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7일 오후 2시 목동 아파트 10단지 일대에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2기가 떨어져 주민 40명이 사망하고 250명의 중상자와 350여명의 경상자, 180세대 450여명의 전재민(戰災民)이 발생하였습니다. 메케한 연기속에 비명소리가 주변 일대를 뒤덮고, 도로는 피폭 잔재물로 차량통행이 불가하며, 통신과 전력 공급이 차단되어 양천구 전역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물론 현실이 아니다. 전쟁 발발을 가상한 양천구청 을지연습 상황실장의 첫 번째 상황보고 내용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구청장을 연습장으로 하는 통제부 종합상황실이 설치되었다.

홍보과의 상황전파로 보건소는 의료진을 급파하여 사망자를 수습하고 부상자를 치료하며, 복지국은 전재민 구호 작업에 나선다. 도시국은 중장비를 동원해 시설 복구에 나서고 청소과는 잔재물을 치워 안전로를 확보한다. 유관 기관의 협조로 사회관계망을 복구하며, 소방서와 경찰관이 출동하여 화재를 진압하고 주민들을 대피시설로 유도한다. 예산과에서 긴급 복구 자금을 지급하여 모든 재난 구호 활동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유지하며 감사실은 이 모든 업무가 신속하고 적정하게 수행되고 있는지를 감독한다.

이 모든것은 가상(假像)이다.

그러나 실제 전쟁을 겪어 본 우리 민족에게. 아니 바로 엊그제 휴전선 비무장지대 포격 사건으로 남북이 서로 호기롭게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치닫는 광경을 목도한 우리 국민들에게, 이 도상(圖上) 훈련이 단지 가상만이 아닌, 눈앞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공포와 혼란의 장으로 변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상상에 문득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둘러보게 만든다.

을지연습은 1968년 북한군의 청와대기습시도 사건직후 시작되었다. 국가비상사태에 정부기능을 적정하게 수행하여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위를 보장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역사상 가장 용맹한 장수인 '을지문덕' 장군의 호국정신을 본 받고자 그 명칭을 ‘을지’로 하고,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을지프리덤가디언(Ulchi-Freedom Guardian) 군사 훈련과 함께 전시대비계획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모든 국민이 비상시 행동요령을 숙지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수행해오고 있다.

그러나 약 50여년간 지속되어온 이 연습은 국민들과 유리된 채 공무원 또는 군인들만의 훈련으로 인식되어 온 게 사실이다. 싸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교통통제로 아스팔트 위에서 불평하거나 야간 등화관제로 깜깜한 밤거리의 추억을 갖고 있는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진제공=양천구청]

 

[사진제공=양천구청]

연습은 지역별 특성을 감안하여 실시된다. 양천구(구청장 김수영)는 지난해 초고층 건물 화재로 인한 Life- Line 마비시 화재진압 및 탈출 훈련을 실시한 바 있으며, 올해는 전시양곡배급 훈련을 신정6동 주민들과 함께 실시하였다. 강서구(구청장 노현송)는 소방서의 지원을 받아 고층 건물 화재대피훈련을 도시개발아파트에서 실시하였으며, 산업단지가 밀집한 금천구는 가산 디지털 센터에서 산업시설 피폭에 따른 사태 수습훈련을 실시하였다.

을지연습 기간에는 통상 민방위 훈련을 함께 실시한다. 대전시의 경우 피폭에 따른 화재대피훈련을 한남대학교 교정에서 실시하였고, 서대문구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피훈련과 심폐소생술 교육을 한성고 강당에서 진행하였다. 부천시에서는 탄저균 살포에 따른 생화학전 대비훈련을 보건소 주관으로 실시하였고, 피서인파로 붐비던 부산의 해운대구에서는 대피훈련을 중동 지하철역에서 피서객들과 함께 실시하였다.

지방자치단체의 을지연습을 평가하는 필자의 시각에서 매년 실시되고 있는 을지 연습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현실적이지 못한 메뉴얼과 궁극적 주체인 국민과 함께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사진제공=양천구청]

지방자치단체의 을지연습을 평가하는 필자의 시각에서 매년 실시되고 있는 을지 연습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현실적이지 못한 메뉴얼과 궁극적 주체인 국민과 함께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을지연습 초기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국지 충돌사태와 첨단무기를 사용하는 현대전은 분명 전개양상이 다를 것이고 그에 대응하는 국민 행동 매뉴얼도 당연히 그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

[사진제공=국방부페이스북]

현재 우리 공군의 F-15K 전투기는 마하 2.5, 시속 2800Km의 속도로 한반도 전역이 30분 권역이며, 장착된 SLAM-ER 미사일은 유효 사거리 280Km로, 대전에서 발사하여 부산 구덕경기장의 축구골대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고, 평양 주석궁의 창문을 순서대로 타격할 수 있을 정도로, 1960년대 북한의 미그(MIG-15)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의 연습 매뉴얼은 아직도 상급기관에서 내려오는 것을 그대로 전례답습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휴전선에 배치된 350기의 장사정포가 한 시간에 1만발의 다연발 로켓을 수도권으로 발사할 수 있다면 2천만의 수도권 시민들이 생명의 골든타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연습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동창리 무수단 미사일이 태평양을 건널 수 있다고 공언하는 마당에 우리 국민들도 이에 대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라도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 훈련의 궁극적 주체와 목적은 국민이다.

을지연습이 범정부적 훈련으로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측면이 있다하나, 그 궁극적 보호대상은 국민이며 그 실행주체도 결국 국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국민과의 소통 훈련이어야 하고, 국민 참여 훈련이 되어야 한다. 비상시 국민들의 행동요령, 우리 지역 대피소 안내, 비상시 준비물품 소개 등 주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내용이 되어야 한다. 현재 양천구의 임시 대피소는 142개가 지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공공 건물과 지하철 역, 대규모 민간시설의 지하공간이 대피소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이동경로와 이용방법도 모르는게 현실이다.

또한 야외훈련이 실시된 8월 18일 오후 2시는 전국에 걸쳐 폭염주의보가 발령중이었다. 도심의 콘크리트 바닥위에 잠시 서 있는것도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공공기관에서 폭염 대비 쉼터를 운영하며 야외 활동자제를 당부하면서, 실제 훈련 참가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지 않은가?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배려하고 선정해야 한다.

모름지기 국민이 이 모든 과정의 주체이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는 전쟁을 하기 위한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3년간의 전쟁으로 50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그 중 300만명 이상이 사망·실종자이다. 현대전은 6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참담할 것이다. 전쟁은 절대 안된다.

목함지뢰와 대북확성기 방송으로 남북이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사태가 수습되었다. 아니 수습을 넘어 이산가족 상봉과 회담 정례화까지 진전되고 있다니,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정말 다행스런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위험천만한 진행이 반복되어선 곤란하다. 민족의 운명이 조울증(躁鬱症) 정책에 시달린 순 없는 노릇이다.

 

온 국민이 큰 불편과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수 십년째 을지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습이 적대감과 이질감을 심화시키는 과정이 아닌, 평화와 화해의 소중함을 기약하는 훈련임을 항상 견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분단의 시간보다 통일의 역사가 훨씬 더 길지 않았던가!

 

 김기식 서울시 양천구 감사담당관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