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다섯 시에 눈을 뜬다. 진안고원의 새벽바람은 아직 쌀쌀하다. 얼굴을 씻고,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 한 잔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날마다 출근 전에 마당의 풀을 뽑는다. 풀을 뽑는 데는 비 온 뒤 사흘쯤 되는 날이 가장 좋다. 흙이 부드러워 쏙쏙 뽑히고 뿌리에 붙은 흙덩이도 보슬보슬 잘 털린다. 하루에 몇 발짝씩, 열흘 넘게 풀을 뽑았더니 구석구석 깔끔해졌다.
일을 마치고 오후 여섯 시쯤 집에 돌아오면 감자밭을 돌아보는 것이 낙이다. 빠른 놈은 벌써 한 뼘 길이로 자랐고, 더딘 녀석은 이제야 땅거죽을 비죽 밀고 나오며 수줍게 인사한다.
올해는 이랑에 비닐을 씌우지 않았다. 딱 내 먹을 만큼 심었다. 조금 덜 먹으면 이웃에게 한 상자쯤 나눠줄 정도는 된다.
앙상했던 포도나무도 거짓말처럼 잎을 피웠다. 차양 아래 통나무 의자에 앉아 담배 한 대 붙여 물면 슬며시 말을 걸어온다. "에이, 이제 좀 끊지 그래요."
'그럴까?' 두 살 된 포도나무와 나는 사귀는 중이다. 연애라 해도 무방하다.
지난 주 비 오기 전에 거름을 듬뿍 주었다. 산빛은 점점 푸르러 가고, 일은 조금씩 즐거워지고 있다. 동료 일꾼 권 목수는 친구가 되었다. 일하는 요령을 알아먹게 잘 가르쳐 준다.
나는 일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다짜고짜 시키는 사람 앞에서는 바보가 돼 버린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무조건 외워라 하면 머리가 딱 멈춘 채 굳어 버리곤 했다. 일뿐인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납득하지 못하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삶이 말할 수 없이 시들해지면 오늘까지만 살아보자, 짐짓 구슬러 본다.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신념따위는 없다. 따라서 잘잘못을 정확히 알려주면 쉽게 받아들인다.
가끔 '똥고집'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잘못을 깨달으면 바로 머리를 수그린다. 구구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잘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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