텀이 기대된다”며 “특히 호텔신라 면세점은 여행사와의 유리한 네트워크 기반 늘어나는 수요 일부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화장품 업종 전반이 ‘정책 기대감’에 반응하고 있지만, 기업별로 실적과 주가 흐름은 엇갈린다. 화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계에서는 코스맥스가 2분기 국내 법인 기준 매출 4205억원, 영업이익 499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글로벌 수요 회복과 기초케어·선케어 제품 판매 호조가 주요 배경이다. 실적 발표 직후 주가도 반등했으나, 이후 조정 구간에 진입하며 변동성이 확대됐다.
한국콜마 역시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7308억원, 영업이익 738억원으로 실적 기준 자체는 사상 최고였다. 다만 시장 기대치를 밑돌아 주가는 단기적으로 흔들렸고, 하반기에는 중국 시장 회복과 자외선차단제 수요 성수기 효과가 주목된다.
완성 브랜드 대표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2분기 매출 1조950억원, 영업이익 801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8.9%, 555.5% 증가했다. 서구권 고성장과 중화권 채널 구조 개선이 실적을 이끌었으며, 면세 채널 회복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LG생활건강은 2분기 매출 1조6049억원, 영업이익 548억원으로 각각 감소했다. 특히 화장품 부문은 82분기 만에 적자를 기록했으며, 중화권 채널 정비에 따른 충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반기에는 구조조정 효과와 신제품 출시에 따른 회복 가능성이 점쳐진다.
◇ 높아지는 한한령 전면 해제 기대감…과잉 기대는 삼가해야
한편 중국 정부가 모든 분야에 일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보여진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의 규제 완화 흐름은 분명하지만, 콘텐츠 분야마다 적용 속도와 강도는 다를 수 있다”며 “방송·OTT 플랫폼은 NRTA 규제를 따라 완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공연·광고 등은 문화관광부 소관으로 별도 심사 체계를 따른다”고 말했다.
중국 하이난에서 예정됐던 대형 K팝 공연 ‘드림콘서트’는 공연 허가를 받지 못해 연기됐다. 반면 중국 현지 스타의 공연은 정상 진행된 것으로 전해져 콘텐츠 형태나 주최 주체에 따라 규제 해제의 속도와 범위가 다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정책은 풀리지만, 현장 집행에서는 불균형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K-뷰티 산업은 향후 ODM 기업의 글로벌 수주 확대, 브랜드 기업의 히트 라인업과 채널 재정비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특히 NRTA가 강조한 ‘미니드라마’ 및 ‘해외 프로그램 도입’은 색조·기초 제품의 노출 기회를 늘릴 수 있지만, 동시에 중국 현지 브랜드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소비자원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규제가 해제되더라도 중국 소비자의 구매 트렌드와 유통 환경은 과거와 다르다”며 “한한령 이전의 과잉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