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자본성증권 발행 확대 전망
소형사 발행에 높은 금리 부담...아예 발행 막힐 위험도

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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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가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고 있다. 규제 완화와 금리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지급여력비율은 다소 숨통이 트였지만, 금융당국과 시장은 모두 “기본자본의 질”에 방점을 찍고 있다. 신용평가사도 더 이상 단순한 자본규모나 발행 잔액이 아닌, 자본의 내용과 구조를 평가의 중심으로 옮기고 있다.


◇ 숨통은 트였지만…기본자본과 금리가 신용도 갈라


16일 경제계에 따르면, 2024년 10월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현재 2.50%까지 내려왔다. 이번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한국은행 역시 추가로 금리를 내릴 여지가 있다.

기준금리 인하는 곧 시장금리인하를 의미한다. 시장금리가 낮아지면 보험사의 부채는 커진다. 보험부채는 현재가치로 평가되는데, 할인율 역할을 하는 금리가 내려가면 미래 지급액의 현재가치는 올라가기 때문이다. 자산은 고정된 반면 부채는 커져, 결과적으로 자본 여력이 줄어드는 구조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6월, 보험업감독규정을 개정해 지급여력비율(K-ICS)의 권고 기준을 150%에서 130%로 낮췄다. 이 비율은 보험사가 신규 인가를 받거나, 후순위채를 조기 상환할 때 참고하는 핵심 수치다. 당국은 같은 해 11월, 보험부채 할인율의 ‘최종관찰만기’를 30년으로 확대하겠다고도 밝혔다. 다만 도입은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원칙만 세웠고, 아직 구체적 이행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규제 기준이 낮아지면 보험사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유연성이 생긴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그와 동시에 “앞으로는 자본의 질을 보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기존의 지급여력비율은 총자본을 기준으로 했지만, 앞으로는 그 자본이 실제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기본자본’인지가 더 중요해진다. 유상증자, 이익잉여금처럼 실질적인 방어력이 있는 자본이 핵심이라는 뜻이다.

시장 역시 변화에 반응하고 있다. 3월말 기준, 보험업계의 평균 지급여력비율은 197.9%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지만, 직전 분기 대비 8.7%포인트나 하락했다. 같은 시기 보험업계의 자본성증권 발행 잔액은 22조7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6조원 증가했다. 금리 하락과 규제 대응을 위해 자본을 확충한 결과지만, 발행 증가 속도에 비해 기본자본의 방어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양적 팽창’만으로는 신용을 설명하기 어렵다.

나이스신용평가 제공.
나이스신용평가 제공.

정원하 나이스신용평가 금융SF평가본부 금융평가1실 책임연구원은 “보험사 자본의 규모가 아니라, 질과 구조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자본성증권은 일시적으로 시간을 벌어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신용도를 유지하려면 요구자본 구조 개선, 이익 유보 확대, 리스크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보험사의 대응 전략도 회사 유형별로 구분된다. 생명보험사는 할인율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보증성 상품 비중이 높은 데다, 해약률이 자본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할인율이 현실화되면 부채 재평가 압력이 커지고, 조기 상환(콜옵션) 시기가 다가오는 자본성증권이 많다면 유동성 리스크도 겹친다.

손해보험사는 상대적으로 금리 민감도는 낮지만, 실물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대형 화재나 의료비 지출 급증처럼 손해율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이 자본을 갉아먹을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일부 손해보험사는 대형사고 여파로 실적이 흔들리는 상황을 겪었다.

대형 보험사들은 대응 수단이 비교적 많다. 대표적인 것이 내부모형 도입이다. 내부모형은 보험사가 자체 리스크 산정 기준을 만들어 요구자본을 조정할 수 있는 체계다. 금융감독원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내부모형 승인을 가동하고 있으며, 승인까지 사전 협의부터 심사, 사후 검증까지 최소 5단계를 거친다. 이를 통해 자본 효율성을 높이고, 신용도를 지키려는 대형사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 보험사 자본성증권 발행…각사 ‘자본관리 전략’ 화두


반면 중소형사는 선택지가 적다. 기본자본 여력이 낮은 상태에서 자본성증권을 발행하면 높은 금리를 요구받거나, 아예 발행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일부 보험사는 실제로 예상보다 낮은 기본자본비율을 보여 신용등급 하향 우려를 낳기도 했다.

투자자의 평가 방식도 달라졌다. 단순히 자본 규모나 발행 잔액으로 긍정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콜옵션 행사 계획, 내부모형 도입 일정, 금리 하락 시 지급여력 민감도 등이 동시에 평가된다. 특히 5년 콜 이후 금리 구조(스텝업), 조기상환 이력, 경쟁사 대비 기본자본 방어력은 스프레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올해 하반기에도 보험사들은 자본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콜옵션 도래 시점과 할인율 단계 도입이 맞물리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성증권 수요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K-ICS 체계 아래에서는 자본 구조가 탄탄한 우량 대형사만이 낮은 금리로 발행에 성공할 수 있어, 발행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감독당국은 연계 규정 정비를 올해 상반기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공시 범위나 적용 유예 기간 등 구체적인 기준은 여전히 미정이다. 제도의 틀은 잡혔지만 실제 적용 방식은 아직 안갯속이라는 얘기다.

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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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중요한 이슈로 금융당국은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원칙을 밝혔지만, 시행 시점이나 세부 절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는 흐름 속에서 할인율 조정이 늦춰지면 부채 평가 부담이 뒤로 밀릴 수 있고, 반대로 조정 속도가 빨라지면 자본 방어에 대한 압박이 한꺼번에 닥칠 수 있다. 결국 정책의 속도 조절과 시장의 대응력 사이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보험사 각자의 자본관리 전략에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이익 유보 확대, 자산·부채 만기 구조 조정(ALM), 언더라이팅 정교화, 보증 리스크 축소가 함께 이뤄져야만 신용 방어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구조 개선이 유예기간 내에 마무리되지 못한다면, 규제 완화 종료와 금리 하락 충격이 겹쳐 동시다발적인 압박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결국 이번 제도 변화는 보험업계에 숨통을 잠시 틔워준 조치에 가깝다”며 “ 자본의 양보다 질, 유동성보다 회복력, 규정 준수보다 실질적인 손실 흡수 능력이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 국면”이라고 밝혔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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