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지역 특례 받고 국내 사모펀드에 사업부 매각
“먹튀 선례 남길라” 지자체도 우려, 노조는 법원에 분할 금지 신청
“단체협약 위반, 인사 이동 강요”…노조법·근로기준법 위반 소지도
도레이첨단소재의 메탈로얄 사업부 매각이 정부의 외국인투자기업 정책 취지를 훼손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외투기업으로서 받았던 각종 혜택(토지 사용, 세제 지원 등)을 받은 후 사모펀드에 사업부를 매각하는 것은 제도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회사 노동조합은 전적 동의 거부서를 제출한 직원들의 의견이 묵살된 채 노조법과 근로기준법 상의 부당한 인사 이동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법원에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며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도레이첨단소재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지정된 구미시 외국인투자지역에서 각종 세제 및 행정 혜택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매각은 외투기업이 아닌 국내 사모펀드(어펄마 캐피탈)에 사업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돼 외국인투자촉진법 위반 소지가 제기된다.
관련 구미시 지자체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러한 방식이 다른 외투기업의 ‘먹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부정적 견해를 노조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향후 도레이첨단소재가 받은 특혜를 환수해야 한다는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외국인투자지역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국내 경제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지정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저렴한 부지 임대료, 세금 감면 등 막대한 특혜를 제공한다. 도레이첨단소재가 외국인 투자 혜택을 받은 후, 국내 사모펀드에 사업부를 매각하는 것은 이러한 제도 취지를 훼손할 소지가 있다.
외국자본 투자 유치라는 원래 목적을 상실한 채 특혜만 누리고 사업을 국내 자본에 넘기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모펀드는 투자 회수가 필수적으로 자본의 목적지도 불투명하다. 지자체와 관계 당국은 이러한 선례를 남길 경우 다른 외투기업까지 사업분할·양도를 통해 먹튀가 만연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외투기업은 일정 기간 최저 외국인투자비율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매각으로 인해 외국인투자비율이 기준치 아래로 떨어지면,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정부는 해당 기업이 받은 특혜를 환수할 수 있다. 특히 외국인투자지역에 입주한 기업이 외국인 투자자 지분 철수 등 불가피한 사유로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되는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협의해 2년 이내에 다시 자격을 갖추도록 조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례처럼 아예 국내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것은 이러한 조항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도레이첨단소재는 올해 안에 매각을 마무리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펄마 캐피탈과의 매각 합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공개된 바 없으나, 외국인투자촉진법 저촉 위험을 고려하면 도레이첨단소재가 양도 사업부에 대한 지분 일부를 남겨둘 수도 있다. 사업부 매각 후에도 최저 외국인투자비율만 넘기도록 지분을 남기면, 형식적으로는 외투기업 자격을 유지해 관련 법규의 저촉을 피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몇몇 국내 대기업들도 제도 맹점을 이용해 지분 일부만 외투자본에 허용하는 형태로 외투지역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무늬만 외투기업 행세를 하면서 제도 취지를 훼손하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노조 측에 따르면, 매각 대상인 메탈로얄 사업부 직원 중 약 90%가 전적 동의 거부서에 서명했다. 그럼에도 매각 추진하는 것은 단체협약을 위반해 노조법과 근로기준법에 저촉될 수 있다.
도레이첨단소재 단체협약서에는 ‘회사는 조합원이 구미사업장에서 타 사업장 또는 한 부서에서 타 부서로 3인 이상 인사 이동 시 7일 전 노동조합 측에 인원을 통보해야 하며 해당자의 의사를 우선 존중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 ‘회사는 조합원이 부서 내 이동 시 먼저 현업 부서 조합간부와 협의 후 인사부서와 조합집행부가 협의 후 시행한다’고 적시했다.
회사 분사·합병·양도 시의 고용승계에 대해서도 단체협약에서 정한 원칙이 있다. ‘분사를 할 때 조합과 합의하지 않고는 시행할 수 없다. 단 조합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다’, ‘합병·양도할 경우 제반 대책을 해당 부서의 조합 간부를 포함한 노사협의회를 통해서 협의해야 하고, 기 종사자에 대해서는 고용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고 정했다.
이처럼 노조 동의 없는 매각은 단체협약 조항과 배치된다. 더욱이 사내 일부 직원들은 인사 이동 과정에서 부당하게 매각 대상 부서로 편입됐으나, 실제로는 여전히 기존 업무(보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해당 직원들이 전적은 아니지만 본래 업무와 다른 부서로의 전직을 강요받은 상황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전직·휴직·해고 등의 징벌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과 충돌한다. 법원 판례는 전직이 정당하려면 업무상 필요성,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 그리고 노조와의 협의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 사례의 경우 사측은 매각 대상 사업부에 전직 인원들의 업무가 필수적이라며 인사이동시켰다. 하지만 회사가 노동자들의 의견(전적 동의 거부서)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부서를 변경한 것은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 노조 협의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매각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사측의 이득만 있을 뿐, 노조법과 근로기준법 규정에는 위반 소지가 있다. 이에 노조는 법원에 분할 절차 진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가처분 심의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노조 관계자는 “이번 매각 추진 과정에서 회사는 노동조합과 어떠한 합의도 하지 않고 통보식의 매각을 추진했다”며 “단체협약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채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근로자의 권리와 정의가 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레이첨단소재 관계자는 "회사는 작년 기준으로 자산이 3조4000억원, 매출액이 2조7000억원으로 이번 매각 추진 중인 대상 사업은 극히 일부분"이라며 "따라서 먹튀라던가, 외국인투자촉진법 위반은 사실에 맞지 않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도레이첨단소재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5000억원 투자를 발표하는 등 모범적인 외투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또한 현재 사업매각에 대해 관련 직원들과 처우 등을 협의 중에 있고, 단체협약이나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내용 또한 사실과 다르다. 당사는 관련 법과 절차, 노사협약을 준수하고 있으며 매각 대상 사업의 사원들 및 노조와의 협의에도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도레이첨단소재뿐만 아니라 국내 투자했던 여러 외투기업의 먹튀 논란과 이로 인한 노사 분쟁이 잦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번 사례는 이런 사회 문제에서 향후 외국인투자촉진법이나 노조법 등의 적용에 관한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이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