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욕실 벽 타일 열네 박스, 바닥 타일 세 박스.
거실 화장실 벽타일 상단 일곱 박스, 하단 여섯 박스, 바닥 타일 세 박스.
다용도실 벽 타일 다섯 박스, 바닥 타일 두 박스.
주방 벽타일 다섯 박스.
현관 벽 타일 열 박스, 바닥 타일 세 박스.
본드 열다섯 통, 백시멘트 두 포대, 타일 커팅기 대소 두 개, 발판 두 개,
코너비트 열 개, 핸드 그라인더, 전선, 자질구레한 장비들.
 
차에서 자재와 연장을 내리는 데만 30분 넘게 걸렸다.

주인 아주머니는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곁에서 지켜보며 떠날 줄을 모른다.
"그건 뭐에요?"
"이 가루를 백시멘트와 섞으면 줄눈이 갈라지지 않고 곰팡이도 피지 않습니다."
"줄눈? 그건 또 뭔 소리여?"
"타일과 타일 사이의 틈을 메꿔주는 건데요, 요걸 잘해야 타일 잘 붙였다는 소리 들어요."

"아, 그렇구먼. 이 타일 어때요? 예뻐요?"
"네, 아주 잘 고르셨습니다. 줄눈을 넣고 천정에 돔을 씌우면 더 예쁠 겁니다."

68세 동갑내기 부부, 평생 처음 지어보는 새집이다.
추석 때 내려올 자식과 손주들을 새집에서 재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거실 화장실 벽을 끝내고 안방 욕실에서 줄눈을 넣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또 빼꼼 고개를 들이민다.
"저기,, 빠진 게 있는디."
"네? 뭐가요?"
"거실 화장실 문틀 밑에,,"

"아, 그거요? 거기는 내일 바닥 붙인 다음에 메꿀 거예요."
"왜요?"
"문지방 위로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니잖아요? 지금 줄눈을 넣으면 티끌이 박혀서 지저분해져요."
"아하, 전문가들은 역시 다르네 잉."

일할 때 집주인이 계속 지켜보면 짜증 나게 마련인데, 이 집 주인 부부는 이상하게 정이 간다.
일꾼을 바라보는 주인의 눈빛에는 대개 의심이 깃들기 십상이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지, 자재는 빼돌리지 않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사건건 참견한다.

주인 아주머니의 눈빛에는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처음 내 집을 장만하여 이사하였을 때 내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서울 수색동에 있는 42평형 아파트, 네 식구가 살기엔 너무 넓은 집이었다.

그 절반도 안 되는 면적에 가구며 인테리어도 소박하기 그지 없지만
노부부의 행복감은 젊은 시절 내가 느꼈던 행복감의 열 배는 되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안 쓰던 안경을 쓰고 꼼꼼히 점검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현관 벽까지 끝내고 나오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덕담을 건넸다.
"두 분은 앞으로 행복하게 사실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알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 연세에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주인 아주머니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별걸 다 보네요 잉. 이상한 사람이네."

그렇다. 별걸 다 보는 일꾼, 그래서 잡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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