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출통제·미국 탈중국 기조 속 민간기업 전략적 가치 커져
<편집자주> 국가기간산업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한국 경제와 안보를 떠받치는 전략 자산이다. 영풍·MBK의 적대적 M&A 시도가 단기 차익을 위해 공익과 공급망 안정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에 스트레이트뉴스는 고려아연 사례를 통해 국가핵심기업 보호의 필요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고려아연이 전략광물 분야에서 국가경제와 공급망 안보의 핵심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핵심 광물 수출을 통제하고 미국이 ‘탈중국’ 기조를 강화하면서, 고려아연의 역할이 단순한 제련기업을 넘어 국가기간산업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경영권 분쟁으로 기업 내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지만 고려아연은 아연·연·구리 등 비철금속 제련을 기반으로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텔루륨 등 전략광물을 생산하며 공급망의 대체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략광물 정제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서 글로벌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게르마늄·갈륨을 비롯해 안티모니, 인듐, 텅스텐, 텔루륨, 비스무트, 몰리브덴 등 6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서방국가는 핵심광물 확보를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고려아연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공급선으로 부각되고 있다.
전략광물은 스마트폰 화면에 쓰이는 인듐, 미사일과 방탄 장비에 들어가는 안티모니, 야간투시경과 전투기 센서에 필요한 게르마늄처럼 첨단 산업과 방위산업에 꼭 필요한 금속으로, 특정 국가에 매장과 생산이 집중돼 있어 공급이 막히면 산업과 안보가 직접 흔들릴 수 있는 자원이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 최대 방산기업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망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울산 온산제련소에 약 1400억원을 투자해 고순도 게르마늄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2028년부터 연간 10톤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2024년 게르마늄 수입량 추정치 약 33톤의 30%에 달하는 물량이다.
안티모니 분야에서도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방산 핵심소재로 사용되는 안티모니는 중국의 통제로 수급 불안이 발생했으며, 고려아연은 올해 100톤, 내년 240톤 이상의 대미 수출을 목표로 잡았다. 업계에서는 “안티모니 공급망에서 한국산 비중이 확대되면 미국의 탈중국 전략에 실질적인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듐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소재다. 고려아연은 연 150톤가량을 생산하며 세계 생산량의 약 11%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의 인듐 최대 수입국은 한국으로, 사실상 고려아연이 미국의 공급망을 담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을 두고 “전략광물은 단순한 수출입 품목이 아니라 동맹국 간 신뢰를 보여주는 지표”라며 “고려아연의 생산 역량은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설 자리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전략광물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1차 공급망 안정화 계획(2025~2027)’을 발표하며 반도체·이차전지 등 전략산업과 핵심광물 공급 기반 확충을 강조했고, 올해 8월에는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열어 전주기 금융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다만 민간기업이 가진 정제 기술과 생산 역량이 국가 전략과 결합해야 실효성이 커진다는 지적이 많다.
고려아연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아연-연-동 통합공정’을 운영하며 정광 속 극소량의 전략광물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이 통제하는 품목 가운데 인듐, 안티모니, 비스무트, 텔루륨 등 4개 광물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할 수 있다.
이 같은 기술력은 45년간 축적된 제련 경험과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에서 비롯됐다.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다금속 회수 기술은 단일금속 정제에 의존하는 경쟁국 대비 확실한 우위”라며 “안보와 경제가 중첩된 영역에서 국제적 협력의 신뢰성을 높이는 기반이 된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고려아연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빈 웨버 전 하원의원은 “고려아연은 중국의 자원무기화에 대응한 공급망 구축 노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고, 마리아네트 밀러-믹스 하원의원은 “미국 방위산업에 필수적인 전략광물 공급에서 고려아연은 핵심적”이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영풍과 MBK로 인해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전략광물 공급망 안정성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고려아연의 장기 투자와 생산계획이 불확실해지면 공급망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학계, 산업계에서는 정부가 경영권 분쟁을 단순 민간 갈등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경제안보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전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국가 전략기업의 안정이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고려아연은 전략광물 생산과 민간 차원의 외교적 협력을 통해 국가기간산업의 전략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경영권 공방 속에서도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지켜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